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의 제자 - 두 개의 두뇌, 한 개의 심장 메리 러셀 시리즈
로리 R. 킹 지음, 박미영 옮김 / 노블마인 / 201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로라 R.킹”의 <메리 러셀> 시리즈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몇 해 전 자주 가는 추리소설 카페 게시글을 통해서였다. 게시글은 코난 도일 사후 수많은 후배 작가들이 쓴 페시티슈(Pastiche; 다른 작가들이 원전에 나오는 인물들을 등장시켜 만든 새로운 작품) 목록들을 다룬 글이었는데, 그 목록 중에 바로 <메리 러셀> 시리즈가 소개되어 있었다. 은퇴하고 시골에서 양봉(養蜂)을 하며 유유자적하던 “셜록 홈즈”가 자기 못지않게 똑똑한 소녀인 제자 “메리 러셀”과 함께 수수께끼 사건들을 해결하고 일대 모험을 벌인다는 이 시리즈는 1994년에 첫 출간한 이래 지금까지 11권이 이어질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내용이었는데, 셜록 홈즈와 여제자라는 흥미롭고 이색적인 조합인데다가 해외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니 꽤나 관심이 갔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출간되지 않아 못내 아쉬움이 들었었다. 이후 “셜록 홈즈”가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되어 큰 인기를 끌면서 “셜록 홈즈” 관련 책들의 출간 붐이 일었는데도 이 시리즈는 그 리스트들에 계속 빠져 있어서 실망감과 함께 결국 기억에서조차 희미해져가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글로는 만나기가 영 요원할 것만 같았던 이 <메리 러셀>이 드디어 출간된다는 정말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시리즈가 시작된 지 18년 만에 시리즈의 첫 권인 바로 <셜록의 제자(원제 The Beekeeper's Apprentice / 노블마인 / 2012년 6월) 말이다. 오랫동안 출간을 기다려 왔던 책이기에 책을 받자 말자 표지를 열어 들었다.

 

 1차 세계 대전의 전운(戰雲)이 전 유럽을 강타하던 1915년 4월 초, 영국 일글랜드 남동부에 있는 외진 지방인 서식스(Sussex)에 살고 있던 열 다섯 소녀 “메리 러셀”은 책에 코를 파묻고 언덕을 거닐다가 하마터면 한 남자를 밟을 뻔 한다. 납작한 천 모자를 쓴 이 50대 남자는 여위고 머리가 희끗희끗하게 세었으며 오래된 트위드 코트를 입고 있었다. 누구냐고 따지는 물음에 꿀벌을 보는 중이라고 덤덤히 말하는 이 남자, 바로 은퇴하고 이 마을에 내려와 벌을 키우는 - 원제에서 “Beekeeper"가 바로 양봉업자란 뜻이다 - 전설의 명탐정 “셜록 홈즈”였던 것이다. 홈즈가 관찰하고 있는 벌들의 정체와 벌들과 인간과의 비슷한 점에 대한 러셀의 똑 부러지는 설명에 놀란 홈즈는 그녀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차(茶)를 대접하고, 그녀에게 홈즈가 런던에서 머물렀던 “베이커가 21번지” 하숙집 주인으로 유명했던 “허드슨” 부인을 소개한다. 이렇게 홈즈와 러셀의 인연은 시작된다. 홈즈는 러셀을 제자로 거두어 들여 그녀에게 변장술과 추리기법, 화학실험 방법 등 자신의 노하우들을 하나둘씩 전수하고 둘이서 함께 마을에서 벌어진 독극물 사건과 도둑 사건을 해결한다. 이렇게 탐정 수업과 사건 해결을 통해 어느새 훌쩍 커버린 메리는 옥스퍼드 대학 신학과에 진학하게 되고, 방학마다 고향에 내려와 홈즈와의 우정을 계속 이어가며 홈즈와 함께 미국 상원의원 딸 납치 사건을 멋지게 해결하면서 이제는 홈즈의 전기 작가인 왓슨을 대신할 홈즈의 어엿한 파트너로 자리매김한다. 그런데 홈즈와 메리를 위협하는 사건이 연이어 일어난다. 누군가가 설치한 폭탄으로 홈즈는 등에 부상을 입고, 메리가 머무는 기숙사에 폭탄이 설치되지만 홈즈 덕에 메리는 위험천만한 순간을 넘기게 되며, 왓슨 박사는 홈즈의 경고로 자신의 집에서 빠져 나오지만 집은 폭탄이 터져 전소(全燒)되는 사고를 당하게 된다. 홈즈의 추리 기법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의문의 세력들은 홈즈와 메리, 그리고 주변 인물들을 미행하면서 테러를 가해오고, 홈즈와 메리는 그들을 따돌리고 중동 예루살렘 지방으로 몸을 피해서는 예루살렘 주변의 성지(聖地)를 차례로 순례하면서 정체불명의 적들을 대처하기 위한 계획을 세운다. 마침내 모든 계획을 마무리한 홈즈와 메리는 적이 기다리고 있는 런던으로 돌아온다.

 

  이 책의 매력은 우리에게 익숙한 “코넌 도일” 원전(原典) 속의 홈즈와는 여러 면에서 다른 새로운 모습의 “셜록 홈즈”와 그에 버금가는 천재적인 두뇌 솜씨를 보여주는 “메리 러셀”, 일견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원작의 홈즈와 왓슨 콤비를 무색하게 만드는 멋진 궁합과 활약을 펼쳐 보이는 “캐릭터”의 매력을 들 수 있겠다. 우선 이 책에서 홈즈의 가장 큰 변화라면 “우리가 알고 있던 그 홈즈 맞아?”라는 의문이 절로 들 정도로 확 바뀌어 버린 그의 “성격”을 꼽을 수 있겠다. 쉰 네 살 노년(老年)에 접어 든 탓인지 아니면 악의와 살의가 가득한 범죄의 온상인 런던이라는 대도시를 벗어나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여유로운 은퇴생활을 하면서 성격이 많이 유순해진 탓인지 예전처럼 음울한 성격 - 종종 이런 음울한 성격 때문에 다른 페시티슈 소설 속에서 마약 중독자로 등장하기도 한다 -과 무능한 경찰들을 비웃던 냉소적이고 독선적인 모습은 자취를 감춰 버리고 “이토록 인간적인 셜록 홈즈는 본적이 없다!”라는 뒷 표지 문구처럼 한결 인간미 있는 따뜻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홈즈의 인간미는 친우 왓슨 박사나 안주인 역할을 하는 허드슨 부인의 안위를 걱정하는 모습에서나 마흔 살 가까이 나이 차이가 나는 제자 메리를 때로는 딸처럼 때로는 연인처럼 아끼고 보살피는 모습 등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이런 성격적인 변화 외에 홈즈의 추리 솜씨에도 원작과는 다른 면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물론 사소한 몇 가지 단서들로 그 사람의 인적상황을 추리해내는 번뜩이는 추리 - 책 도입부에서 처음 만난 메리의 가족관계와 성장과정을 마치 곁에서 지켜본 것 마냥 세세하게 읊어대어 메리를 놀라게 만든다. 메리는 그런 홈즈에게 200년 전이었다면 화형을 당했을 것이라고 맞받아치며 자신 또한 홈즈의 내력을 몇 가지 단서로 추리해 낸다 -, 변장술과 추적술, 사건 수사 능력 등 원작에서 보여준 능력들은 전혀 퇴색하지 않았지만 원작에서처럼 사람들을 깜짝깜짝 놀라게 하고 마치 사건 전말을 홈즈 혼자서 모두 꿰뚫고 있는 듯한 초능력(超能力)과도 같은 능력이 아니라 좀 더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일부러 원작보다 그 능력의 수위(水位)을 낮춘 듯 묘사하고 있다. 그 이유는 원작에서는 지적 수준과 추리 능력 면에서 평범한 일반인인 왓슨의 시각에서 홈즈를 그려내다 보니 작은 단서들 만으로 사건을 척척 해결해내는 홈즈의 능력에 놀라움과 경탄 일색일 수 밖에 없겠지만 이 작품에서는 홈즈에 필적하는 두뇌 회전과 추리 능력을 가지고 있는 메리의 시각으로는 왓슨처럼 신기하지 만은 않은, 동등한 수준에서 바라보고 이해해 볼 수 있는, 또한 제자로서 배우고 또는 응용해 낼 수 있는 그런 설정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런 설정은 메리가 홈즈와 여러 사건을 겪어 나가면서 보조 또는 제자 역할에서 머무르지 않고 홈즈의 든든한 파트너로 성장해 나가는, 즉 파트너로서의 홈즈와 메리의 관계 설정에 개연성과 설득력을 부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기에 시리즈의 첫 시작이다 보니 아직은 미숙해서 홈즈에게 많이 의존하는 메리이지만 시리즈가 거듭될 수 록 홈즈와 훌륭히 짝을 이뤄 사건들을 해결하는, 심지어 홈즈를 능가하는 천재성을 발휘하는 멋진 활약을 펼치는 캐릭터로 성장해나갈 것이라는 기대감을 절로 들게 한다.

 

이렇게 전설인 홈즈와 현실의 메리가 어우러져 사건을 해결해나간다는 캐릭터 관계 설정인 참 재미있고 매력적이지만, 책 속에 등장하는 사건들은 기대했던 만큼 기발하고 흥미롭지는 않아서 아쉬움이 들기도 했다. 물론 이 책이 메리의 성장에 포커스를 맞추다 보니 책에 등장하는 사건들 또한 그런 성장 과정에 맞춰 소소한 사건에서 중대한 사건으로 커져 나가는 것으로 이해해 볼 수 도 있지만 원작에서처럼 매 사건 기이하고 흥미로운 사건들이 등장하기를 기대했던 독자들은 다소 실망할 수 도 있을 것이다. 특히 홈즈와 메리를 먼 중동지방까지 몸을 숨기게 만들었던 마지막 사건은 그 전개와 마지막 장면에서 홈즈와 메리가 맞딱뜨리는 범인의 정체 -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밝힐 수 는 없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홈즈와 메리는 홈즈와도 인연이 깊은, 어쩌면 둘에게 있어 가장 강력한 적일 수 도 있는 의외의 인물을 맞닥뜨리게 된다 -가 흥미진진하긴 했지만 범인과 벌이는 결투씬은 기대했던 것처럼 긴장감 넘치고 짜릿하지는 않은, 오히려 밋밋하게 느껴질 정도로 실망스럽게 끝을 맺고 있다. 그러나 이 시리즈가 18년간 계속 이어져 왔을 정도로 많은 독자들에게 꾸준히 사랑을 받고 있다는 점은 앞에서도 말했던 것처럼 이제 파트너의 위치로 한껏 성장한 메리가 이어지는 시리즈에서는 좀 더 기이하고 신비로운 사건들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절로 불러일으키니 미리부터 실망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이 책을 어떻게 감상하는 게 좋을까? 원작에서의 차갑고 냉소적이며 카리스마 넘치는 홈즈를 기대했던 독자들이라면 다소 당황스러울 수 도 있을 것이다, 작가는 그런 독자들의 반응을 어느 정도 예상했는지 작품 속에서 “나의 홈즈는 왓슨의 홈즈가 아님을 인정하는 바다.”라고 말하고 있고, 홈즈 또한 소설에서 왓슨의 소설 속 자신의 모습은 과장되었다고 밝히는 등 여러 번 자신이 그려낸 홈즈의 원작과의 차별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원작과의 차이만을 자꾸 들춰내어 비교하는 것 보다는 원작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 “로라 R.킹”이 새롭게 만들어 낸 “셜록 홈즈 이야기” 로 감상하는 것이 더 좋을 듯 하다. 개인적으로는 국내 출간을 기다려온 보람을 충분히 맛볼 수 있었던 재미있는 책으로 평가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늦게나마 국내 출간의 물꼬를 트게 된 이상 이 시리즈의 남은 10권과 올해 출간될 예정이라는 12번째 시리즈까지 계속해서 출간되어 주길, 여기에 하나 더 욕심 내보자면 가급적 빠른 시일 안에 만나볼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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