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크홀 - 도시를 삼키는 거대한 구멍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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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31일 과테말라의 수도 과테말라시티 중심가에 땅이 둥그런 형태로 꺼지는 일명 “싱크홀(Sink Hole)" 현상이 일어나 세계 토픽에 오른 적이 있었다. 지름 30 m, 깊이 60 m의 비교적 작은 규모였고, 건물 밀집 지역이 아닌 외곽 주택가에서 발생해 사망자는 1명에 그쳤다고 한다. 이러한 싱크홀 현상이 결코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은 우리나라 전남 무안에서 지난 13년 동안 19차례의 싱크홀이 발생했다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고층 빌딩이 즐비한 강남 한복판에, 그것도 직경이 수백 미터에 달하고 깊이 또한 수백 미터에 이르는 초대형 싱크홀 현상이 일어난다면? 수십 채의 건물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강남 대로를 달리는 수십 수백 대의 자동차 또한 사라지는, 종말론적 상황이 연출될 것이다. 이재익 작가의 신작 <싱크홀; 도시를 삼키는 거대한 구멍(황소북스/2011년 7월)>는 바로 이런 끔찍한 상상을 소설로 구현해낸 “재난” 소설이다.

 



히말라야 14좌 중 11개의 산을 정복한 등산가인 “김혁”, 12번째 도전한 “낭가파르바트” 등반에서 그만 자신의 처남 “영준”을 사고로 잃고 실의에 빠져 연일 술에 절어 살고, 아내와도 별거하기에 이른다. 대한민국 사채 시장에서 제일 큰 대부업체 대표이자 코스닥 시장 기업 사냥의 귀재로 불리우는 “양미자” 회장의 아들로 정형외과 의사 “동호”는 자신의 어린 환자를 위해 꽃을 사러 꽃집 <Belle> - 김혁의 아내가 운영하는 꽃집이다 - 에 들렀다가 그곳에서 일하는 아가씨 “민주”를 만나 서로에게 호감을 갖게 되지만 민주의 오해로 쉽게 다가서지 못하다가, 핸드폰이 바뀌는 해프닝 끝에 오해가 풀리면서 서로 사귀기로 결심한다. 양회장의 강권에 문화재단을 맡기로 결심한 동호는 양 회장이 건설 중인 123층의 초고층 빌딩인 “시저스 타워” 자신의 사무실에서 민주와 하룻밤 사랑을 나눈다. 드디어 시저스 타워 개장식날, 김혁의 아내는 타워 지하 상가에 <Belle>를 이전 오픈하게 되고, 동호는 개장식 테이프 커팅에 참석하게 된다. 화려한 개장식이 펼쳐진 그날 자정, 123층 거대 빌딩이 한순간에 땅속으로 꺼져 버리는 전대미문의 재난, 즉 직경 180미터, 깊이 700~1000 미터에 이르는 “싱크홀”이 일어난다. 추가 붕괴 우려로 구조 활동이 지지부진해지자 김혁이 땅 속에 매몰되어 있는 자신의 아내와 딸을 구조하기 위해 나서고, 여기 저기 자원 봉사자들이 합세하여 마침내 “민간 구조대”가 결성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추가 사고로 민간 구조대마저 파견 불가로 결정되자 김혁은 낭가파르바트 등반 동료이자 자신을 사랑하는 여성 등반가 “소희”와 함께 비밀리에 구조에 나서고, 여기에 같이 매몰된 연인 “민주”를 구하기 위해 동호 또한 합류한다. 폭우가 쏟아져 추가 붕괴가 우려되는 일촉즉발의 상황, 김혁, 소희, 동호는 지옥의 입구처럼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리고 있는 싱크홀의 구멍 속으로 내려간다.



 

우리 문학계에서는 보기 드문 소재인 “싱크홀”이라는 대재난을 소재로 서로 다른 사연을 가지고 있는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대재난에 귀결시킨 이 소설은 전작들 - 지난 일년 동안 만난 이재익 작가 작품이 <카시오페아 공주>, <압구정소년들>, <서울대 야구부의 영광>, <심야버스 괴담>, 그리고 이 작품까지 다섯 권에 이른다 - 에서 보여준 이재익 작가 특유의 군더더기 없이 숨가쁘게 몰아치는 빠른 전개와 구성으로 책을 한번 손에 잡으면 도저히 놓을 수 없는 몰입감과 재미뿐만 아니라,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가슴 찡하게 울리는 감동까지 선사하는, “이재익 작품은 재미있다”라는 것을 기대감이 틀리지 않았음을 여지없이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 “재난 소설”로써는 몇가지 아쉬움이 든다. 재난 소설이나 영화의 공식은 인간으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 도 없는 재난에 대한 공포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재난을 극복하고 수습하는 과정,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자연스레 우러나오는 인간애, 즉 감동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123층의 거대 빌딩을 한순간에 삼켜 버리는 “싱크홀”은 재난의 규모나 공포 면에서 책 표지 문구에서처럼 가히 “블록버스터” 급이라 할 수 있겠고, 마지막 장면 또한 감동적으로 그려 공식에서 두 가지 는 충족시켰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재난이 발생하면 정부 관계 부처가 소집되어 구조 또는 수습계획들이 발표되고, 본격적인 구조 활동이 진행되면서 여러 가지 안타까운 상황이나 기적적인 상황들이 전개되며, 이런 과정이 진행되면서 스릴과 긴장감이 고조되고 심각한 재난 상황에 대한 가상 체험하는 듯한 그런 느낌이 바로 재난 소설의 재미일 텐 데, 이런 대재앙을 등장인물에 한정시켜 진행하다 보니 그런 재난 상황의 단계적 전개 과정이 주는 재미와 긴장감을 제대로 느낄 수 가 없다는 것에 아쉬움이 든다. 하나 더 아쉬운 점을 들자면 사고 현장에서 부상당한 사람들을 죽이고 여자들을 성폭행하는 “연쇄살인범”의 존재다. 물론 소설적인 재미와 스릴을 위한 장치라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이야기 전개에 있어서는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데는 실패 - 김혁의 아내나 민주를 위협하는 존재이지만 그다지 활약(?)을 펼치지 못한다 - 한 뜬금없는 존재로만 느껴졌다. 차라리 연쇄살인범을 처음부터 등장시켜 갈등의 축으로 부각시켰었으면, 또한 특수 부대원을 만나 바로 꼬리를 내려버리고 결국 뒤에서 암습하는 정도의 그런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아니라 고립된 공간에서의 악마성과 잔혹성, 공포감 등을 좀 더 강조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물론 이 책이 스릴러 소설은 아니지만 말이다.



 

몇 가지 아쉬움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이 책, 서울 한복판에 일어난 대재난 “싱크홀”이라는 독특한 소재와 그 속에서 벌어지는 감동적인 사랑이 잘 어우러진 재미있는 책임에는 분명하다. 이재익 작가가 초대하는 대재난의 현장을 들여 보다 보면 어느새 한여름의 무더위를 까맣게 잊어버리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단 그 구멍을 너무 가까이 들여다 보지 말기를. 어떤 존재가 당신을 그 구멍으로 확 끌어들이지 모르니 말이다.  상상만으로도 으스스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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