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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라이벌 김대중 VS 김영삼 - 정의를 위한 처절한 2인의 전쟁 국민 90%가 모르는 이야기
이동형 지음 / 왕의서재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故 김대중 전(前)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 독재 군사 정권에 맞서 오늘날의 민주주의를 있게 한 민주화 운동의 대부(代父) 또는 지역패권주의와 보스 중심의 붕당정치를 낳은 한국 정치를 망친 장본인들 등 평가가 극단적으로 엇갈리고 있지만, 두 분이 해방(解放) 이후 60년 현대 정치사(政治史)에서 가장 중요한 발자취(足跡)을 남긴 정치인들이라는 데는 별다른 이의가 없을 것이다. 민주화에 함께 앞장섰던 평생의 동지(同志)로, 때로는 대권을 위해서는 반드시 이겨야 할 숙명의 라이벌(Rival)로서 온갖 부침을 겪었던 두 전직 대통령의 관계를 통해서 해방 이후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 당선에 이르기까지 50년 한국 현대 정치사를 풀어낸 “이동형”의 <영원한 라이벌 김대중 VS 김영삼(왕의서재/2011년 7월)>에서 500 여 페이지에 달하는 책 속 수많은 말들보다도 같은 방향으로 나란히 앉아 있지만 서로 외면하고 있는 두 분의 모습이 담겨 있는 표지 사진이야말로 두 분의 관계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그런 사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평소 정치에 냉소적인 터라 정치 관련 책은 잘 읽지 않았지만, 이제는 고인(故人)이 되신 김대중 전 대통령과 아직 정정하신 김영삼 전 대통령이 걸어오신 길을 한번 더듬어보는 것도 의미 있겠다는 생각에 선뜻 책을 집어 들었다.
대학생 10명 중 4명이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여론 조사 결과와 역대 대통령 중 누가 다시 대통령이 되기를 원하는가는 물음에 아직도 박정희 전 대통령이 1위를 차지하는 현실에 개탄하며 시작하는 머리말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양김의 비사>에서 작가는 이 책을 만들게 된 중요한 이유가 크든 작든 사회 진보와 정의를 위해서, 이 땅의 젊은이들이 가려지거나 포장된 역사 밖의 진실을 알아야 옮은 행동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또한 반세기를 협력자로 동반자로 때로는 경쟁자로 치열하게 살아온 양김의 라이벌 역사가 곧 한국 정치의 역사요 양김 자체가 한국 현대사라며 작가는 비단 2인의 전쟁 뿐만 아니라 둘의 경쟁 관계를 통해서 많은 역사의 실제들, 사실(팩션)인데, 소설(픽션)처럼 느껴질 놀랄 만한 이야기들을 만날 것이라고 말하며, 이 책이 미약하나마 이 땅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정치를 향한 불신, 무관심, 그리고 역사 경시의 풍토를 없애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당부하고 있다.
양김 정치가 나라를 망쳤네 어쨌네 하는 소리가 다 웃기는 소리이고 두 양반이 없었으면 민주화는 “아직 오지도 못했다”에 자기가 가진 돈 모두와 손모가지를 건다고 말하며 시작하는 책에서는 먼저 전남 하의도에서 평범함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김대중과 경남 거제도의 지역 유지의 아들로 태어난 김영삼의 출신 배경부터 간단히 설명하고, 54년 민의원 선거에서 26세라는 어린 나이에 국회의원에 당선된 김영삼과 반대로 같은 해 목포에서 무소속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하고, 4수 만에 1961년 강원도 인제 지역구 보궐 선거에서 당선된 김대중의 정치 입문 과정을 먼저 소개한다. 그리고 나서 두 분이 걸어온 영욕(榮辱)의 반세기 정치 인생을 역대 대통령 재임 시대순으로 소개한다. 두 분 이야기 뿐만 아니라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정인숙 피살 사건”, “육영수 암살 사건”, “의문의 죽음, 장준하”, “김형욱 실종사건” 뿐만 아니라 1980년 5월의 봄 당시 “서울역 회군”과 “광주민주화운동”, 전두환 대통령 시절의 “국제그룹 해체사건”, “칼기 폭파사건”, “권인숙 성고문 사건”, 노태우 대통령 시절의 “5공 청문회”와 “3당 합당”, 김영삼 대통령 시절의 “하나회 숙청”, “문민시대 때의 대형 참사”, “국가 부도 IMF" 등 MBC의 정치 드라마 <제3공화국>과 같은 공화국 시리즈나 장수 라디오 프로그램이었던 <격동 30년>, 또는 80, 90년 대 큰 인기를 끌었던 주치호 작가의 <정치 비화(秘話)> 시리즈 등을 통해서 한 두 번 씩은 접해 봤을 현대사의 굵직 굵직한 사건들을 총망라하고 있어 이 한 권만으로도 한국 현대 정치사의 큰 흐름을 짚어볼 수 있다. 그저 정치적 사건들만 열거했으면 꽤나 딱딱했을 텐데 손모가지를 건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속어(俗語)와 은어(隱語)를 섞어가며 직설적이면서도 익살스럽게 표현하고 있어 마치 정치 풍자 소설을 읽는 것 같은 재미를 느끼게 한다. 또한 아직도 박정희 시대와 전두환 시대에 대해 향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본다면 화병(火病)을 일으킬 정도로 군사독재시절을 거침없이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어 통쾌함마저 맛보게 한다. 이런 재미와 통쾌함 외에도 울화(鬱火)와 함께 서글픔이 치미는 장면들도 여럿 소개하는데, 지역감정의 시초는 1972년 대통령 선거 당시 김대중이 돌풍을 일으키자 선거 승리를 위해 당시 중앙정보부장인 이후락의 전략에서 기원한 것이며, 지역감정의 최대 피해자이면서도 아이러니컬하게 최대 수해자이기도 했던 사례들과 역사의 분기점이 될 수 있었던 사건들, 즉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弑害)한 김재규가 육군본부로 가지 않고 중앙정보부로 향했다면, 1980년 서울역에 모인 10만 대학생들이 학교로 돌아가지 않고 계속 투쟁을 이어갔더라면, 지금도 두고두고 희자되고 있는 1987년 김대중, 김영삼의 단일화 협상이 무산되지 않고 이뤄졌더라면 과연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하는 아쉬움을 들어내기도 한다. 작년에 읽었던 어떤 책에서 1987년 단일화 협상 테이블에서의 두 분의 만남을 “구름과 구름의 만남(雲雲之會)”이라고 표현한 것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큰 비와 뇌성벽력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되었지만 결국은 아무 성과 없이 허망하게 끝나 버린 그 때의 만남을 나타내는 말이었는데, 두 분에게 있어서도 가장 큰 회한(悔恨)으로 남아 있겠지만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불신과 염증이 사실상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그런 아쉬운 장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책에는 두 분 외에도 지금은 고인(故人)이 되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모습도 살펴볼 수 있는데, 5공 청문회 스타로 부각되었지만 3당 합당 반대를 외치며 민주당을 뛰쳐나와 지루하기만 했던 야권 통합 과정과 초호화 요트를 가지고 있는 재력가라는 모 언론사의 음해에 맞서 싸우는 등 온갖 고초를 겪었던 일화 - 개인적으로 작가에게 후속권은 노무현 대통령 이야기를 써줬으면 하는 부탁을 하고 싶다 - 소개한다. 또한 1993년 대선에서 패배한 김대중이 정계를 은퇴하고 영국으로 건너가서 옥스퍼드 대학에서 연설할 때의 일화를 소개하는데, 연설이 끝나고 질의응답의 순서가 되었을 때 한 일본인 학생이 2차 세계 대전 전에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많은 나라들이 지금 모두 사이좋게 지내고 있는데, 왜 한국은 옛날을 잊지 못하고 아직도 일본과 화해를 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해와 장내가 공감하는 듯한 분위기로 술렁였다고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바로 2차 세계 대전 시절 영국·프랑스와 일본의 달랐던 점을 조목조목 열거하고 아직도 반성과 시정을 하지 않고 있는 일본을 주변국 한국이 이를 경계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하고 반문하자 장내에 있던 학생들로부터 기립박수를 받았으며 나중에 그 일본인 학생에게서도 정중한 사과를 받았다고 한다. 그만큼 확고한 역사의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례로 그 답변은 지금 읽어도 가슴 후련한 그런 명연설로 꼽을 만한 인상 깊은 장면이었다. 이 책을 읽게 되는 독자들이라면 꼭 이 대목을 놓치기 말기 바란다^^
지난 2011년 5월 28일, 최근 서방 선진국들의 비밀 외교 문서들과 기업들의 불법, 비리들에 대한 잇따른 폭로로 유명세를 달리고 있는 “위키리크스(Wikileaks)”에서 2006년 7월 18일에 작성된 주한 미 대사관의 외교전문에 나와 있는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공개되어 화제가 되었었는데, 전문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다혈질(hot-tempered)에 대부분의 정책적 이슈들에 대해 상당히 제한적인 지식과 보수적인 시각을 갖고 있으며, 김대중 전 대통령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정치적 인물로 외교 정책의 모든 측면에서 능숙했다고 평가했다고 한다. 많은 분들이 이런 평가에 공감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과연 두 분은 서로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김영삼을 한마디로 평가해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김대중은 “김영삼 씨는 대단히 어려운 일을 아주 쉽게 생각한다.”라고 평가했다고 하며, 똑같은 질문에 김영삼은 “김대중 씨는 아주 쉬운 문제를 대단히 어렵게 생각한다.”라고 화답했다고 한다. 어려운 일을 너무 단순하게만 풀려고 하는 김영삼, 쉬운 문제를 배배 꼬아 어렵게만 생각하는 김대중, 어쩌면 문제에 대한 인식과 해법이 너무나도 달랐기에 두 사람은 결국 화합하지 못하고 숙명의 라이벌로서 평행선을 걸을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정치 이야기가 이렇게 흥미진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 “참 재미있는” 책이었다. 다만 아직도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빨갱이”라고 여기는 분들이나, 그래도 박정희 · 전두환 시절이 좋았지 하는 분들은 읽다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 이 문구는 개그 콘서트 식으로 읽어야 맛이 난다 -, 한마디로 급성 심혈관 질환(?)으로 응급실에 갈 수 있으니 삼가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