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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
릴리 블레이크 지음, 정윤희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올해가 “그림형제”가 1812년 동화 “백설공주”를 발표한 지 200주년이 되는 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올해 백설 공주를 소재로 한 영화 두 편이 연이어 상영되었는데, “타셈 심” 감독의 <백설 공주(원제 Mirror, Mirror, 2012)>은 극장에서 봤지만 “루퍼스 샌더스” 감독의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Snow White And The Huntsman, 2012)>은 아직 관람을 하지 못했다.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은 미국에서 개봉 첫주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했고 제작사에서 속편 제작을 공식 발표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인기를 끌지 못해서인지 영화 감상평들을 검색해보면 “호평(好評)” 보다는 “혹평(酷評)” - “이 영화는 예고편이 다다” 라는 평가에 공감 댓글이 수십 개가 달려있는 게시글도 있다 - 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영화는 그렇다 치고 원작(原作)인 소설은 어떨까? “릴리 블레이크”의 동명 소설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북폴리오 / 2012년 5월)>이 그 소설이다. 이 작품이 원작 소설인지 아니면 영화가 먼저 제작되고 소설로 나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영상으로 담아내지 못한 스펙터클한 재미를 선사 - 어떤 홍보 기사에서 <반지의 제왕>을 연상시킨다는 문구에 걸맞게 - 하기를 기대하며 영화 포스터를 그대로 옮겨 놓은 책 표지를 열어 읽기 시작했다.
성대하게 치러진 결혼식 날 밤 새 왕비인 “라벤나”는 남편인 왕을 칼로 찔러 죽이고는 어둠의 군대를 불러 들여 왕국을 장악하고, 왕의 일곱 살 어린 딸인 “백설공주”는 왕비의 군대에게 붙잡혀 십년 동안 감옥에 갇혀 지내게 된다. 여왕인 라벤나에게도 아픈 상처가 있었으니. 어린시절 백설공주의 아버지인 왕이 일으킨 전쟁 때문에 엄마를 잃고는 엄마가 남겨준 유물인 신비의 거울을 통해 어둠의 힘을 얻어 오빠 “핀”과 함께 마침내 자신의 복수를 이룬 것이다. 라벤나는 자신의 젊음과 마법의 힘을 유지하기 위해 어린 소녀들의 생기(生氣)를 빼앗는데, 감옥에 갇혀 있는 백설공주는 여왕의 영원한 젊음을 위해 언젠가는 목숨을 빼앗길 그런 운명에 처해 있었다. 감옥에 찾아와 자신을 바라보는 여왕의 오빠 핀을 이용해 감옥에서 가까스로 탈출한 백설공주는 한번 들어가면 다시는 나올 수 없다는 죽음의 숲으로 도망치고, 여왕은 핀의 군대와 함께 마법의 숲에서 유일하게 살아 돌아온 사냥꾼 “에릭”에게 공주를 잡아오라고 명령한다. 과연 공주는 어둠의 군대의 추격을 따돌리고 마법의 숲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공주는 무시무시한 여왕의 마법에 맞서 싸울 수 있을까?
이 책은 동화 <백설 공주>의 기본 뼈대, 즉 성장한 백설 공주가 결국 자신을 죽이려는 여왕의 음모를 물리치고 나라를 되찾는다는 이야기 골격은 그대로 두는 대신 등장인물들에게 생동감을 불러 넣었다. 즉 백마 탄 왕자님의 도움을 받고서야 겨우 위기를 모면하는, 그동안 수많은 여성 인권론자들의 공분(公憤)을 자아냈던 백설 공주는 검을 들고 군대의 맨 앞에 서서 왕국을 쳐들어가는 여전사(女戰士)로 변신했고, 여왕의 명에 공주를 죽이러 갔지만 차마 죽이지 못하고 대신 동물 내장을 가지고 가서 공주를 죽였다고 속였던 무명(無名)의 사냥꾼은 백설공주를 도와 죽음의 숲을 헤쳐 나가고 공주와 함께 왕국탈환전쟁에 앞장 서는, 또한 공주와 알 듯 모를 듯한 로맨스를 벌이는 사실상의 남자주인공으로 격상해버렸다. 또한 공주를 그렇게 죽이고자 했던 마녀인 여왕은 엄마의 복수를 위해 어둠의 길에 빠진 사연이 있고, 사냥꾼 또한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에 대한 슬픔을 견디지 못해 매일 술독에 빠져 사는 아픔을 간직하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동화보다 더 풍성하고 생동감 있는 캐릭터 설정이 이 책의 가장 큰 재미이자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결국 캐릭터 설정과 몇 몇 전투 장면들만 추가했을 뿐 그동안 익히 알고 있었던 “백설 공주”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이야기 면에서는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캐릭터들에게 각각의 사연을 설정하고 전쟁장면들을 끼워 넣었는데도 불구하고 260 여 페이지의 짧은 분량일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원작 동화의 기본 구도를 벗어나려 하지 않았기에 그만큼 더 담아낼 만한 이야기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차라리 현대적인 해석을 하고자 했다면 기본 구도를 포기해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로 꾸몄으면 어땠을까? 예를 들어 이야기 무대를 백설공주의 왕국으로 한정하지 말고, <반지의 제왕>처럼 다른 종족들과 여러 왕국 등 새로운 세계관을 구축하여 보다 확장된 공간을 설정하고, 갈등관계도 여왕과 공주라는 이분법적인 구성이 아니라 원작에 없는 새로운 인물들을 창조하여 복합적인 갈등으로 발전시키는 등 말이다. 물론 원작의 기본 구조를 훼손한다는 우려도 있을 수 있겠지만 이 책처럼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이야기보다는 차라리 파격(破格)을 통한 재창조가 더 신선하고 재미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원작 동화를 모르고 읽었더라면 나름 재미있는 판타지 소설로 평가받을 수 있었을 텐데, 너무나도 유명한 원작 때문에 오히려 평가가 깎여 버린 그런 작품이 되고 말았다. 앞서 말한 두 편의 영화를 비교해 본다면 한 편은 영화로 한 편은 소설로 만나 온전한 비교는 아니겠지만 차라리 원작 동화를 가볍게 비틀어 유쾌하고 코믹스럽게 그린 <백설공주> - 인도 영화스러운 마지막 장면이 살짝 당혹스럽긴 하지만 - 에 한 표를 주고 싶다. 물론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취향으로 말이다^^ 그러나 실망하기에는 아직 이른 것 같다. 왜냐하면 이야기는 영화사에서 제작을 선언한 2부에서 본격적으로 펼쳐질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그때는 소설과 영화, 모두 원작 동화를 완전히 잊게 만드는 센세이션을 일으킬 만한 멋진 작품으로 만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