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와 뼈의 딸 1 - 판타스틱 픽션 블루 BLUE 4-1 판타스틱 픽션 블루 Blue 4
레이니 테일러 지음, 박산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나하고는 영 거리가 먼 여성 취향의 장르라고만 여겼던 “판타지 로맨스” 소설을 근래 들어 몇 편의 시리즈와 소설들을 읽고 나니 부담 없이 재미있게 읽어볼 만한 꽤 “괜찮은” 장르 소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뱀파이어, 늑대인간, 요정, 타락천사 등 오래된 신화 속 존재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시간과 공간에 등장하여 모험과 사랑을 펼친다는, 이른바 현대판 신화라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꽤나 매혹적이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물론 불멸의 존재들과 펼치는 로맨스는 말랑 말랑하고 낯간지럽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지만 말이다. 작품성과 상업성을 함께 갖춘 한 해 최고 작품에 수여하는 미국의 도서상인 내셔널 북 어워드(NBA) 최종 후보에 오른 바 있는 실력파 작가라는 “레이나 테일러(Laini Taylor)” - 인터넷 서점에 올라와 있는 작가 사진을 보니 짙은 핑크빛 머리색이 꽤나 인상적인 미녀 작가이다 - 의 <연기와 뼈의 딸(원제 Daughter of Smoke and Bone / 랜덤하우스코리아/2012년 1월)>은 어쩌면 신화 속 존재들 중 가장 친숙한 존재이자 신비로운 존재인 천사(天使)가 21세기 현대 시대에 강림(降臨)한다는 전형적인 판타지 로맨스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여기에 특이한 존재가 하나 더 등장한다. 다른 소설들처럼 사랑의 대상이 창백하고 가냘프기만 한 “인간” 여성이 아니라 또다른 신화속 존재이자 천사의 대적자인 “키메라”족 여성을 설정한 것이다. 판타지 로맨스 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라고나 할까? 이 설정만으로도 얼마나 기막히고 애절한 사랑이 담겨 있을 지 미뤄 짐작할 수 있는 이 책, 마치 <오페라의 유령>을 연상시키는 멋진 표지를 넘겨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다.

 

 

옛날 옛적에 천사와 악마가 사랑에 빠졌다.

그 사랑의 결말은 해피엔딩이 아니었다.

 

 

프라하 예술학교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있는 17세 소녀 “카루”는 여러모로 “특이한” 여학생이다. 먼저 도대체 영 이상하지만 묘하게도 잘 어울리는 파란색의 긴 머리카락과 뽀안 살결과 쭉 뻗은 긴 다리, 예쁜 걸 넘어서 생기가 넘치고 아름다운 얼굴, 그리고 비밀과 미스터리를 품고 있는 까만 눈동자는 참 매력적이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여기에 제우스의 머리에서 완전한 성인인 채 튀어나왔다고 주장해도 반박할 수 없을 정도로 개인사에 대해 전혀 알려지지 않은 면이나 주머니에는 고대의 구리 동전들과 엄지손톱만한 크기의 옥으로 만든 진기한 물건들이 쏟아져 나오며, 부츠 속에 숨기고 다니는 칼, 총알 자국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움푹 패고 반짝거리는 흉터와 기괴한 흉터들은 그녀를 더욱 신비롭게 만드는 그런 요소들이라 할 수 있겠다. 그녀가 들고 다니는 스케치북에는 미술 수업에서 그린 그림들 이외에도 기괴하다고 할 수 밖에 없는 케릭터들이 그려져 있는데, 예를 들어 허리 아래로는 뱀이고 허리 위로는 인간 여자로, 카마수트라 조작 같이 동그랗고 완벽한 젖가슴을 드러내고, 천사 같이 아름다운 얼굴에 우산처럼 생긴 코브라의 목과 이빨이 있는 그림을 그려 놓고 “이사”라고 이름을 붙여 놓고 이 생물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곤 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남들보다 개성이 뚜렷한, 그냥 좀 유별난 소녀쯤으로 여길 수 있지만 실제 그녀는 정말 “특별한” 존재이다. 스케치북 속의 기괴한 생명체들은 그녀 말대로 “실재(實在)”하는 존재들로 그녀는 그 생명체들이 운영하는 마법가게의 주인인 “브림스톤”의 명으로 전세계 곳곳과 연결되어 있는 “비밀의 문(포털)”을 통해서 온갖 동물과 심지어 사람의 이빨들을 수집해오는 심부름을 하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전 세계 도처에 있는 많은 문들에 검은 손자국들이 나타났는데, 모두 목재나 금속 문에 불에 타서 깊게 그슬린 손자국이었다. 목격자들의 말에 의하면 기이한 그림자가 있는 아름다운 남자들과 여자들이 나타나서 손자국을 남기고는 하늘로 날아가 사라졌는데, 그때 보이지 않는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가는 그들 뒤로 열기가 물결쳤다고 한다. 즉 “천사”들이라는 것이다. 카루는 모로코에 있는 제마 엘 프나 광장에서 한달 간격으로 만나 수집한 이빨들을 건네 받아오던 “이질”을 만나던 중 그녀를 미행해온 천사와 마주쳐서 격투를 벌이게 되고, 심한 부상을 입고 가까스로 도망쳐 포털을 통해 가게로 돌아오지만 그만 의식을 잃고 만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한번도 비운 적이 없는 브림스톤이 자리를 비우고, 카루는 절대 열려 있지 않았던 브림스톤 책상 너머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는 그 문을 열어 들어간다. 그 문 너머의 세상은 하늘에 달이 두 개가 떠 있는 “또다른 세계”였다. 그녀는 그곳에서 늑대 형상을 한 키메라의 공격으로 거의 죽을 뻔한 상황까지 몰리지만 브림스톤에 의해 가까스로 구출되어 다시 마법의 가게로 돌아오게 된다. 그런데 브림스톤을 그녀를 불같이 화를 내며 그녀를 가게에서 쫓아내버린다. 일주일 동안 자신의 집에서 몸을 추스린 그녀에게 전령사인 “키시미시”가 온몸에 불길에 휩싸여 날아와 브림스톤이 선물했던 “위시본”을 건네주고는 그만 그녀의 손안에서 죽고 만다. 그리고 전세계의 모든 포털이 일제히 불길에 쌓여 맹렬하게 타오른다. 브림스톤의 마법가게로 가는 모든 입구가 막혀버린 것이다.

 

 

 

옛날 옛적에, 괴물들이 키운 소녀가 하나 있었다.

하지만 천사들이 괴물들의 세계로 열리는 문을 태워 버려서

그녀만 홀로 남겨졌다.

 

 

 

카루는 그동안 거래해온 이빨 수집상들을 만나서 그들이 가지고 있던 소원 도구들을 뺏어 브림스톤의 가게로 가는 방법을 찾고 있는데, 그녀 앞에 모로코에서 그녀를 공격했던 남자 천사 “아키바”가 나타난다. 모로코의 싸움 이후 카루에게서 과거에 알고 있는 어떤 여인의 존재를 느낀 그가 그녀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나타난 것이다. 한바탕 싸움이 벌어지지만 결국 동행하게 된 둘은 서로의 알 수 없는 매력에 점점 끌리게 된다. 카루가 17년전 자신이 사랑했던 키메라 족의 여인 “마드리겔”을 느낀 아키바는 그녀가 가지고 있던 위시본을 보고 그녀의 정체를 드디어 깨닫게 된다. 추척해온 동료 천사들을 막아서 카루를 피신시키고 첫만남의 장소인 모로코로 날아온 아키바는 그곳에서 카루와 함께 위시본을 쪼갠다. 위시본에 숨겨져 있던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으면서 그녀는 마침내 모든 것을 이해했다. 천사족과 키메라족의 오랜 전쟁, 전장에서 만나 큰 부상을 당한 아키바를 구해줬던 일, 2년여 만에 키메라 족 축제에 숨어든 아키바와 재회하여 뜨거운 사랑을 나눈 일, 그리고 발각되어 죽임을 당한 일 등등....... 이제 온전히 마드리겔의 기억을 되찾은 카루는 과연 이 세상을 평화로 다시 만들자던 아키바와의 약속과 사랑을 이번 생에서 이룰 수 있을까? 그러나 천사와 키메라의 전쟁은 갈수록 더 격렬해지고 카루와 아키바 사이에도 절대 넘을 수 없는 간극이 생겨 버린다. 이건 끝이 아니었다.

 

 

 

줄이고 줄였는데도 줄거리 요약이 꽤나 방대해졌는데, 그만큼 많은 설정과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설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책, 로맨스가 주이고 판타지적 설정은 그저 배경에 불과한 여느 판타지 로맨스와는 달리 꽤나 탄탄한 판타지 설정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선과 악으로 상징되는 천사와 키메라 족이라는 설정을 여느 소설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하면서도 이색적인 신화적 상상력으로 치밀하게 구현해내고, 이런 설정들이 아키바와 카루(마드리겔)의 사랑을 보다 더 아름답고 애절한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훌륭한 장치 역할을 해낸다. 즉 판타지적 설정과 로맨스가 어느 한 쪽이 지나치게 강조되지 않고 똑같은 무게감으로 절묘한 균형을 이뤄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즉 현대판 신화로써의 매력을 온전히 보여주는 그런 작품이라고 할까? 거기에 여느 판타지 로맨스 소설들처럼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그리고 실수만 연발해서 남자 주인공을 위기에 빠뜨리는 비련의 여주인공이 아니라 때로는 강인한 여전사로서, 또한 불가능할 것 같은 사랑을 지레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이름인 “희망”처럼 굳건히 지켜 나가려는 독특하면서도 이색적인 매력의 여주인공 “카루”와 역시나 천사라는 이름에 걸맞게 너무나 잘생겨서 비현실적인 외모 - 왜 판타지 로맨스에는 이렇게 “아름다운” 남성들이 등장하는지 불만이지만 주류 독자들인 여성들이라면 열광할 만한 그런 외모일 것이다 - 에 불멸의 사랑을 찾아 자신의 동료들조차 배신하는, 우수에 젖은 눈빛에 남자인 나도 홀딱 반할 것 만 같은 멋진 남자 주인공 “아키바” 라는 캐릭터 설정 또한 꽤나 매력적이라 할 수 있겠다. 이처럼 기발하면서도 탄탄한 판타지 설정과 남성인 내가 봐도 가슴을 울리는 애절한 로맨스, 매력적인 캐릭터 등 판타지 로맨스의 장점들만을 고루 갖추고 있으면서도 서로 겉돌지 않고 절묘하게 조화를 이뤄낸 이 책, 그동안 읽어본 여느 판타지 로맨스 소설들 중에서 단연 발군의 재미와 감동을 갖춘 멋진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초반 도입부 몇 십 페이지만 읽었는데도 이 책 참 재미있다는 생각을 절로 들게 하더니 그런 예감은 역시나 틀리지 않아 500 여 페이지에 이르는 만만치 않은 분량임에도 읽는 내내 눈길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몰입감과 재미로 금세 읽게 만드는 참 재미있는 책이었다. 이 정도 수준이라면 판타지 로맨스는 여성들만 보는 책이야 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던 남성들에게도 크게 어필할 수 있는 그런 수준이라 할 수 있겠다. 카루의 모험이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대목에서 끝나버려 2권이 벌써부터 기다려지는데, 가을에나 출간된다니 꽤나 기다려야 할 것 같다. 그나저나 영화로도 제작될 예정이라는데 너무 잘 생겨서 오히려 비현실적이라는 아키바 역할을 맡을 배우는 누구일까 정말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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