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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미스터리 2012.봄 - 35호
청어람M&B 편집부 엮음 / 청어람M&B / 2012년 2월
평점 :
품절
국내 유일의 추리소설 전문 잡지인 <계간 미스터리>를 지난 겨울호(34호)에 이어 봄호(35호/한국추리작가협회 저/청어람m&b/2012년 2월)로 다시 만났다. 지난 겨울호가 연초에 나오다 보니 2011년 추리소설계를 결산하는 특집 기사들이 많았다면 이번 호는 “봄”이라는 계절에 걸맞게 다양한 특집기사와 추리 꽁트, 국내 단편들, 그리고 해외 단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읽을 거리들을 만나볼 수 있어 한층 풍성해진 그런 느낌이었다.
책을 펼쳐 들면 첫 특집 기사로 한국 추리소설의 대부(代父) “김성종” 작가와의 인터뷰가 실려 있다. 작년에 참 재미있게 읽은 <죽어야 사는 남자>의 저자인 “손선영” 작가가 인터뷰어로 나서는데, 우리 추리문학계의 신구(新舊) 세대를 대표하는 작가 - 김성종 작가는 아직도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계시니 표현이 맞지 않지만 -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개인적으로 김성종 작가의 작품은 단편집들이나 단권 소설들은 여러 권 읽어봤지만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여명의 눈동자(1977)>나 <제5열(1978)>은 드라마로는 접해봤지만 소설로는 접해보지 못했다. 책이 출간된 지(초판 기준)가 벌써 30 여 년이 넘었기도 했지만 추리소설을 가장 많이 읽었던 80, 90 년대 청소년 시절만 해도 한국 추리소설은 “성인(成人)” 소설로 인식되었던 탓도 있을 것이다. 이번 인터뷰에는 우리 추리문학계의 현실과 발전 방향, 작가의 문학 세계, 그리고 지난 1992년 김성종 작가가 사재(私財)를 들여 개관하여 어느새 20주년을 맞이한, 국내는 물론 국외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유일무이한 추리문학 전문도서관인 “부산 추리문학관” 등에 대하여 이야기 나누는데, 우리나라 추리 문학계의 거성(巨星)으로서의 풍모와 함께 척박하기만 한 우리 추리문학계의 현실과 미래에 대한 작가의 고뇌와 책임을 함께 엿볼 수 있는 인터뷰였다. 올해 연세가 71세이시니 고희(古稀)를 넘기셨지만 부디 오래오래 건강하셔서 앞으로도 새로운 작품들로 계속 만나 뵙기를 바래본다.
김성종 작가와 함께 한국 추리소설계를 이끌어 온 “노원” 작가와 “이상우” 작가의 짤막한 추리 꽁트도 재미있지만 신인작가들이 선보이는 8편의 추리소설들은 추리소설 단편선집을 한 권 따로 읽는 것과 같은 재미를 선사한다. 단편들 중에서 인상 깊은 작품이라면 <사랑보다 깊은 상처(김차애)>, <구제역 소동(김용상)>, <팔선연회투안(오현리)>, 이렇게 세 편을 꼽고 싶다. <사랑보다 깊은 상처>는 유명 남자 가수 - 책에서는 JB라는 이니셜로 나와서 누군가 싶었는데, 제목을 보니 바로 “나는 가수다”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임재범”을 모델로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가 광적인 여성 팬에게 납치되는 사건을 그렸는데, 비극적 결말이 꽤나 인상적이었고, <구제역 소동>은 구제역(口蹄疫)에 대한 음모론(陰謀論)을 소재로 하고 있는데, 꽤나 설득력 있고 그럴싸하게 그려져 “과연?” 이르는 의문이 절로 들게 만들었다. <팔선연회투안>은 중국 신선의 대모(大母)격인 서왕모(西王母)의 생일 연회에 참석한 “팔선(八仙)” - 도교(道教) 및 신화에 등장하는 8인의 신선(神仙). 종이권, 장과로, 한상자, 이철괴, 조국구, 여동빈, 남채화, 하선고 등 8 명을 합쳐 부르는 말이다. 중국 회화(繪畫)에 단골 소재로 그려지고 있으며, 도교 소설이나 무협지 등에도 자주 등장한다(네이버 백과사전 발췌) - 들이 술 도난 사건을 지상의 명탐정들의 도움을 얻어 해결한다는 이야기인데, 여기에 등장하는 명탐정들 면면을 보면 바로 셜록 홈스, 에르큘 포와로, 형사 콜롬보, 형사 “더티” 해리, 필립 말로, 명탐정 코난 등등 가히 슈퍼 히어로 급 탐정들, 즉 미국 슈퍼 히어로들이 총출동하는 영화 <어벤저스(The Avengers, 2012)>가 곧 개봉한다는 데, 추리소설판 “어벤저스”라 불러도 좋을 만한 그런 명탐정들 리그라 할 수 있겠다. 사건 자체는 그리 대단할 것은 없지만 탐정들의 영어 이름들을 중국식으로 바꿔 부르는 것이 참 기발하고 재미있는데, 예를 들어 “셜록 홈즈”는 “사락극 곽모사”, “콜롬보” 형사는 “과륭박”, “필립 말로”는 “비리보 마락” 식으로 부른다. 실제 중국에서도 이런 식으로 부르는 지, 중국 발음과 영어 발음이 얼마나 유사한 지 절로 궁금해진다. 단편이다 보니 각 탐정들이 그저 한자리에 모였을 뿐 각자의 개성들을 충분히 살리지는 못했는데 엉뚱한 좀 더 긴 호흡과 분량으로 하나의 사건을 각자의 추리와 수사 방식대로 해결하는 소설이 나온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아마도 추리소설 마니아들에게는 <어벤저스>보다 더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을 그런 작품이 되지 않을까?
이번 호에서 가장 기대했던 작품은 일본 탐정소설 사상 3대 기서중 하나로 불린다는 <흑사관 살인사건> - 읽어보진 못했다 - 의 저자 “오구리 무시타로”의 단편추리소설 <실낙원 살인 사건>이었다. 그런데 이 작품, 30 페이지가 채 되지 않는 짧은 분량 안에 화학, 의학, 생물학, 종교에 이르기까지 온갖 학문들을 죄다 끌어다 놓은, 당최 이해가 되지 않는 난해한 작품이었다. 그래서 이 작가 원래부터 이런가 싶어 인터넷 서점에서 <흑사관 살인사건> 서평들을 검색해 보니 “이거 추리소설 맞아?”, “머리를 쥐어뜯게 만든”, “번역자조차 난해하고 어려워하는” 등등의 문구가 보이는 것 보니 “원래”부터 그런 게 맞는 것 같다. 두 번 꼼꼼히 읽으면 어느 정도 감이 잡힌다고 하는 독자분도 있었지만 한 번 더 읽어도 마찬가지여서 그냥 포기하고 말았다. 추리소설 꽤나 읽어봤다고 자부하건만 영 이해가 되지 않는다니 오기(傲氣)가 생겨 아예 <흑사관 살인사건>에 도전해볼까 하는 마음도 잠시 들었지만 괜히 머리 아프기 싫어서 이내 생각을 접었다^^ 이 외에도 ‘국민참여재판’ 참관기인 <특집 2 그림자재판 참가기>, 이상우 작가와 오현리 작가의 에세이, <특별기고 영화 스토리텔링의 생존을 위한 진화(윤창업)>, <2011년 4분기 주목할 만한 추리소설(조동신)> 등 흥미롭고 다양한 읽을거리가 수록되어 있다.
지난번 겨울 호를 읽고서 남긴 감상처럼 “존재 하나만으로도 추리소설 마니아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귀하고 소중한 잡지”라는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다시금 깨닫게 해 준 봄 호 였다. 여름 호에는 한여름 더위를 잊게 할 만한 재미와 스릴을 맛볼 수 있는 특집 기사와 작품들이 소개되기를 기대해보며, 부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