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숲의 자그마한 밀실
코바야시 야스미 지음, 최고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2년 2월
평점 :
품절


전작인 <밀실·살인>에서 “밀실트릭”과 “서술트릭”이라는 복합 트릭을 선보였던 “코바야시 야스미(小林泰三)를 3개월 만에 단편 모음집인 <커다란 숲의 자그마한 밀실(북홀릭/2012년 2월)>로 다시 만났다. 각각의 단편마다 추리소설 애독자라면 한번 씩은 들어 봤을 서로 다른 트릭을 선보이는 이번 작품, 다채로운 성찬(盛饌)이긴 하지만 맛이 어딘가는 부족한 밋밋한 그런 느낌이었다.

 

책에는 7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각 편의 줄거리는 인터넷 서점 출판사 소개글이나 미리 읽으신 독자들의 서평에 충분히 소개하고 있으니 여기서는 각 단편들마다 사용된 추리소설 기법(또는 트릭)을 소개하는 것으로 책 소개를 가름해야겠다. 먼저 첫 번째 작품이자 표제작인 “커다란 숲의 자그마한 밀실”에는 “후더닛(whodunit, Who has done it?)” 기법이 사용되었는데, 범인이 누구냐에 초점을 맞춘 미스터리로 대부분 고전 미스터리가 이런 방식을 따르고 있는 가장 오래된 전통적인 추리 소설 기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두 번째 작품인 “얼음다리”는 “도치서술((倒置敍述)” 기법을 사용하는데, 범인의 정체와 범행 방법을 도입부에 미리 밝혀놓고 탐정이 그 범죄를 어떻게 밝혀내는지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후더닛” 기법과는 반대의 서술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형사 콜롬보”라는 미국 드라마를 봤다면 금세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 작품인 “물의 메시지”에는 “안락의자탐정”이라고 부제(副題)를 붙여놨는데, 이는 추리소설 기법이라기보다는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의 성격이나 수사방식을 분류하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안락의자 탐정”이란 사건 현장에 나가지 않고 오로지 범인이나 주변 인물들의 증언만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을 말하는데, 안락의자란 명칭 자체가 사건 현장은 안보고 자기 집 안락의자에 앉아서 푼다고 붙여진 명칭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탐정이 추리소설의 여왕 “애거서 크리스티”가 창조해낸 명탐정 “미스 마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와 반대로 범죄 현장을 직접 누비고 다니면서 증거를 수집하고 때로는 범죄자와 일대 격투를 벌이는 “거친” 탐정을 “하드 보일드” 탐정이라고 한다고 한다. 이후 이어지는 작품들은 추리소설 장르 분류법에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는데, 150만 년 전의 지층에서 발굴된 썩지 않은 시신(屍身)이라는 황당한 미스터리를 담고 있는 “플라이스토세의 살인”, 고대 그리스의 역설과 논증을 연상시키는 “정직한 사람의 역설” - 작가도 딱히 분류할 방법이 없는지 “?? 미스터리”라고 부제를 달았다 -, 죽은 사람의 뇌세포에서 죽기 직전의 기억을 재생하여 사건을 해결한다는 SF가 가미된 “시체 대변자”, 말 그대로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미스터리를 담고 있는 “길바닥에 떨어진 빵조각에 대한 연구”가 차례대로 소개된다.

 

작품 속에는 저마다의 개성들을 자랑하는 독특한 탐정들이 등장하는데, 전작인 <밀실·살인>의 주요 등장인물들이었던 “도쿠 영감(후더닛)”과 “사이조 겐지(도치서술 미스터리)”, “신도 레츠(안락의자탐정)”가 등장하여 저마다 번뜩이는 추리 솜씨를 뽐낸다. 이외에도 탐정은 아니지만 역시 전작에 등장했던 “타니마루” 경부와 수사관들도 등장하니 전작을 읽어본 나와 같은 독자들에게는 마치 이 책이 전작에 대한 일종의 “패러디”나 또는 “외전(外傳)”처럼 느껴졌을 지도 모르겠다. 아쉽다면 <밀실·살인>의 명탐정 요리카와 탐정과 조수 요츠야가 등장했었으면 훨씬 반가웠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드는데, 아마도 작가가 두 콤비는 이런 단편에 등장시키기에는 이름값(?)이 너무 크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여기에 초한(超限) - 한계를 초월했다는 의미로 설정으로만 보면 추리소설 역사상 전무후무(前無後無)한 최고의 천재 탐정이라 할 수 있겠다 - 탐정 “∑(시그마)”(황당 미스터리), 괴짜 과학자 “마루노코 톤키치” 박사(SF 미스터리)와 그의 조수 “나(?? 미스터리)”, 그리고 단기 기억 장애자 “타무라 니키치”(일상 미스터리) 등 독특하고 이색적인 탐정들이 등장해 사건을 해결한다. 각 탐정들은 자신들이 해결하는 단편 한 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단편에서는 조연(助演)으로 등장하는데, 예를 들어 도쿠 영감은 첫 편에서 밀실 살인을 해결하고는 마지막 편에서는 단기 기억 장애를 앓고 있는 타무라와 추리 대결을 벌이고, 신도 레츠는 안락의자탐정에서 사건을 해결하고 황당 미스터리에서는 사건이 벌어진 고고학 발굴 현장의 아르바이트 역할로 등장한다.

 

이처럼 각기 다른 추리기법과 소재, 그리고 매 편마다 독특한 탐정들의 활약이 펼쳐져 한편 한편 서로 다른 재미를 맛볼 수 있지만 너무 짧은 분량이어서 그런지 이책에서 소개하는 일곱가지 추리소설 장르의 재미들을 올곧이 느끼기에는 다소 부족하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특히 단편이더라도 농밀한 짜임새와 기막힌 반전이 허를 찌르는 묵직한 정통 미스터리를 선호하는 독자들이라면 이 책의 단편들이 너무 가볍고 밋밋하다는 느낌 - 심지어 “?? 미스터리” 편에서는 미스터리보다는 “말장난”에 가깝다고 느끼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에 실망하는 분들도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정통 미스터리 뿐만 아니라 코지 미스터리( (Cozy Mystery; 일상 미스터리)와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히가시가와 도쿠야”의 “유머 미스터리”도 즐겨 읽으니 이 책 정도의 가벼움이야 많이 접해봤다고 할 수 있어 실망스러울 정도는 아니었고, 다양한 장르의 추리소설 기법들과 독특한 탐정들을 한 책에서 만나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긴 했지만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고 평가하고 싶다. 그래도 부담 없이 읽어볼 만한 가볍고 재미있는 추리소설을 찾는 분들이라면 이 작품을 추천해주고 싶다.

 

그나저나 이 작가, 추리소설은 전작과 이 작품, 두 작품 밖에 없다고 하니 단 두 권 만으로 그의 전(全) 미스터리 작품을 읽어버린 셈이 되었다. 그렇다 보니 이 작품에 나오는 탐정들 이상으로 독특한 탐정인 “요리카와 탐정” 콤비를 다른 작품에서 만나볼 수 없다는 것이 못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 소개글을 보니 이 작가, 미스터리보다는 SF 소설이 주 장르인 것 같은데 그를 SF 소설로도 조만간 만나보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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