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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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사이드(genocide)

어느 특정한 종족이나 종교적 집단을 완전히 없앨 목적으로 그 구성원을 살해하거나 신체적·정신적 박해 등을 행하는 것을 말한다. 그 전형적인 예로서는 나치스 독일의 유태인 학살을 들 수 있다. 1948년 12월 9일 국제연합 제3차 총회에서「집단 살해 죄의 방지 및 처벌에 관한 조약」이 채택되었다(네이버 지식사전 발췌)

 

자신의 동족을 죽이는 동물이 “인간(人間)” 뿐이라는 것은 오해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생물학적인 본능이 아니라 특정 민족이나 인종을 멸종에까지 이르게 하는 이른바 “인종 학살”을 저지르는 동물은 “인간” 밖에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이런 인종 학살 또는 인종 청소 사례는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위에서도 언급한 600 여 만 명의 유태인의 목숨을 앗아간 나치스의 유태인 학살과 사회 개조라는 명분으로 200 여 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캄보디아 크메르 루주(Khmer Rouge) 정권의 대학살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이런 끔찍하고 잔혹한 짓을 저지르는 이유가 멀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좌우(左右) 논쟁에서 볼 수 있듯이 바로 “다름(차이)”을 “틀림”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기에 자신과 정치, 종교, 문화적으로 “다른” 민족이나 인종을 “옳고 그름”을 나타내는 “틀리다”로 받아들여서 그들을 차별과 학대, 심지어 학살의 대상으로까지 여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만일 인간이긴 하지만 영화 <엑스맨>처럼 초능력을 가진 돌연변이이거나 또는 현 인류(Homo sapiens sapiens)의 지적 능력을 월등히 초월한 신인류(新人類)라면, 또한 그들이 현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는 위험한 존재라면 어떨까? 이들에 대한 반응은 그들도 인류이니 같이 공존(共存)해야 되는 입장과 우리에게 위험한 존재이니 특별 관리하거나 또는 멸종(genocide) 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라는 상반된 반응을 보일 것이다. 전작인 <13계단>에서 추리소설 본연의 긴장감과 재미와 함께 법과 사형제도라는 묵직한 생각꺼리를 던져 준 작가인 “다카노 가즈아키(高野和明)”는 이번 신작 <제노사이드(원제 Genocide(ジェノサイド) / 황금가지 / 2012년 6월)에서 우리들에게 이처럼 현 인류를 초월한 신인류는 과연 우리들과 “다른”, 즉 함께 살아가야 할 존재(共存)인지 아니면 “틀린”, 즉 멸종시켜야 할 존재인지 라는 결코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어려운 질문을 한다.

 

미국 대통령 “번즈”는 지난 24시간 동안 미국의 모든 정보기관이 모은 중요 정보의 요약본인 아침 일일 브리핑(PDB)에서 “인류 멸망의 가능성, 아프리카에 신종 생물 출현”이라는 NSA(National Security Agency, 미 국가안보국) 보고서를 읽는다. 그 보고서에는 콩고 민주 공화국 동부의 열대 우림에 신종 생물이 출현했는데, 이 생물이 번식하게 될 경우, 미국 국가 안전 보장에 중대한 위협이 될 뿐만 아니라 전 인류 멸망이라는 위험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가 담겨 있었다. 보고서와 함께 신인류의 등장과 위험성을 경고한 “하이즈먼 리포트”를 읽은 번즈는 민간 연구소인 “슈나이더 연구소”의 대처 계획 입안을 승인하고 민간 용병을 고용해 내전중인 콩고로 파견해 피그미 족과 그곳에 머물고 있는 인류학자, 그리고 새로운 생물을 제거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한편 일본 약학 대학원생 “고가 겐토”는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아버지의 장례를 치루고 연구실로 복귀하는데, 돌아가신 아버지에게서 의문의 이메일 한 통을 받고 메일에서 안내하는 아버지의 비밀 실험실을 찾아간다. 실험실에서 아버지가 남긴 노트북에서 제약 개발 프로그램을 발견하게 된다. 1개월 안에 불치병 치료제를 개발하라는 아버지의 유지이지만 아직은 뭐가 뭔지 모르는 겐토에게 의문의 여인이 노트북을 내놓으라고 협박하고, 심지어 경찰들까지 들이닥쳐 하루아침에 수배자가 되어 버리고 만다. 가까스로 숙소에서 도망친 고가는 아버지의 실험실에서 한국인 친구 “정훈”과 함께 프로그램을 이용해 치료제를 개발하게 된다. 한편 피그미 족 말살 작전에 참여한 용병인 “조너선 예거”는 암살 대상인 인류학자에게서 이 작전의 음모를 전해 듣고는 작전을 포기하고, 인류학자와 앞서 일일 브리핑에서 “신종 생물”로 표현했던 어린 아이를 일본으로 탈출시키기로 한다. 바로 불치병으로 시한이 한 달 여도 채 남지 않은 죽어가는 자신의 딸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을 제공받는다는 조건으로 말이다. 이처럼 콩고에서의 피그미족 말살 작전과 일본에서의 겐토의 치료제 개발 건은 전혀 별개의 사건으로 진행되다가 어느 순간 접점을 이루며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는다.

 

(이하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이 책은 아프리카 오지(奧地)에서 탄생한 신인류 “누스”를 제거하려는 미국 정부의 음모와 이에 맞서는 사람들의 대결을 그린 소설인데 장르로는 SF와 스릴러가 복합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한정된 시간 안에 누스를 구해내려는 소수의 사람들 - 용병 몇 명과 인류학자, 지구 반대편에 있는 대학원생과 그의 동료, 그리고 결말에 이르러 밝혀지는 놀라운 조력자 - 이 인공위성과 첨단무기, 첩보 조직들과 용병, 반군 세력 등 압도적인 무력을 동원하여 신인류를 말살하려는 미국정부와의 대결 과정이 꽤나 긴장감 있고 스릴 있게 그려내고 있어 700 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이 지루함을 느낄 겨를 없이 단숨에 읽히게 만든다. 현실에서라면 양(羊)과 사자의 대결 - - 물론 종종 영미 첩보 스릴러 소설에서 이런 불가능한 싸움을 승리로 이끌어내는 “양”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 처럼 무척 싱겁게 끝났을 이런 상황을 작가는 SF적인 “비현실적”인 설정과 현재 시스템에 대한 사실적이고 치밀한 묘사를 절묘하게 혼합하여 실현 가능할 법한 개연성을 부여하고 있다.

 

작가는 먼저 불가능한 싸움을 가능케 하는 능력으로 신인류 “누스”에게 현생 인류를 뛰어 넘는 초월적인 지식과 능력을 부여하는데, 생김새만으로도 현 인류와 다른 “신종 생물”로 느껴지는, 불과 3살 밖에 되지 않은 어린 아이인 “신인류”의 능력은 가히 “먼치킨” - 판타지 소설과 만화, 게임 등에서 터무니없는 능력을 가진 캐릭터를 일컫는 말 - 스럽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놀라울 지경이다. 비록 아직 발음기관이 발달하지 못해 말을 하지는 못하지만 언어는 순식간에 습득하고, 절대 침입 불가로 알려진 미국 정보기관 전산망과 암호체계, 인공위성을 자유자재로 해킹하고, 그 어떤 프로그램보다도 월등히 우수한 제약 개발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만들어 불치병 치료제를 개발하도록 유도 - 물론 목적은 용병 “조너선 예거”가 자신을 구해내도록 하기 위해서이긴 하지만 -하기도 하고, 무인정찰기 “프레데터”를 조정해 미국 부통령을 암살하기도 하며, 미국 전기 시스템을 작동 불능 상태로 만들기도 한다. 이런 능력으로 신인류와 그들 보호하려는 소수의 인물들은 미국의 집요하고 무자비한 공격을 물리치고 아프리카에서 일본까지의 대장정(大長征)을 성공리에 완수해낸다. 그렇다고 이렇게 다분히 공상과학(SF)적인 설정만 늘어놓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인류가 처하게 될 종말적인 상황 - 핵전쟁, 천재지변, 그리고 이 책에서의 신인류의 탄생 등 - 을 과학적으로 예견해 놓은 “하이즈먼 보고서”나 주인공인 겐토가 신인류가 만들어 놓은 “기프트(Gift)"라는 제약 개발 프로그램을 이용해 불치병 치료제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전문 용어와 이론, 신약 테스트 과정 등은 분명 작가가 만들어 낸 허구 임이 분명할 텐데도 실제로 그런 보고서나 제약 프로그램이 존재한다고 느껴질 정도로 사실적이고 상세하고 그려내고 있다. 또한 미국 정보기관의 작전 운영 체계, 미군을 대신하여 분쟁지역에서 전쟁을 수행하는 민간 용병들의 실체, 전 세계를 아우르는 고도의 감시 시스템 등에 대한 묘사도 꽤나 현실적이고 치밀하게 그려내고 있는데, 이처럼 사실적인 설정과 묘사는 허무맹랑한 SF로만 빠질 수 있는 이 소설에 현실성과 개연성을 부여하는 중요한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이런 SF와 사실성의 적절한 조화, 숨 쉴 틈 없이 계속되는 아슬아슬한 위기 상황의 연속, 결말에서의 놀라운 반전 등 스릴러 소설 특유의 장르적 재미와 함께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작가가 독자들에게 던지는 묵직한 주제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인류 역사 속에서 일어났던 인종 학살, 즉 제노사이드 사례들을 우리들에게 제시한다. 여기에 일본인이라면 지극히 불편해할, 일종의 금기라 할 수 있는 관동대지진 때의 조선인 학살이나 남경 대학살 사건도 가감 없이 들려준다. 그러면서 우리와 “다른” 존재인 신인류는 과연 인류에게 치명적인 위험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죽임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 그렇다면 그 숱한 인종 학살과는 무엇이 다른 지, 어쩌면 인류의 진화는 인류 스스로가 가로막는 것은 아니냐고 물어온다. 그동안 역사 속에서 숱하게 벌어졌던 인종 학살들에도 그럴싸한 명분 하나쯤은 다들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나치스의 유태인 학살에도 그 이유가 분분하지만 피도 눈물도 없는 고리대금업자라는 유대인에 대한 전통적인 편견과 함께 세계 지배를 획책하는 악의 세력이라는 과대망상적인 음모론이 그 발단이 되었다고 하니 말이다. 당시 나치스의 주장에 경도되었던 사람들에게는 마치 종교적인 “복음(福音)”이나 “계시(啓示)”, 즉 자신을 신의 명령을 수행하고 있다고 여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나치스의 대학살은 그릇된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책에서의 신인류에 대한 미국의 말살 계획은 과연 그릇된 신념이라고 할 수 있을까? 평범한 인간과는 “다른” 능력들과 현생 인류를 자신보다 열등한 존재라고 인식하는 신인류는 어쩌면 미국의 국가 안위 뿐만 아니라 인류의 멸망까지도 가져올 수 있는 가장 치명적인 존재라는 미국 정보부의 판단은 “옳을” 수 도 있을 것이다. 즉 이런 존재라면 “다름”이 아니라 “틀림”이므로 미국과 인류의 영속적인 생존을 위해 “제거(제노사이드)” 되어야 한다는 명분은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명분은 그 대상 - 신인류 - 에 대한 온전한 이해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자신의 입장에서만 납득 가능한 그런 명분이긴 하지만 말이다. 책에서 누스를 보호하려는 사람들과 그를 말살하려는 미국이라는 선악의 대결 구도를 명확하게 설정하고 있지만 하이즈먼 보고서에서 경고하는 신인류의 위험성과 함께 대장정이 마무리되고 잠적하는 누스 일행을 지켜보면서 앞으로 펼쳐질 미래에 대한 일말의 우려를 드러내는 장면을 보면 작가 또한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어느 정도 유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나만의 오해일 수 도 있지만 말이다^^

 

역시나 글이 두서없이 주저리주저리 늘어지고 말았지만 결론은 이 책, “참 재미있다”고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겠다. 이 정도라면 재미와 완성도 면에서 데뷔작인 <13계단>에서 보여줬던 성취를 충분히 뛰어 넘는다고 감히 평가하고 싶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어볼 분들에게 이 지루하고 길기만 한 이 글 때문에 지레 포기하지 마시고 스릴과 재미, 그리고 묵직한 주제 의식 등 모든 면에서 올 여름 가장 “핫(hot)"한 재미를 선사할 장르 소설이 될 이 책,  꼭 읽어보길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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