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 동안 가장 많이 만난 “한국 작가”를 꼽는다면 단연 “이재익” 작가일 것이다. 2010년 9월 단편집 <카시오페아 공주>를 시작으로 <압구정소년들>, <서울대 야구부의 영광>, <심야버스 괴담>, <싱크홀> 등 지난 1년 동안 출간된 작품 중 <아이린>을 빼고 전 작품을 읽었다 - <아이린>은 소장하고 있는데 아직 읽지 못했다 -.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 <두시탈출 컬투쇼>의 PD라는 이색 경력을 가지고 있는 이재익 작가를 이렇게 많이 만나게 된 이유는 뭘까? 우선 1년 동안 6권이나 출간할 정도로 작가의 스피디하고 왕성한 집필 능력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전작인 <싱크홀> 서평에서도 밝힌 것처럼 판타지, 미스터리, 성장소설, 스포츠 소설, 재난 소설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군더더기 없이 숨 가쁘게 몰아치는 빠른 전개와 구성으로 책을 한번 손에 잡으면 도저히 놓을 수 없게 하는 몰입감과 재미가 탁월하고 결말에 이르러 가슴 찡하게 울리는 감동 또한 빠뜨리지 않는, “이재익 작품은 재미있다”라는 기대감을 결코 실망시키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 출간된 신작 <아버지의 길 1,2(황소북스/2011년 10월)>도 그런 기대감 때문에 망설임 없이 선뜻 선택하게 되었는데, 다 읽고 나니 이 책, 그가 전작들을 통해 보여준 재미와 감동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기대 이상의 재미와 감동을 맛볼 수 있었다.
일제(日帝)가 괴뢰국 “만주국”을 세우고 중국 침탈의 야욕을 본격적으로 드러내던 1938년 9월, 조선 신의주 인근 마을에서 여덟살 아들 “건우”와 함께 대장장이로 살고 있던 “김길수”는 만주로 조선인 징용군을 이끌고 가던 중 부족 인원을 채우기 위해 마을을 수색하여 젊은 장정들을 잡아들이던 일본 장교 “스기타” 일행에게 붙잡혀 모진 폭행 끝에 아들과 이별할 겨를도 없이 마을 면장에게 “반드시 돌아오겠다”는 말과 함께 아들을 부탁하고는 징병 열차에 강제로 몸을 싣게 된다. 만주 관동군 조선인 부대에 배속 받은 길수는 아들에게 돌아가겠다는 일념으로 가혹한 훈련을 꿋꿋이 이겨내고, 드디어 소련군과의 전투를 위해 출정(出征)을 준비하던 중 일본 끄나풀의 속임수에 의해 붙잡혀온 아내 “월화”와 재회하게 된다. 결혼 전 만주 일대에서 항일 무장 투쟁을 같이 했던 혁명 동지였던 둘은 결혼하면서 건우를 임신하게 되면서 부대 사령관이자 전설적인 항일 투사 “양세봉”의 배려로 혁명군에서 나와 신의주에 정착했던 것이다. 그러나 혁명군 시절을 그리워하던 아내는 동료에게서 양세봉의 죽음 소식을 듣고 혁명군에 복귀하여 “붉은 여우”라 불릴 정도로 혁혁한 공로를 세우지만 길수는 자신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어린 아들을 버리고 집을 뛰쳐나간 아내를 원망하며 살아왔는데, 참으로 기구한 순간과 장소에서 아내와 재회를 하게 된 것이다. 출정 전날 경비를 서던 길수는 광장에 묶여 있던 월화를 구출해 아들 건우에게로 돌아가서 자신을 기다려 달라고 당부하고는 부대 내에 있는 정신대 숙소에 숨겨준다. 다음날 아침 월화의 탈출로 발칵 뒤집혀 부대 곳곳을 수색하지만 출정 때문에 유야무야되고 길수의 부대는 만주국과 몽골의 접경지대인 “노몬한” 지역으로 출정하게 된다. 노몬한에서 맞닥뜨린 일본군과 소련군은 치열한 전투를 벌이게 되고, 소련 전차 부대에 화염병을 투척하는 말도 안 되는 전투를 벌이던 일본군은 화력의 열세를 이기지 못하고 괴멸되고 길수 또한 소련군에 포로로 붙잡혀 중앙아시아 지역의 포로수용소 “굴락”으로 보내져 모진 고초를 겪는다. 일본군으로의 복귀가 아닌 조선으로 귀환시켜주겠다는 조선인 출신 소련군 장교의 약속으로 희망을 품어 보지만 독일과의 전쟁 준비로 약속은 무산되고, 길수는 일본군으로의 귀환 대신 소련군에 남기로 한다. 드디어 독일의 소련 침공이 시작되고, 길수는 가장 치열했던 전투였던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소련군으로 참전하게 되지만 그만 독일군의 포로가 되어 독일로까지 붙잡혀와 포로수용소에 갇히고 만다. 한편 일본군 부대에 숨어 있던 월화는 소련군의 공습을 틈타 탈출하게 되고, 수많은 우여곡절과 고생 끝에 길수가 일러준 주소로 건우를 찾아오지만 이미 아들은 면장 식구를 따라 경성으로 올라간 후였다. 수소문 끝에 경성까지 찾아가 드디어 건우를 만나지만 다섯 살에 어머니와 헤어진 건우는 어머니가 못내 낯설기만 해서 선뜻 다가오지 못하지만 그런 건우에게 길수의 편지를 내밀자 그제서야 어머니 품에 안겨 눈물의 재회를 하게 된다. “굴락”보다 더한 고초를 겪고 있던 길수는 수많은 생사 고비를 넘기면서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리지만 길수는 아들에게 돌아가겠다는 일념 하나로 버티던 중 독일 외인(外人)부대라 할 수 있는 “동방부대”에 배속되어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저지에 나선다. 중과부적 끝에 다시 포로가 된 길수, 이미 온 몸은 망가져버렸지만 그래도 길수에게 돌아가겠다는 열망은 더욱 커져만 간다. 이제 태평양 건너 미국으로까지 끌려가게 될 길수는 과연 그렇게 열망하던 아들과 재회를 할 수 있을까? 이야기는 가슴 먹먹한 결말로 치닫는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할 때는 일요일 밤 9시 쯤 침대에 들면서 내일 출근해야 되니 “조금만” 읽다가 졸리면 자야지 하는 편안한 마음에서 시작했다. 그런데 이 “조금만”이라던 책 읽기는 결국 1,2권 700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을 다 읽고 나서야 마칠 수 있었다. 길수의 파란만장하고 가슴 아픈 여정에 책읽기를 도저히 중단할 수 가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꼼짝없이 붙들려 미친 듯이 읽던 책읽기는 결국 새벽 두 시를 넘겨서야 끝이 났고, 서둘러 잠을 청했지만 먹먹해진 가슴 때문에 금세 자리에서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밖에 나가 찬바람을 쐬면 좀 진정되겠지 했지만 쉽게 진정되지 않았고 다시 억지로 잠을 청했지만 머릿 속에 가득한 책 이야기 때문에 밤새 뒤척이고는 동이 터오르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아침 출근길에 오르고 말았다. 책 때문에 밤잠 못 이룬 것이 정말 언제만인가. 그리고 읽은 지 며칠이 지났는데도 이야기만 떠올리면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을 보면 여운이 꽤나 오래 갈 것 같다. 이 책의 어떤 점이 나를 이렇게 잠 못 이루게 한 걸까?
우선 도대체 그 크기와 정도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기구하고 파란만장했던 길수의 이야기가 주는 감동을 먼저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책을 다 읽고 나니 실화라는 것이 도대체 믿기지 않아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이 책은 지난 2005년에 방영했던 SBS 특집 다큐멘터리 <노르망디의 코리언>를 소설적 상상력으로 재구성해냈다는 점에 다시 한번 놀라게 만들었다. 다큐멘터리를 소개한 블로그에 실려 있는 당시 독일군 동방대대를 찍은 낡은 흑백 사진에서 작품 속 “길수”의 모습을 보고는 코끝이 찡해지고 다시 가슴이 먹먹해지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아 실제로 “김길수”가 있었구나, 신의주에서 노르망디까지 2만 km에 이르는 지옥보다도 더 고통스러운 대장정을 견뎌낸 “김길수”가 소설 속 허구의 주인공이 아니라 실재했던 분이구나. 그들이 겪었을 고통과 눈물에 절로 숙연해지면서 소설 속 장면들이 하나 하나 되살아나 명치 끝이 답답해지고 가슴 한 켠이 저려오는 그런 느낌을 들게 한 것이다. 그들 - 현재 4명으로 알려졌다 - 은 어떤 마음으로 그 지옥보다 더한 고통을 견뎌낼 수 있었을까? 작가는 책 속의 길수처럼 어린 아이, 병든 노모, 어여쁜 여동생 등 고향에서 그들을 애타게 기다리며 눈물짓고 있을 가족 때문에 육체가 부서지고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고통 속에서도 생명의 불꽃을 결코 꺼뜨릴 수 가 없었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때로는 현실이 소설보다 더 극적이고 기구하다고 하지만 그 어느 소설보다도 더 거짓말 같은 그들의 사연이 못내 믿기지 않아 블로그 속 글과 사진을 몇 번을 다시 읽고 봤는지 모르겠다. 그러고서 나온 건 탄식 뿐이었다.
길수의 이야기 하나만으로도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감당하기 힘든데, 줄거리 소개에는 길수와 월화, 건우에 국한했지만 책에는 길수 가족 이외에도 수많은 인물들이 엮어내는 저마다의 사연들, 즉 열 다섯 어린 나이에 형 대신 징용에 끌려가 변태 성욕자 일본군 장교의 성 노리개가 되어 버리고, 길수와 함께 온갖 고초를 겪다가 결국 죽고 마는 “영수”나 길수처럼 고향에 두고 온 연인에게 꼭 돌아가겠다는 일념으로 견뎌내지만 고향에 있을 줄 알았던 연인이 정신대로 끌려와 같은 부대에 있었다는 기막힌 사실을 알게 되고는 그녀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탈출한 “정대” 이야기 또한 길수 이야기 못지 않게 애달프고 슬프지만 한편으로는 나라 잃은 국민으로서 겪어야 했을 그들의 아픔에 저절로 울분이 치밀어 올랐다. 책 속 등장인물들의 겪었던 아픔과 슬픔은 일제 강점기 나라 잃은 설움과 아픔을 고스란히 온 몸으로 감내해야 했던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실제로 겪으셨던 사연이었고, 오히려 한정된 분량과 수위 때문에 제대로 다 담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매주 수요일마다 정신대 할머니들의 수요 집회가 일본 대사관 앞에서 벌어지고 있을 정도로 불과 몇 십 년 전 일인데 일본이 우리의 근대화를 이끌었다느니, 강제 징용이 아닌 자발적 지원이었다는 말을 일본인이 아닌 우리 한국인들이 버젓이 떠들어대는, 그것도 언론에다가 동네방네 떠들어대는 그 현실이 너무나도 개탄스러웠다. 이처럼 책은 길수와 주변 인물들이 엮어가는 기구한 사연들로 읽는 내내 안타까움과 슬픔에 젖게 만들고, 다 읽고 나서도 분노와 울분이 쉽게 가시지 않는 여운이 길게 남는 그런 소설이었다.
물론 구성과 이야기 전개에서 비판할 만한 구석이 없는 것은 아닌데, 길수와 월화의 다소 억지스러운 재회나 정대의 연인이 정신대로 끌려와 같은 부대에 있었는데도 만나지 못했다는 이야기, 월화가 조선으로 귀향하는 과정에서의 우연과 억지스러움의 반복들이 그러하다. 작가 입장에서는 이야기를 좀 더 극적으로 끌고 가고 감동 코드를 위한, 어디까지나 “소설적 장치”라고 말하겠지만 현실성(리얼리티)를 떨어뜨리는 장면임에는 분명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이야기의 구성과 전개를 해칠 정도는 아닌 그저 아쉬운 장면 정도로 느껴졌다.
처음에 이 글을 쓰면서 서평이 아닌 호들갑만 떠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었는데 역시나 앞서 쓴 글을 읽어보니 유치하기만 한 감상문이 되고야 말았다. 유치한 글솜씨야 나 스스로를 탓해야 할 것 같고 어쨌든 두 달 남짓 남은 기간 동안 어떤 책들을 만나게 될지 모르지만 올 한 해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책 중 하나가 될 것 같다. 그리고 이 작품은 앞으로 오랫동안 이재익 작가의 “대표작”으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작가는 “향후 수년간 이런 작품을 다시 쓰지 못할 것 같다”라고 말하지만 이 작품보다 더한 재미와 감동을 선사할 멋진 작품을 조만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