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 비치 - 상처 받은 영혼들의 파라다이스
케이트 해리슨 지음, 이영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천국에서 온 편지? 죽은 친구가 e메일 보내”(문화일보, 2012-3-14)

 

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싶어 눌러 봤더니 실제로 일어난 일이란다. 이 기사에 따르면 외국 신문사 인용 기사로 2012년 3월 13일 미국에서 지난해 6월 세상을 떠난 사람으로부터 지인 세 명이 e메일을 받았다고 보도했는데, 특히 e메일은 죽은 사람과 친구들만 아는 사건이나 사적인 대화를 담고 있어 진짜 누가 편지를 보냈는지에 대한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고 한다. 메일을 받은 친구들은 죽은 친구가 보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하니 누군가의 “장난”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실제로야 전혀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그러고 보니 “죽은 사람으로부터 온 편지”라는 소재는 그리 낯선 것만은 아닌데, 故 최진실, 박신양 주연의 영화 <편지(1997)>나 제4회 대한민국 뉴웨이브문학상(2011년)을 수상한 “김장환” 작가의 <굿바이, 욘더>도 이야기 시작과 전개는 전혀 다르지만 “죽은 사람으로부터 온 편지”라는 소재만큼은 동일하다고 할 수 있겠다. 이번에 읽은 “케이트 해리슨”의 <소울비치;상처받은 영혼들의 파라다이스(원제 Soul Beach / 알에이치코리아 / 2012년 4월)>도 이처럼 죽은 언니에게서 받은 한 통의 이메일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TV 리얼리티 쇼에서 "노래새”라고 불리며 큰 인기를 끌었던 19세 소녀 “메건 소피 런던 포스터(약칭 메기)”가 자신의 기숙사에서 죽은 채로 발견된다. 그날은 바로 이 책의 주인공이자 메기의 여동생인 “나”(앨리스)의 열여섯 번째 생일날이었다. 언니의 장례식이 열리는 날 아침 편지가 도착한다. 바로 죽은 언니 계정으로 온 편지였다. 기분 나쁜 우연의 일치이거나 누군가가 언니의 계정을 해킹한 것이겠지만 나는 언니에게 답장 메일을 보낸다. 그로부터 며칠 후 “메기 포스터가 당신을 비치에서 보고 싶어 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소울 비치”라는 소셜 네트워크 사이트로 초대하는 편지가 도착한다. 이건 또 무슨 장난인가 싶어 불쾌해하지만 메일에 나와 있는 주소로 접속하니 평생 이렇게 아름다운 광경은 본 적이 없는 푸른 해변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리고 PC 스피커에서 언니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바로 언니와 나만이 알고 있는 이름을 부르면서 말이다. 언니가 바로 “그 곳”, “소울 비치”에 실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부터 나는 매일같이 죽은 언니를 만나러 소울 비치로 접속하게 된다. 마치 그림이나 사진 속 지상낙원과도 같이 아름다운 소울 비치 해변에는 언니 뿐만 아니라 많은 죽은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자연사(自然死)한 것이 아니라 언니처럼 불의의 사고로 죽은 사연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어째서 우리가 아는 천국이나 지옥으로 가지 않고 이곳에 머물러 있을까? 나는 그들의 사연을 통해 그들이 현실 세계에서 자신들의 죽음에 대한 의문과 해결이 되지 않는 이상 계속 그곳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소울 비치에서 만난 언니의 친구 “트리티”의 죽음을 조사하던 중 그녀의 죽음이 사이버 테러에 의한 왕따 때문임을 알게 되고, 트리티에게 못된 짓을 한 친구를 찾아가 혼내주고, 트리티는 마침내 소울 비치에서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나는 소울 비치에서 운명의 사랑을 느끼게 된다. 바로 죽은 사람과의 이룰 수 없는 사랑 말이다.

 

3부작 중 첫 번째 작품이라 아직 언니를 죽인 범인의 정체와 “소울 비치”가 어떤 곳인지 명확한 설명은 부족한데, 소울 비치의 정체를 짐작케 하는 단어가 하나 등장한다. 바로 “림보(limbo)"라는 단어이다.

 

종교마다 명칭과 내용은 다르지만 공통적인 사후세계(死後世界)로 천국(天國)과 지옥(地獄)을 설정하고 있는데, 가톨릭교에서는 천국과 지옥 이외에 “연옥(煉獄, purgatory)”과 “림보(limbo)"라는 곳을 설정하고 있다. 연옥과 림보, 둘은 비슷한 듯 하면서도 다른 곳이라고 하는데 연옥이 대죄를 모르고서 지은 자 또는 소죄(小罪)를 지은 의인의 영혼이 그 죄를 정화함으로써 천국에 도달하게 되는데, 바로 이 ‘일시적인 정화’(satispassio)를 필요로 하는 상태 및 체류지라고 한다면 림보는 그리스도교를 믿을 기회를 얻지 못했던 착한 사람 또는 세례를 받지 못한 어린이 등의 영혼이 머무는 곳이라고 한다. 그런데 연옥의 개념은 가톨릭에서는 필수 교리이지만 개신교에서는 거부하고 있으며, 림보의 경우 가톨릭 내에서도 폐지 논의가 있을 정도로 의견이 분분하다고 하고 때로는 둘이 혼용해서 쓰이기도 한다고 한다. 이 책에서 소울 비치를 “림보”로 설정하고 있는데, 위의 설명으로 분류한다면 엄밀히는 “연옥”의 개념이 더 정확할 듯 하다. 그러나 아직 시리즈 첫 권이다 보니 설정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데 후속편에서 보다 구체적인 설명을 기대해봐야 할 것 같다.

 

이처럼 종교(宗敎) 속의 사후세계인 “림보”를 현실의 인터넷 가상 온라인 사이트로 설정한 것이 참 독특하고 색다른 재미를 주는 이 책, 이야기도 대부분 영 어덜트(YA; Young Adult) 소설이나 로맨스 판타지 소설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특징들, 즉 판타지나 SF는 그저 배경일 뿐 달달하고 가벼운 로맨스 위주의 전형을 탈피하여 판타지와 로맨스,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침 없이 충실하게 그려낸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지극히 아름다운 낙원이지만 그곳에 살고 있는 죽은 이들에게는 아무 의욕 없이 그저 시간만 보내는 따분한 곳일 수 밖에 없는 곳인 소울 비치, 많은 사람들의 죽음 속에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 지, 주인공은 그 비밀들을 어떻게 밝혀내 그들을 “해방” 시켜줄지 궁금하게 만든다. 특히 언니를 죽인 범인의 독백으로 짐작되는 각 쳅터 시작 부문의 글들은 위험은 결코 언니의 죽음으로 끝이 난 것이 아니라 그녀의 동생인 엘리스에게도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어 후속권들에서 펼쳐질 위험을 상상해보면 절로 오싹하게 만들고, 생사를 초월한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 시작되는 장면에서 아쉽게도 끝을 맺다 보니 과연 이 로맨스는 어떤 식으로 끝을 맺을지 또한 궁금하게 만든다. 이처럼 후속권의 이야기들을 절로 기대하게 만드는 이 책, 때로는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에 한껏 빠지게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고조되는 스릴과 긴장감으로 짜릿한 기분마저 들게 하며, 생사를 초월한 사랑에 가슴 한 켠을 뭉클하게 만들기도 하는, 재미 면에서는 충분히 “성공적인” 책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다만 정통 판타지나 SF 소설의 묵직함을 기대했던 분들께는 아무래도 가벼울 수 밖에 없는 이야기라 실망할 수도 있으실 태니 신중히 선택하시기를.

 

최고라고 할 수 는 없지만 기대 이상의 재미와 감동을 선사했던, 후속권이 기다려지는 재미있는 “로맨스 판타지” 소설이었다. 영화화 소식은 없지만 <트와일라잇> 이후 로맨스 판타지 소설의 영화화 “러쉬(Rush)"에 편승해 이 책도 영상으로 만날 수 있기를 기대 - 특히 환상적인 소울 비치 모습이 어떻게 그려낼지 정말 기대된다 - 해본다. 아울러 2번째 작품인 ”소울 파이어(Soul Fire)"도 조만간 만나보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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