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주의 기록 - 동아투위에서 노무현까지
정연주 지음 / 유리창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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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주 KBS 전 사장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가 사장에 재임하던 시절이 아니라 임기가 15개월이나 남아 있음에도 현 정권에 의해 강제로 쫓겨나고 나서 부터이다. 정사장 뿐만 아니라 현 정권과 “코드”가 안 맞다는 이유 - 정확히는 전임 대통령인 고(故) 노무현 대통령이 임명했다는 이유겠지만 - 로 여러 문화기관 단체장들이 법적으로 보장된 임기조차 채우지 못하고 자리에서 쫓겨났다는 기사들을 접하면서 “코드 인사”, “낙하산 인사”는 절대로 없다던 약속을 이렇게 하루 아침에 저버릴 수 있는지 이 정권의 후안무치함에 혀를 내둘렀었다. 그 후로 진보성향 인터넷 매체들에 올라온 정연주 사장의 글들을 읽으면서 이 분의 식견과 성찰의 깊이에 꽤나 매료되어 이 분이 걸어온 길이 어떠했는지 절로 궁금해졌다. 그러던 참에 정연주 사장이 언론인으로서 지난 40 여 년 동안 걸어온 삶을 술회한 책을 한 권 만나게 되었다. 바로 <정연주의 기록; 동아투위에서 노무현까지(유리창/2011년 8월)>이 바로 그 책이다. 

작가는 먼저 “책머리에; 젊은 벗들에게 보내는 글 - 우리 시대 언론의 역사와 현실”에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일에 아주 조그마한 기여라도 했으며 하는 마음으로 언론계에 발을 들여놓은 동아일보 입사 시절부터 2003년 4월 말, KBS 사장이 된 순간까지를 간단하게 되짚어보고 지난 2002년 말에 출판되었다가 절판된 <서울-워싱턴-평양>을 크게 개정·보완하여 다시 출간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책을 발간하는 이유가 자신이 언론인으로서 살아온 반세기 가까운 우리 시대의 이야기, 특히 언론과 관련된 우리 역사와 현실을 젊은이들이 이해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어서, 군부독재 시절의 역사, 특히 언론의 이지러진 얼굴을 이야기하면 신기해하는 젊은 후배들에게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었다고 밝히고 있다.  

본문에 들어서면 1970년 동아일보 입사에서 2003년 KBS 사장에 취임하기까지 30여년간 작가가 겪어온 에피소드들을 시간 순으로 자서전처럼 기술하고 있는데 그 내용을 바탕으로 정연주 사장의 프로필을 간단하게 요약해본다. 제일 먼저 1970년 동아일보에 입사하여 느꼈던 기자로서의 좌절감과 함께 정권의 억압에 의해 사상 초유의 백지 광고 사태와 국민들의 성원으로 광고를 채웠던, 그리고 강제 해직에 이르기까지 “동아자유언론투쟁위원회(동아투위)”에 가담하여 언론 자유를 위해 투쟁을 벌였던 시절을 회고한다. 결국 긴급 조치 위반으로 구치소에 수감될 수 밖에 없었던 작가는 구치소 수감 시절 에피소드와 1980년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에 엮으려는 군부를 피해 1년 여를 넘게 도피해야 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1년여의 고통스러운 도피 생활 끝에 김대중씨 재판이 끝나자 집으로 돌아오게 된 작가는 미국으로 유학길에 오르게 되고, 그곳에서 87년 6월 항쟁과 국민 성금으로 창간된 한겨레신문 창간의 감격을 맛보게 된다. 1989년 마흔 넷의 나이로 한겨레신문 워싱턴 특파원으로 다시 기자가 된 작가는 80년대 말 임수경으로 대표되는 통일 운동을 머나먼 타국으로 취재하고, 1990년 대 냉전해체의 현장과 북미회담, 그리고 첫 단독 방문 취재에 이르기까지 숨은 사연들을 소개한다. 2000년에 귀국하여 한겨례 논설 주간을 역임하던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취임하던 2003년 3월말 퇴사하게 되는데, 그즈음 KBS 신임 사장 선임 과정에서 KBS 노조와 시민·사회단체가 추천한 ‘개혁적 KBS 사장 후보’으로 뽑혀 한 표 차이로 KBS 사장에 당선된다. 책에서는 사장으로 선임되는 과정과 함께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만남, 그리고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 직전 봉하마을 에서의 만남을 술회하고 있다.  

책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KBS 사장에 연임한 후 현 정권 들어 강제로 해임될 때 까지의 과정을 여러 기사나 뉴스를 통해 간단히 재구성해보면 전임 대통령의 “코드 인사” - 분명 공정한 추천과 투표로 인해 당선되었음에도 억지를 부려 - 라며 감사원, 검찰, 국세청 등이 총동원된 사퇴 압박으로 인해 결국 2008년 8월 11일, 남은 15개월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강제로 해임되고 만다. 그러나 2011년 1월 14일 서울고법 행정2부(김병운 부장판사)는 정연주 전 사장이 제기한 해임 무효 청구소송에서 1심과 마찬가지로 해임을 취소하라고 판결한다.

책은 이처럼 언론인 정연주 40년 인생을 그가 겪어온 시대 상황과 함께 하나 하나 담고 있다. 모교(서울대) 시위에 취재하러 갔지만 농성장에 붙어 있는 ‘개와 기자는 접근 금지!’ 라는 팻말에 부끄러움과 함께 분노- 최근 모 방송국 기자도 취재하러 나갔는데 “XX 방송국 접근 금지”라는 피켓을 보고 심하게 부끄러웠다고 토로하는 기사를 읽었었다. 40년이 지났는 데도 언론 현실은 결코 나아진 것이 없나 보다 - 가 치밀면서 기자로서의 정체성을 고민하기 시작한 그는 결국 <동아투위>에 막내로 참가하면서 가시밭길과 같은 고난의 길을 걷게 된다. 같이 언론 자유화 투쟁에 나섰던 선배, 동료들과의 투쟁 과정과 수감 생활 에피소드들도 인상적이지만 자식으로서 그리고 남편과 아버지로서 그가 겪어야 했을 고초들, 즉 어린 아이들에게 외국 유학 갔다고 속이고 도피 생활을 했던 사연들,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남편의 거처를 대라며 고초를 겪었던 아내, 1년 여의 도피 생활 중에 미국 형 네로 떠나시는 부모님을 만나기 위해 애를 쓰다가 아버지만 동네 목욕탕에서 잠깐 만나 뵙고 어머니는 멀리서 지켜봐야 했던, 그렇게 만나 뵙던 부모님의 모습이 부모님께서 결국 미국에서 돌아가시는 바람에 생애 마지막 모습이었던 애절한 사연들이 참 인상 깊었다. 또한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소개하는 부분에서 KBS와 검찰청만큼은 절대 전화하지 않겠다는 처음 약속을 임기 내내 올곧이 지켰던 대통령을 끝내 지켜 드리지 못하고 보낸 아쉬움을 토로하는 장면에서는 절로 숙연한 마음이 들게 한다. 

그가 이 책을 통해서 우리에게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가 겪어온 참담했던 언론 현실이 40년이 지난 지금에도 결코 해결되지 않은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주려고 한 것인지 모르겠다. “코드”가 맞지 않는다고 임기가 남은 문화 단체장들과 유명 연예인들을 싹쓸이 청소하듯 몰아내고, 또한 사상 초유의 인터넷 필화(筆禍) 사건이라 불리우는 “미네르바” 사건과 PD 수첩 광우병 보도 고소 고발 사건 등등 그들이 줄곧 주장해온 “잃어버린 10년”보다 훨씬 그 이전으로 언론 민주화 시계 바늘을 되돌려 놓으려는 현 권력에게는 언제든지 과거처럼 거센 역풍(逆風)을 맞을 수 있다는 경고를, 그리고 지금 젊은 청년들에게도 지금 현실을 잠시 잠깐이라도 애서 눈을 감거나 외면하려고만 한다면 언제든지 그가 지난 40년 동안 겪어왔던 과거와 전혀 다를 것 없는 상황이 그대로 지금 세대에게 일어날 수 있다는 이 책을 통해서 경고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해임된 KBS 전 사장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정연주 전 사장에 대해서 언론 자유와 민주화에 앞장섰던 “참 언론인”이라는 “진정성(眞正性)”을 느껴볼 수 있었던 좋은 책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처럼 사장 자리에서 해임되었던, 그보다도 대중성과 인기는 훨씬 뛰어나서 많은 국민들의 성원을 받았던, 그러나 그런 성원을 헌신짝처럼 배신하고 자신을 쫓아냈던 곳에 의탁해 지방선거에 나섰던 또 다른 방송국 전 사장이 계속 떠올랐다. 과연 그는 집권여당의 강력한 지원에도 낙선(落選)한 이유가 바로 “진정성”에 있었다는 것을 지금이라도 깨달았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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