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서는 누가 죽였나 황금펜 클럽 Goldpen Club Novel
이상우 지음 / 청어람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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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방영한 드라마 <공주의 남자(KBS, 2011)>에서 철천지원수(徹天之怨讎)인 “세조(世祖)”의 딸(공주)과 “김종서(金宗瑞)” 장군의 아들의 서로 사랑한다는, 마치 조선시대 판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상시키는 애절한 사랑 이야기로 꽤나 화제를 모았었다. 아무래도 <금계필담(錦溪筆談)>이라는 야담(野談)을 소재로 한 것이니 허구일 가능성이 크겠지만 아마도 드라마 속 이야기를 실재(實在) 사건이었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 정도의 허구야 역사인식과 해석에 있어 큰 무리가 없는 “재미있는” 이야기라 할 수 있겠지만 몇몇 역사 드라마들은 역사 왜곡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비판을 받기도 한다니 앞으로는 모 개그 프로그램처럼 역사 드라마들도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오해하지 맙시다” 라는 경고 문구를 달아 놓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나도 내가 이 드라마의 주요 배경 사건인 “계유정난(癸酉靖難)”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도 어린 시절 방영했던 드라마 <고운 님 여의옵고(MBC, 1980)>을 통해서였다. 당시 이 드라마 애청자이셨던 할머니께서 계유정난이 벌어지던 날 밤 좌의정 “김종서”가 수양대군 패거리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장면을 보시면서 “저 놈 참 잘 죽었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이 기억난다. 물론 주인공(세조)의 적은 무조건 나쁘다는 할머니의 편견일 수 도 있겠지만, 당시 김종서를 혁명의 걸림돌이자 부패 세력으로 설정했던 점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 또한 당시에는 어린 소견으로 김종서 장군을 나쁜 사람으로, 심지어 세조에게 반기를 들었던 “사육신(死六臣)”들은 “매우” 나쁜 사람들로 여겼었다. 그 후로 학창 시절 국사 수업을 통해서, 또한 계유정난을 소재로 한 여러 편의 드라마를 시청하면서 계유정난의 주인공인 세조를 어떤 시각으로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김종서 장군도 때로는 부패 수구 세력으로, 때로는 충절(忠節)의 화신(化身)으로 다르게 그려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최근에 김종서 장군을 “소설(小說)”로 다시 만났다. 바로 우리나라 추리소설 대표 중견 작가인 이상우 작가의 역사 소설 <김종서는 누가 죽였나(청어람/2012년 1월)>이 그 작품이다.

 

이 소설은 조선 전기 대표적 문신(文臣)이자 육진(六鎭) 개척의 장군으로도 유명했던 김종서 장군의 일대기라는 “역사적 사실(Fact)”에 장군과 가상의 인물인 여산적 “홍득희”와의 사랑이라는 허구(Fiction)를 가미한 “팩션(Faction)"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책은 여진족과 조선인들이 어우러져 살고 있던 함경도 국경 인근 사다노 마을에서 김종서와 홍득희의 운명적인 만남에서부터 시작한다. 문자 창제를 진행하고 있던 세종(世宗)의 명으로 국경 지방에서 여진족 문자 자료를 수집하던 김종서는 부모가 조선 병사들에 의해 참혹한 죽임을 당하는 현장에서 어린 두 남매를 구해내고 누나에게는 “홍득희”를. 남동생에게는 “홍석”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그로부터 몇 년 후 황해도에 출몰하는 산적을 토벌하기 위해 나선 김종서는 그 곳에서 홍득희 남매와 재회하게 된다. 산적 두목의 정체가 바로 홍득희였던 것. 이때부터 득희는 장군을 곁에서 보호하면서 여진족 토벌과 육진 개척을 돕게 되고 하룻밤 사랑을 나누어 아들까지 낳게 된다. 김종서를 아끼던 세종과 문종이 승하하고, 단종이 왕위에 오르지만 바로 어린 단종의 숙부들이자 조선은 임금의 장자(長子)인 “정룡(正龍)”이 아닌 지손(支孫)인 “방룡(傍龍)”이 왕위를 계승한다는 풍수지리설을 내세운 안평대군(安平大君)과 수양대군(首陽大君)의 왕위를 노린 암투가 더욱 치열해진다. 김종서는 선왕의 유훈을 받들어 단종을 힘써 보필하지만 두 대군들에게는 반드시 제거해야 할 눈에 가시일 수 밖에 없었다. 마침내 계유정난이 벌어지던 날, 득희 일행은 수양대군을 막아서서 치열한 접전 끝에 대군의 상투를 잘라내는 전과를 올리기도 하지만, 이미 장군은 수양대군의 다른 무리들에 의해 큰 부상을 입게 된다. 다행히 목숨을 건져 집에서 피신한 김종서는 자신의 북방 세력을 동원하여 단종을 구해내려 하지만 그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그를 추격해온 수양대군 무리에게 아들과 함께 죽임을 당한다. 김종서의 든든한 우군(友軍)이자 그를 진심으로 사랑한 여인이었던 득희는 김종서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과 함께 다시 북방으로 향한다.

 

이 책, 홍득희가 가상의 인물이라는 것을 미리 알지 못했다면 전혀 눈치챌 수 없을 정도로 김종서라는 실제 인물과 홍득희라는 허구의 인물을 절묘하게 녹여낸 점을 가장 큰 장점이라고 꼽을 수 있겠다. 또한 세종의 명으로 잠잘 때를 빼놓고는 절대 활을 벗어놓지 않는 김종서의 고집스러움과 함께 오판으로 전투를 그르치는 실수, 여진족 족장과 호랑이 사냥 내기로 전쟁의 승부를 결정하는 무모함, 어린 임금을 지켜내려는 절절한 충심(忠心), 은인에서 연인으로 발전하는 득희와의 로맨스 등 김종서의 다양한 모습들을 통해 인물의 입체성을 적절히 살려낸 점도 탁월했으며, 여러 작품들에서 보여준 작가 특유의 군더더기 없는 명료하고 깔끔한 문체 또한 몰입도를 높여주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몇 몇 아쉬운 점도 눈에 띈다. 우선 몇 몇 독자들도 지적했던 것처럼 역사 소설에 뜬금없이 “프리섹스”라는 현대 단어가 소제목으로 등장한 점은 큰 티가 될 수 있겠다. 물론 양녕대군(讓寧大君)의 지나친 엽색(獵色)행각을 설명하는 단어로는 제격이겠지만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 소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일 것이다. 마치 사극에 핸드폰이 등장하는 그런 느낌이었다고 할까? 또한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 할 수 있는 “계유정난”이 일어나는 과정에서 수양대군과 김종서의 갈등 관계가 좀 더 극적이고 치밀하게 전개되지 못하고 뻔히 예상할 수 있는 결말로 마무리된 점 또한 아쉬움이 든다. 기왕에 ‘팩션’ 추리 역사소설을 표방한 이상 역사적 사실에 얽매이지 않고 김종서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를 좀 더 촘촘하게 설계해서 의외의 반전(反轉)을 끌어냈으면 훨씬 재미있지 않았을까? 결국 이 책의 제목인 “김종서는 누가 죽였는가”라는 질문의 답은 수양대군이라는 뻔한 답을 찾을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실제 그를 죽인 사람은 “양정(楊汀)”이라는 수양대군 휘하의 장수로 오래전 홍득희 부모를 죽인 악연(惡緣)을 끊지 못해서 결국 화를 불러왔다는 설정이 다소 의외성이 있지만 그렇다고 반전이라고 보기에는 약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이 책, 나에게는 지루하지 않고 단숨에 읽히는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특히 지난날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우리 추리소설계에서 독보적인 성과를 보여준 작가의 이름과 작품을 기억하고 있는 올드 팬들에게는 그의 건재함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반가운 그런 책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멋진 소설들로 계속 만나뵐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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