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8, 우연히 데이브 거니 시리즈 1
존 버든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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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하나를 고르게 하고 그 숫자에 어떤 숫자를 더하거나 빼고 나눠서 맞추는 “숫자 맞추기 게임”은 수학 공식을 이용한 퍼즐로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수십 가지 공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종종 유명 마술사가 초대 손님이나 방청객에게 생각나는 숫자를 적어내게 하고 맞추는 마술은 속임수가 분명하겠지만 “독심술”이나 "텔레파시“가 아닐까 하고 생각될 정도로 신비롭기까지 하다. 이런 마술적 트릭(Trick)을 장르는 전혀 다르지만 역시나 독자를 깜빡 속아 넘어가게 하는 추리소설에 응용하면 어떨까? “존 버든”의 <658, 우연히(원제 Think of a Number/비채/2011년 8월)>은 이런 숫자 맞추기 트릭을 소재로 한 추리소설인데, 마술사의 트릭을 능가하는 기발함과 참신함에 책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게 하는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한때 뉴욕 최고의 형사였지만 지금은 뉴욕 외곽 델라웨어 카운티 농장 주택에서 한가로이 은퇴 생활을 보내고 있던 “데이브 거니”에게 대학 동창생인 마크 멜러리가 도움을 청해온다. 사연인 즉슨 정신 수련원 원장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마크 멜러리에게 의문의 편지가 날라 왔는데 그 편지에는 1부터 1000까지의 숫자 중 아무 숫자 하나를 고르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누군가의 장난으로 가볍게 생각한 그는 “658” 이라는 숫자를 떠올리게 되는데, 그 편지에 동봉된 조그만 봉투를 열어 보니 자신이 생각한 숫자인 “658”이 적혀 있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는다. 그 편지에는 마크를 훤히 알고 있는 사람이 누굴까 라는 답을 알고 싶으면 “X.아리브디스”라는 수취인에게 현금이나 수표로 289.87 달러를 입금하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마크는 데이브에게 이런 일련의 사건을 들려주면서 조언을 구하고, 데이브는 그런 그에게 경찰에 신고하라고 조언을 하지만 마크는 사회적 위치와 자신이 운영하는 정신 수련원 운영에 지장이 있을까봐 신고는 거부한다. 범인은 그 이후로도 다시 한번 마크가 생각한 숫자 “19”를 맞추는 놀라운 숫자 맞추기를 보여주며 마크에게 일련의 협박 편지와 전화를 걸어온다. 신고를 계속 망설이던 마크는 결국 자신의 집 근처에서 끔찍하게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고, 소식을 들은 데이브는 살해 현장으로 급히 달려가지만 살해 현장에서 의문투성이의 증거들만 발견하게 된다. 사건을 맡게 된 검사의 요청으로 임시 특수 수사관이 된 데이브는 담당 경찰들과 함께 본격적인 수사에 나서지만 도저히 풀기 어려운 숫자 맞추기 트릭과 증거들로 난항을 거듭한다. 그러던 중 비슷한 방식으로 살해된 또 다른 살인사건이 있다는 제보를 받고 그 사건 담당 형사를 만난 데이브는 이 살인 사건이 단순 협박과 살인이 아니라 치밀하게 계산된 연쇄 살인임을 알게 된다. 동일한 방식의 살인이 더 일어나고 사건의 공통분모를 조사하던 데이브는 연쇄 살인범을 흔들어 놓기 위해 살인범이 보낸 협박 편지처럼 자신이 범인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편지를 써 보내는데, 범인은 다음 살인 대상으로 범인이 돈을 송금하라고 지정한 사서함 주인과 함께 데이브를 지목한다. 과연 이 기상천외한 트릭은 어떻게 만들어 낸 걸까? 데이브는 과연 불가능할 것 같은 이 트릭을 해결하고 범인의 정체를 밝혀낼 수 있을까?
 

도입부부터 “말도 안 되는” 숫자 맞추기 트릭을 제시해서 시선을 확 붙들어 놓더니 도대체 이 말도 안 되는 숫자 맞추기와 마크 살해 현장에서 발견된 역시나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증거들을 가지고 어떻게 사건을 해결할까 하는 궁금증에 자꾸만 뒷 페이지를 열어 보고 싶게 만드는 그런 책이었다. 그러나 결말을 미리 알게 되면 김 빠진다는 생각에 자꾸만 뒷 페이지에 가게 되는 손을 힘들게 뜯어 말리면서 책 속에 파묻혀 버리고 결국 결말 부문에 이르러서야 이런 트릭이라면 어느 누구라도 속을 수 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에 절로 무릎을 치게 만든다. 추리 소설 매니아를 자칭하다 보니 다양하고 기발한 트릭들을 접해 봐서 왠만한 트릭들에는 그리 놀라거나 충격을 받지 않는데, 이 책에서의 숫자 맞추기 트릭은 여느 추리소설에서도 쉽게 만날 수 없었던 독창성과 기발함이 뛰어난 트릭이었다고 평가 - 책을 읽으면서 나름 이런 속임수를 썼겠지 하고 예상해보는 데 이 책의 트릭은 전혀 그런 예상을 할 수 없었다 - 할 수 있겠다. 물론 트릭의 해법을 알게 되면 맥이 빠지고 괜히 이건 “사기(詐欺)”다 라는 불평 - 예전 마술사들의 트릭을 고발하던 모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한 방법들이 대부분이었다 - 도 나올 만도 해서 이 책의 트릭도 그 해법을 알고 나니 황당한 기분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그런 트릭을 구상해내서 이렇게 글로 선보인 작가의 능력에 새삼 감탄이 터져 나오게 된다. 
 

이처럼 기발한 트릭과 함께 또 하나의 장점은 이 책에서 탐정 역할을 하는 주인공 “데이브 거니”의 매력을 들 수 있겠다. 과거 여러 건의 연쇄 살인 사건을 해결해냈던 최고의 경찰이었지만 은퇴 생활의 여유를 즐기는 그이지만 가슴 한 켠에는 자식을 잃은 아픔을 평생 “트라우마”로 간직하고 있는 인물로 설정하고 있다. 몇 년 만에 복귀에 수사에 나서지만 그 감만은 전혀 녹슬지 않아서 현직에 종사하고 있는 형사들을 깜짝깜짝 놀라게 만드는 날카로운 추리력을 번뜩이고, 전혀 그 해법을 짐작하기 어려웠던 범인의 트릭을 결국 해결하고,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에서도 범인의 치밀한 계산과 의도를 깨뜨려 위기에서 벗어나는 멋진 활약을 펼쳐 보인다. 데이브의 아내인 “매들린 거니” 또한 남편이 놓치고 있는 단서들을 콕콕 찝어 내어 남편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어 앞으로 이 두 부부가 “부부 탐정”으로 활약을 해도 꽤나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오랜만에 치밀하고 정교한 트릭과 플롯, 그리고 충격적인 반전이라는 추리소설 특유의 재미를 한껏 느낄 수 있는 멋진 책이었다. 다 읽고 나서 숫자 맞추기 트릭의 비밀이 바로 이것이다 하고 털어놓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 하지만 이 책을 읽게 될 다른 독자를 위해서 털어놓아서는 절대 안될 것 같다. 대신 어디 풀숲에라도 들어가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놀이나 해야 할 것 같다. 일회성으로 만나기에는 너무나도 아쉬운 데이브 거니 - 아내 매들린까지 포함해서 -가 등장하는 후속 작품인 <눈을 뜨지마>가 2012년에 출간된다고 하는데, 출간일 때까지 꽤나 긴 기다림이 될 것 같아 벌써부터 조바심마저 느껴진다. 부디 이런 조바심에 애간장이 다 녹아나지 않도록, 또한 지금 느낀 재미와 감동이 희석되지 않도록 속히 출간되어 주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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