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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모어 ㅣ 이모탈 시리즈 1
앨리슨 노엘 지음, 김경순 옮김 / 북폴리오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내 취향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던, 여성 취향의 “할리퀸 로맨스(Harlequeen Romance)”와 별반 다를 바 없다고만 여겼던 “판타지 로맨스” 소설을 근래 들어 몇 권 읽으면서, 부담 없이 가볍게 읽을꺼리로는 “괜찮은” 장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아직은 말랑 말랑하고 낯간지러운 소설이라는 느낌은 지울 수 없지만 말이다. 판타지 로맨스 붐이 일면서 참 많은 시리즈물이 출간되었다고 하는데, 몇 몇 권을 단권으로만 읽다가 이번에 제대로 5권에 이르는 시리즈물(아직 완결되지 않았다)을 본격적으로 읽게 되었다. 미국에서 출간한지 2주 만에 뉴욕 타임즈 베스트셀러에 진입해, 32주간 베스트셀러로 판매되며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고 드라마 판권 계약이 체결되어 조만간 드라마로도 선보인다는 “앨리슨 노엘”의 <이모탈(Immortal) 시리즈>가 바로 그 시리즈이다. 검은 바탕에 붉은 튤립 2송이가 그려진 표지가 인상적인 1권 <에버 모어(원제 Ever More/북폴리오/2009년 12월)>을 기대 반 걱정 반의 마음에 펼쳐 들었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부모님과 여동생 “라일리”를 한순간에 잃고 가까스로 살아남은 십대 소녀 “에버 모어”는 더 이상 평범한 소녀가 아닌 “특별한” 소녀가 되어 버린다. ‘죽기 직전의 경험’, 즉 ‘사후 경험’을 겪은 에버는 모든 생물체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색채의 소용돌이인 “오라”를 맨 눈으로 볼 수 있게 되고, 누군가를 만지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인생사가 한 눈에 보이며 심지어 죽은 여동생 “라일리”와 이야기를 나누는 “초능력” 소녀가 되어 버린 것이다. 사고 후 고모와 살게 되면서 새로운 학교로 전학온 에버는 그런 자신을 감추기 위해 자랑이었던 긴 금발 머리를 뒤로 묶어 후드 티 안에 감춰 버리고 귀가 먹먹할 정도로 시끄러운 음악이 나오는 아이팟 이어폰을 귀에 꼽고 다닌다. 이렇다 보니 아이들에게 “괴물”취급을 당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절친인 “헤이븐”과 게이 소년 “마일스”와는 가깝게 지낸다. 그러던 어느날 학교에 눈에 번쩍 뛸 만큼 잘 생긴 미남 “데이먼 오귀스트”가 전학오게 된다. 패션 잡지에서나 볼 법한 모델 빰 치는 외모에 번쩍이는 검은 색 BMW를 몰고 다니는 데이먼은 여학생들의 우상으로 떠오르지만 왠지 에버에게 관심을 보인다. 그러나 “괴물”인 자신의 처지 때문에 데이먼을 애써 멀리하는 에버는 그에게서는 “오라”를 느끼지 못하는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된다. 조금씩 끌리는 마음을 애써 가다듬지만 에버의 시선은 갈수록 데이먼에게 향하게 된다. 그런데 데이먼이란 친구, 알면 알수록 신비로운 구석이 많다. 오라가 느껴지지 않을뿐더러 마음도 읽히지 않고, 툭하면 빨간 튤립을 만들어 선물하지 않나, 그림은 왠만한 고전 화가 못지않게 쓱쓱 잘 그리고, 가끔씩 과거에 유명 인물들을 직접 만난 것 같은 알 수 없는 말을 늘어놓는다. 왠지 판타지 소설에서나 볼 법한 “드라큘라”나 “악마” 뉘앙스를 강하게 풍기는 데이먼이 의심스럽지만 이미 그의 존재가 가슴에 낙인처럼 찍혀버린 에버는 그의 매력을 거부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그런 에버에게 데이먼처럼 의문 투성이의 존재이자 친구 헤이븐을 이상하게 변화시키는 아름다운 여인 “드리나”와 자신의 주변을 맴도는 여동생 “라일리”의 존재를 알고 있는 영매(靈媒) “에바”가 나타난다. 과연 에버에게 초능력이 생긴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데이먼과 그리나의 정체는? 에버와 데이먼의 사랑은 어떻게 진행될까? 이처럼 거듭되는 의문은 페이지가 넘어가면서 하나씩 해결의 실마리가 드러난다.
이 책에도 다른 판타지 로맨스 소설처럼 신비로운 존재가 등장하는데, 다만 드라큐라나 늑대인간, 타락천사처럼 신화(神話) 속 주인공들이 아니라 다소 정체가 모호한 불사자 - 不死者. 시리즈 제목인 “Immortal"의 뜻이 “죽지않는, 불멸의”이라는 뜻이다 - 가 등장한다. 남자 주인공 데이먼은 600 여 년을 살아온 “불멸”의 인간으로 나오는데 책에서는 연금술사인 데이먼 아버지가 그렇게 만들었다고 간단하게 설명할 뿐 구체적인 내용은 언급하고 있지 않으면, 또 다른 불멸의 존재 그리나는 어떻게 해서 그런 존재가 되었는지, 또한 환생을 거듭하며 데이먼과 사랑에 빠졌다는 에버 또한 어떻게 환생을 하고, 그런 초능력을 얻게 되었는지 구체적인 설명 또한 아직은 없다. 아마 시리즈 첫 권이라 등장인물 설정과 전체 스토리 도입 위주이고 그리나 외에는 아직은 본격적인 갈등관계 - 대적자(大敵者) - 가 등장하지 않는데, 2권 “블루문” 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부족한 설명들을 채워나갈 것으로 보여지니 조금 더 시리즈를 계속 읽어봐야 전체 윤곽이 잡힐 것 같다. 이야기로만 보면 눈이 번쩍 띄일 정도로 멋진 외모와 신비로운 존재, 그와 사랑에 빠지는 여주인공이라는 판타지 로맨스 전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 이런 스토리에 익숙한 독자들이라면 식상할 수 도 있겠지만, 자신 때문에 가족을 잃었다는 죄책감과 “괴물”이 되어 버린 자신의 모습에 갈수록 위축되는 에버의 심리를 상당히 치밀하고 섬세하고 그려내고 있고, 아직 그 실체를 완전히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영원토록 계속되는 데이먼과 에버의 사랑을 아름답고 처연하게 그려내고 있어 결코 녹록치 않은 이야기가 계속 될 것이라는 기대를 낳게 한다. 특히 부모님이 계신 저 세상으로 하루 빨리 돌아가야 하지만 이 세상에 혼자 남겨진 언니 에버가 안쓰러워 언니 곁에 머무르려는 라일리와 그런 동생을 이제는 나 줘야 하지만 자신의 곁에 있는 하나 밖에 없는 가족이라 선뜻 보내지 못하는 에버의 안타까움과 슬픔이 오롯이 느껴지게 한다. 즉 전형을 따르면서도 섬세하고 아름다운 필치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작가의 세련된 글 솜씨가 돋보이는 그런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직은 미스터리에 대한 구체적인 해답을 제시하고 있지 않은 시리즈의 1권이라 평가하기에는 너무 성급하겠지만 5권 “나이트 스타”까지 계속 읽어볼 만한 부담없고 재미있는 판타지 로맨스 시리즈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역시 남자인지라 “너무나도 멋있고 신비로운 남자” 데이먼에게는 그다지 감흥이 없지만 - 감흥이 있으면 더 이상하겠지만^^ - 앞으로 밝혀질 그의 정체와 영원한 연인 에버를 지키기 위한 그의 사투(死鬪)가 어떻게 펼쳐질지 권 수를 거듭할 수 록 더욱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1권을 읽고 나서 엉뚱한 생각이 든다. 멋지고 신비로운 남자가 주인공이 아니라 지적이며 아름다운, 거기에 육감적이기 까지 한 여신(女神)급 여주인공이 등장하는 판타지 로맨스는 없을까 말이다. 그렇게 된다면 남자 독자들도 판타지 로맨스 소설에 절로 열광하게 되지 않을까? 물론 “19금”이 되지 않게 수위는 잘 조절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