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판타지 - 스파이처럼 여행한 26가지 에피소드
오세아 지음 / 시공사 / 2011년 10월
평점 :
품절



“비엔나(오스트리아)”, “파리(프랑스)”, “런던(영국)”은 짧게나마 가본 적이 있어 유럽에서 위 세 곳을 제외하고 가보고 싶은 곳- 위 세 곳을 포함한다면 "파리"는 꼭 다시 한번 가보고 싶다 -을 물어 온다면 “로마(이탈리아)”와 “취리히(스위스)”를 꼽곤 한다. 유럽 전역을 여행해 본 아내 말로는 북유럽 국가(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들이나 동유럽 국가들도 볼거리가 많다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유명 관광지인 위 두 도시를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렇다면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Moskva”는 어떨까? 왠지 고개를 설레설레 젓게 된다. 그 이유는 “모스크바”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이미 공산주의의 맹주 “소련”이 붕괴된 지도 20 년이 지났는데도 “속을 알 수 없는 사람”, “음흉한 사람”이란 뜻으로 오해하고 있는 “크렘린(Kremlin)”, 러시아어로 “아름답다”라는 의미에서 유래되었음에도 “붉은”하면 공산주의가 제일 먼저 연상되는 “붉은 광장”, 007 영화의 단골 악당이었던 “KGB" 등 어릴 적 반공 교육을 받았던 내 또래의 사람들이라면 아직도 공산주의 시절 그 무서운 이미지가 쉽게 가시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붉은 색” 이미지 가득한 “모스크바”를 “판타지”와 같다고 말하는 책을 만났다. 프랑스 남자 친구를 따라 모스크바에 살기 시작한 지 1년이 넘은 “오세아”가 쓴 <모스크바 판타지; 스파이처럼 여행한 26가지 에피소드(시공사/2011년 10월)>이 바로 그 책이다.

작가는 프롤로그에서 “모스크바에서 왔어요”라고 밝히면 사람들이 한번쯤 더 돌아보게 하는 마술을 부리는, “춥지요?”라고 되묻는 사람들이 태반인 그런 도시라고 말한다. 흔히들 낯익은 도시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름 외에 알려진 것이 거의 없는 도시인 모스크바를 정확히 일 년 전, 새롭게 시작하는 삶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막연한 불안감으로, 이름이 주는 중압감 때문에 비행기 밖의 차가운 공기만큼이나 싸늘한 마음으로 시작했던 작가는 처음 몇 달은 이곳에 처음 오는 사람들과 다를 게 없었지만 모스크바의 진면모를 확인한 후 부터는 달라졌다고 말한다. 자신의 인생에 있어 신대륙이었다고 밝힐 정도로 모스크바의 매력에 흠뻑 빠진 작가는 자신이 그랬듯이 지난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봄과 여름이 지나면서 찾은 장소들을 가슴 속에 담아 누군가를 놀라게 해주고 싶어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스스로 “이제 나는 모스코비치((Moskvich; 모스크바인)이야”라고 말하는 작가가 소개하는 “모스크바 살이 안내서” 쯤인 셈이다. 

책은 먼저 모스크바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되는 “붉은광장”과 모스크바를 가로지르는 강주변의 풍광들, 100개나 넘는다는 박물관, 미술관들과 음식사진들, 그리고 책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다산(多産)을 상징하는 러시아 인형 “마뜨로슈카” 등 러시아에 대한 이미지 사진들을 소개하고 "Part 1 모스크바에 도착하다“에서부터 본격적인 모스크바 살이 이야기를 전해준다. 역시 나처럼 기억하는 모스크바의 이미지가 그리 밝아 보이지 않았다는 작가는 1년 전 첫 도착해서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혼자서 돌아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정도였는데, 첫 나들이는 온지 며칠 되지 않았던 어느날, 쁘띠 쿠숑 - 작가를 모스크바로 이끈 프랑스 친구 - 의 동료와 저녁을 먹다가 누군가 붉은 광장에 산책하러 가자고 제안하면서부터였다고 한다. 긴장하며 20분쯤 걸었을 때 갑자기 눈앞이 환해지면서 마주하게 된 붉은 광장의 아름다움은 몇 달 전 서울의 생활을 접고 모스크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참 복 없는 인생이라고 자조했던 모든 불평과 불만, 그리고 일말의 불안감마저도 날려버릴 정도였다고 말한다. 자신의 마음 속에 어느덧 불안하고 무시무시했던 모스크바에 대한 이미지는 동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화려한 과거가 존재하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도시로 새롭게 자리 잡게 되었고, 자신의 남자 친구와 함께 하는 삶이 이곳의 아름다움처럼 반짝반짝 빛나기를 기도하며, 설레이는 그 마음을 누군가에 들려주고 싶었다고 한다. 이처럼 Part01에서는 모스크바 첫 살이에 대한 단상(斷想)들을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내고 관련한 모스크바 명소, 즉 “붉은 광장”, “크렘린 궁전”, “굼 백화점”, “바실리 사원”, 박물관들의 사진들을 싣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Part 02 모스크비치의 일상“에서는 본격적으로 “모스코비치”로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일상들, 즉 현지에서 배울 작정으로 러시아어 알파벳도 모르고 시작한 모스크비치 생활인지라 두려움이 더 컸을 지도 몰랐다는 이야기와 함께 두려움과 무서움에 시작한 지하철 타보기에서 지하철 천정과 벽면을 수놓은 예술작품들에 경탄하기도 하고 지하상가에서 쇼퍼홀릭으로서의 본성을 되살려보기도 하며, 모스크바에서는 만나지 못할 줄 알았던 현대 미술관(MOMA) 등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Part 03. 모스크바에서도 잘 먹고 산다 여전히” 에서는 러시아 팬 케이크인 “블린듸”와 만두인 “펠메니”, 스프 “보르쉬”등 모스크바에서 만나볼 수 있는 대표 요리들과 여러카페, 레스토랑 들을 소개하며, 그리고 부록에서는 모스크바 여행시 주의할 점들이나 연락처 등을 싣고 있다.

 이 책 속의 “모스코비치”로서의 작가의 삶에 대한 짧은 글들과 사진들을 따라가다 보면 우중충한 잿빛만 가득했을 것 같은 모스크바가 “아름다움”이라는 의미의 ‘끄라스나야’에서 “붉은 광장”이라는 말이 유래되었듯이 온통 아름다운 색채가 넘실대는, 기존 서유럽 여느 도시와는 다른 색감과 풍광으로 제목 그대로 충분히 “판타지”스럽다고 느껴질 정도로 참 아름다운 도시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물론 여행할 때 잘 알지 못하는 낯선 도시에서 기대를 뛰어넘는 의외의 아름다움을 발견했을 때, 놀라움과 감탄이 더욱 커지듯이 미지(未知)의 두려움으로 “모스크바”를 시작했기에 더 큰 찬사와 감탄이 터져 나온, 조금은 과장된 것일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명승지 정보와 풍광들만 나열한 안내서가 아니라 자신의 1년 동안의 삶과 경험을 곁들인 진솔한 이야기를 같이 담고 있어 결코 과장되지만은 않은 작가의 모스크바에 대한 “진정성”을 엿볼 수 있었다. 다만 모스크바에서 만난 사람들이나 일상에서 만난 에피소드들이 충분히 담겨있지 않아 여행에세이라기 보다는 안내서 성격이 더 강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가 없었던, 결국 눈만 즐거운 그런 책이 되고 만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 덕분에 모스크바는 로마와 취리히와 더불어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그런 매력적인 도시라는 것을 알게 되었던 점만큼은 큰 수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언제가 될지 기약조차 할 수 없겠지만 온갖 하얀색 눈으로 뒤 덮힌, 그리고 군데 군데 회색빛 건물만 볼 수 있으려니 했던 동토(凍土)의 나라가 아닌, 사계절 다채로운 색깔을 고스란히 맛볼 수 있는 아름다운 도시 모스크바 여행이 나에게도 “판타지"가 되는 그런 여행을 꼭 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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