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파라치 황금펜 클럽 Goldpen Club Novel
이석용 지음 / 청어람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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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파라치(Paparazzi)

유명 인사나 연예인의 사생활을 카메라로 몰래 찍은 뒤 이를 언론사에 고액으로 팔아넘기는 프리랜서 카메라맨을 의미하는 이 단어의 원뜻이 이탈리아어로 “파리처럼 웽웽거리며 달려드는 벌레”를 말한다니 원 뜻과 실제 의미가 딱 제격인 그런 단어일 것이다(네이버 백과 사전 발췌). 그런데 요새는 유명 인사만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어서 정부가 교통 위반이나 불량 식품 적발에 이런 파파라치 신고 포상 제도를 활용하면서 “세파라치”(신고 포상금을 전문으로 타 먹는 사람들)이라는 신조어도 나오고 이를 양성하는 사설 학원들도 우후죽순(雨後竹筍)격으로 생겨나고 있다니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파파라치의 대상이 전 국민으로 확대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렇게 부정적인 의미로만 쓰이는 “파파라치”가 때로는 사람들 마음 속 깊은 곳에 감춰진 슬픔과 아픔을 어루만져 주고 너무나도 짧은 찬란한 시기를 영원히 보존하는 “행복”의 의미로 사용될 수 도 있다는 책을 최근에 만났다. “제 1회 황금펜 영상문학상 금상 수상작”인 “이석용”의 <파파라치(청어람/2012년 2월)>이 바로 그 책이다.

 

 

선천적인 청각 장애로 말을 할 수 없는 19세 청년 “길도”는 큰 누나가 일본으로 2년 짜리 장기 출장을 가는 바람에 꿈에도 그리던 독립을 하게 된다. 물론 큰 누나 집에서 열 살 난 조카 “다홍”이와 함께 살면서 아침마다 아버지께서 운영 하시는 우유 대리점 배달 업무는 그대로 하는 “반쪽” 자리 독립이라고 할 수 있지만 말이다. 무슨 일을 할까 고민하다가 친하게 지내는 “한상욱” 신부님이 빌려 주신 디지털 카메라를 가지고 뭔가 사업을 해보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시작한 일이 바로 “파파라치” 일이다.

 

 

당신의 일상에서 흘려보내는 멋진 순간을

전문가의 뷰파인더에 담아드리겠습니다.

당신조차 낯설고, 치명적인 매력을 발견할 기회.

당신의 일상을 담아드리겠습니다.

 

 

라는 홍보 문구를 걸고 홈페이지까지 개설한 길도에게 드디어 첫 의뢰가 들어온다. 회사원 “나애리”라는 젊은 여성의 일상을 담는 의뢰인데 첫 의뢰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면서 의뢰가 계속된다. 그런데 길도의 의뢰인들은 결코 평범하지가 않다. 반년 전 남편과 아이를 불의의 교통사고로 잃고 아직도 그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여인이 자신의 일상을 찍어달라고 의뢰를 해오는가 하면, 결혼해서 이민을 가기로 한 직장 여성이 자신의 행복했던 일상을 담아달라고 의뢰하는데 길도가 담은 사진들 속에는 그녀 주위를 맴도는 한 남자가 찍혀있다. 그리고 IT 기업 중견 간부인 한 남자는 술만 마시면 필름이 끊기는 일이 발생하자 음주 후 자신의 행동을 담아달라고 의뢰해오고, 청소년들의 카운슬러로 유명했던 한 여인은 얼굴에 병이 생겨 얼굴을 가리고 살아가는 자신의 일상을 담아달라고 의뢰해오며, 또한 만화 작가는 밤마다 자신이 개로 변하여 길거리를 방황한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자신이 변한 “개”를 촬영해달라고 의뢰를 해온다. 그저 사물이나 인물을 정지된 모습으로 포착하는 것에 불과한 길도의 사진에는 뭔가 다른 것이 담겨 있다. 바로 의뢰인들의 슬픔과 상실을 치유하는 힘이 있던 것이다. 사물과 사람의 이면(裏面)의 모습까지 포착해내는 길도의 사진 때문에 의뢰인들은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게 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든 생각이 바로 “참 착하다”라는 말이었다. 다양한 사람들과 사물을 카메라 앵글로 잡아내는 파파라치 “길도”는 선천적인 장애를 갖고 있음에도 세상에 대해 참 따뜻하고 선한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는 - 물론 장애인이라고 해서 모두가 세상에 대해 심한 차별이나 피해 의식을 갖는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약자(弱者)” 일 수 밖에 없는 장애인들이 험난하기만 한 이 사회를 살아가기가 여간 고단한 일이 아닐 것이다 - 너무나도 착한 청년이다. 그의 주변 사람들은 또 어떤가. 아들의 장애를 안 순간부터 아들의 미래를 위해 서점과 우유대리점을 경영하기 시작한 부모님들은 길도를 세상 풍파와 선입견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든든한 바람막이가 되어 주고, 어른 뺨 칠 정도로 똑똑하고 속 깊은 조카 “다홍”이는 세상 물정 모르는 삼촌을 이끌어가는 야무진 후원자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이 밖에도 두 살 연상의 애인 “화심”이나 동네 친구인 “민규”, 길도에게 카메라를 빌려주고 후견인 역할을 하는 한상욱 신부에 이르기까지 길도의 주위에는 길도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이런 주위 사람들의 한없는 격려와 사랑이, 그리고 길도의 세상에 대한 긍정적이고 따뜻한 시선이 카메라 앵글에 고스란히 담겨지고, 피사체가 된 의뢰인들의 가슴 속 깊은 상처까지 바깥으로 드러내 그런 상처와 슬픔을 어루만져 주기에 이른다. 즉 길도의 사랑과 행복이 그네들의 아픔을 치유하게 되는, 행복은 전염된다는 하버드 대학의 연구 결과에 딱 맞는 그런 이야기들인 셈이다. 그렇기에 읽는 내내 흐뭇한 미소가 입가에서 가시지가 않고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서 가슴 한 켠에는 잔잔한 감동이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렇게 “착하기만" 한 사람들과 이야기이다 보니 그만큼 극적인 “재미” 면에서는 아쉬움이 남을 수 밖에 없었다. 동화(童話)처럼 따뜻하고 아름다운 이야기에도 선악이 대립하고 극적 긴장감이 고조되는 이야기 구조를 취하는 데 이 책은 딱히 긴장감을 불러 일으키는 대목도 없고 이렇다 할 클라이맥스도 없고 그저 잔잔하게만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리고 너무나도 착하기만 하기에 길도의 주변 사람들이 오히려 비현실적인 허구의 인물로 느껴지는 것도 이 책의 성격상 어쩔 수 가 없을 것 같다. 그렇기에 “기승전결(起承轉結)” 이라는 서사 구조상 전(轉)과 결(結)이 빠진 듯한 맥 빠진 이야기로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물론 모든 책이 기승전결의 구조를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것이 무슨 절대 법칙은 아닐 것이며, 따르지 않았다고 해서 무슨 불법이나 반칙 또한 아닐 것이다. “착하다”는 장점이 그런 밋밋함을 충분히 보완하고도 남음을 이 책이 여실히 보여주고 있고, “감동”도 분명 재미의 한 요소임에는 분명하기 때문이니 말이다.

 

 

이 책, 장르소설로서의 긴장감과 재미는 다소 부족하지만 읽고 나면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위로를 느껴볼 수 있는 감동적인 책이었다. 이 책이 문학상 취지 - 황금펜 영상 문학상 취지가 소설로서도 독자적인 의미를 가지되 영상화되면 더 빛나는 가치를 드러낼 그런 작품을 장려하는 데 있다고 한다 - 대로 영상화가 될지는 미지수인데,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된다면 각 단편을 꿰뚫는 서사 라인을 좀 더 보강해서 긴장감과 재미를 한껏 살린 감동적인 영상으로 거듭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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