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항설백물어 - 항간에 떠도는 백 가지 기묘한 이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2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금정 옮김 / 비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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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구설수(口舌數)에 올라 괴로워하던 후배 사원과 면담을 한 적이 있었다. 한 두 번 말실수로 크게 곤혹을 치루었던 전력(前歷)이 있어서 지금은 누구보다도 말조심하고 있는데 무슨 소문만 터지면 모두들 자신이 퍼뜨렸다고 오해를 하고, 아니라고 열심히 해명을 해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아 미칠 지경이라는 것이다. 사정은 참 딱하지만 금세 해결될 수 있는 그런 문제가 아닌지라 그저 앞으로도 더 조심하고 열심히 해명하라고 충고해줄 수 밖에 없었다. 이처럼 사람의 말이라는 것은 한번 뱉어 놓으면 걷잡을 수 없이 사방팔방 퍼져 나가고 사실이 거짓이 되어 버리고 거짓이 진실이 되어버리는, 전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왜곡될 수 있는 그런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일이 어디 후배 사원에만 해당되는 일일까? 세상에 떠도는 온갖 음모론(陰謀論)이나 미스터리, 그리고 괴담(怪談)들 또한 그저 겉으로 들어난 몇 가지 사실들이 확대 또는 축소 재생산되면서 그게 진실인양 알려져 오히려 진실을 은폐 또는 왜곡하는 그런 현상이 현실에서도 비일비재하지 않은가. 첫머리부터 소문에 대해 길게 늘어 놓은 것은 “교고쿠 나쓰히코”의 <속항설백물어(원제 續巷說百物語(2001)/비채/2011년 7월)>에서 담고 있는 “항간에 떠도는 백가지 기묘한 이야기(巷說百物語)”들이 겉으로는 현실에서 절대 일어날 수 없는 기괴한 괴담들이지만 이면을 들여다 보면 인간의 이기심과 공포심이 만들어낸 한낱 거짓에 불과하다는 결말이 앞서 말한 소문의 속성을 제대로 짚어내고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전작인 <항설백물어(비채/2009년 7월)을 읽지 않았지만 이번 책을 읽는데 전혀 지장이 없는 이유는 책의 구성이 단편 소설 모음집처럼 각각의 독립된 6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책에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화자(話者)이자 괴담 수집가 “모모스케”를 주인공으로 하고, 사실상 각 사건의 해결사 역할을 하는 인물들인 승려와 신관의 옷을 입고 액막이 부적을 파는 어행사 “마타이치”, 신탁자 “지헤이” - 한마디로 사이비 승려와 신관이라 할 수 있겠다. 작가는 이들을 “소악당”이라 부른다 - , 인형술사(에도 방언으로 “산묘회”라 부른다고 한다) “오긴”이 주요 등장인물이다. 각각의 에피소드는 기이한 사건에 대한 조사 의뢰를 받은 모모스케가 마타이치 일행을 찾아가 도움을 청하는 형식으로 전개되는데, 이들이 맡게 되는 사건 하나하나가 괴이(怪異)하기 짝이 없는 그런 사건들이다. 먼저 모모스케의 형인 "군파치로”가 의뢰한 사건인 <노뎃포> 편에서는 이마에 총알도 아닌 돌멩이가 박혀 죽는 사건을 다룬다. 또한 <고와이> 편에서는 세 번이나 목이 베이는 효수형(梟首刑)을 당해 죽은 악당이 버젓이 살아나고, <히노엔마> 편에서는 원래는 밤마다 남자의 기혈을 빨아들이는 여자 귀신을 지칭하는 말이지만 사주(四柱)에 화(火)가 두 개나 겹쳐 화재를 몰고 다닌다는 병오년(丙午年)생 여성에 대한 숨은 진실를 들려주며, <후나유레이> 편에서는 배에 바닷물을 퍼 올려 침몰시키는 유령의 이야기를, <사신 혹은 시치닌미사키> 편에서는 한번에 일곱명씩 죽인다는 사신(死神)이야기를 다루며, 한 무사의 눈에 계속해서 보이는 죽은 영주의 유령을 이야기하는 <로진노히> 편으로 이야기를 끝을 맺는다. 한편 한편 독립적으로 전개되지만 모든 이야기는 <사신 혹은 시치닌미사키> 편으로 수렴되고, <로진노히> 편으로 마무리되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이처럼 한 편 한 편이 기괴하기 짝이 없는 요괴나 귀신들이 등장 - 이 작품이 일본 에도시대 괴담집 <회본백물어(繪本百物語)>에 등장하는 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한다 - 하는데, 사건의 이면을 들춰 보면 그런 요괴나 귀신들은 실재(實在)하는 그런 존재들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과 이기심이 만들어낸 거짓들이 많은 사람들의 입을 거쳐 부풀려지고 왜곡되어진 일종의 허상(虛像)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진다. 마타이치 일행은 바로 그런 소문의 진상을 꿰뚫어 보고 위선과 거짓의 가면을 벗겨내어 사건을 해결 - 때로는 그런 소문을 그대로 이용하여 모사를 꾸미기도 하며, 소문을 만들어 퍼뜨리기도 한다 - 하는 것이다. 또한 각 편 마다 등장인물들의 과거사가 함께 등장하는데, 예를 들어 <노뎃포> 편에선 어릴적 가난한 형편 때문에 남의 집에 양자로 갈 수 밖에 없었던 주인공 모모스케와 한때 해적(海賊)이었던 신탁자 지헤이의 과거 이야기가 펼쳐지며, <고와이>에서는 인형술사 오긴의 출생과 함께 마타이치와 목이 베어져도 되살아나는 “기에몬”과의 지난 10년 동안의 기나긴 싸움 내력이 밝혀진다. 
 

분량이 웬만한 책 2권 이상인 776 페이지에 이르지만 한편 한편이 독립된 단편 소설로 읽을 수 있어 분량에 크게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었다. 전편을 읽지 않았던 터라 <전설의 고향>이나 <퇴마록>처럼 요괴와 귀신이 실재하는 “공포 소설” 쯤이겠거니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다 읽고 나니 그런 괴담으로 포장된 사건 이면 속에 감춰진 인간의 욕망과 이기심을 고발하는 일종의 “사회파 추리소설”에 가깝다고 볼 수 도 있을 것 같다. 공포물과 추리소설, 두 가지 장르 모두 좋아하는 나로서는 마치 고전 설화를 읽는 듯한 느낌와 함께 공포물과 추리소설을 함께 읽는 것과 같은 흥미롭고 재미있었던 작품이었는데, 아예 처음부터 <퇴마록>과 같은 공포소설을 기대했던 독자들이나 공포, 추리소설과 같은 장르 소설들을 싫어하는 분들께는 실망할 수 도 있는, 호불호(好不好)가 엇갈릴 수 있는 작품일 수 도 있겠다. 그래도 기묘하면서도 으스스한 공포스러운 분위기와 함께 미스터리를 해결해나가는 추리 소설적 재미를 함께 보여주는 있는 이 책, 그 어느 때보다 비도 많이 오고 무더운 이 여름에 제격인 그런 소설로 추천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일본 못지않은 전설과 설화를 보유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전설을 현대적으로 새롭게 해석해서 스토리텔링(Storytelling)하는 시도가 있어 주기를, 그래서 낯선 일본 이야기가 아닌 익숙한 우리 이야기를 읽어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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