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버스괴담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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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전설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도시 괴담(怪談)” 중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이 “학교(學校)”와 “심야 버스(또는 전철)” 일 것이다. 추측컨대 두 곳 다 한 낮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지만 밤이 되면 인적이 끊겨 텅 비어 버리는 "적막함"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괴담의 배경이 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현직 라디오 방송 PD이자 소설가로도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이재익 작가가 심야버스를 소재로 한 소설을 선보였다. <심야버스괴담(황소북스/2011년 6월)>이 바로 그 책이다. 

세기말의 음험한 분위기가 팽배하던 1999년 여름 어느날, 지금은 사라졌지만 강남역 - 분당간을 왕복하던 시외직행버스 2002번가. 자정에 가까운 시각에 분당에서 서울 양재동으로 이어진 고속화도로를 시속 100킬로미터가 넘는 속도로 질주하고 있었다. 그런데 쉰 살 쯤 되어 보이는 한 남자가 운전석 옆에서 기사와 격렬한 실랑이를 벌이는 소동이 일어난다. 승객들이 말려 보지만 그 남자는 운전석을 향해 뛰어 들고, 운전기사가 급브레이크를 밟으면서 그 남자와 말리던 승객들이 엉켜 버스 바닥으로 쓰러지는데, 남자가 그만 승객들에게 깔려 압사(壓死)하는 사고가 일어난다. 기사와 승객들은 처벌받을 까 두려워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남자의 시체를 고속도로 옆 야산에 버리는데, 고등학교 윤리 선생님이자 또 다른 승객이었던 한 남자가 시체를 유기했다며 기사와 몸싸움을 벌이다가 그만 기사가 넘어져 머리를 돌에 찧으면서 죽는 사고가 발생한다. 두 사건 모두 말릴 겨를도 없이 순식간에 벌어진 사건이었다. 승객들은 기사 시체마저도 야산에 버리고 강남역 인근에 버스마저 버려두고는 뿔뿔이 흩어진다. 경찰들은 버려진 버스 기사 실종 사건을 수사하지만 기사의 행방은 묘연 - 야산에 잠들어 있으니 - 하고 사건은 그렇게 잊혀지는 듯 했는데, 그 버스를 탔던 승객들이 하나 둘씩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살아남은 승객들은 자신의 차례가 오는 것은 아닌지 공포에 떠는데 마지막에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인물이 범인으로 밝혀진다.  

“괴담”이라는 제목만 보면 “공포 소설” 이겠거니 생각 들지만 이 책은 “추리 소설”, 아니 엄밀히는 섹스, 잔인한 살인 등 과격한 장면이 여과 없이 등장하는 “하드코어 스릴러” 물이라는 표현이 정확할 것 같다. 토머스 해리스의 <양들의 침묵>과 비슷하다고 할까? 분위기만큼은 여느 공포 소설 못지 않은데 세기말인 1999년 여름 심야라는 시간적 배경과 불 꺼진 버스와 적막한 고속도로라는 공간적 배경이 음산하고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킨다. 이 책, 200 페이지가 채 안 되는 짧은 분량이었기도 했지만 “최고의 페이지 터너”라는 별명에 걸맞게 읽기 시작하면 도저히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만드는 강력한 몰입감과 재미를 선사한다. 특히 마지막 반전에서 독자들을 깜빡 속이는 범인의 의외성 - 작가가 독자들이 범인을 오해하도록 여러 장치를 마련해놓고 있다 - 이 참 인상적인데, 뒷 표지 “아버지를 죽인 범인이 이 버스 안에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결국 스포일러였다니,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물론 그 문구를 알고 있었더라도 범인의 정체를 쉽게 짐작하긴 어려웠겠지만 말이다. 책 문구 중에서 사람을 죽일 때가 수십 대의 첼로가 한꺼번에 저음을 연주한다는 느낌이라고 묘사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어느 악기보다 가장 잘 인간의 심장을 표현한다는 첼로 수십 대가 동시에 연주하는 저음을 상상해보니 소름이 다 돋을 정도로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이재익 작가 작품은 <카시오페아 공주>, <압구정 소년들>, <서울대 야구부의 영광>에 이어 이번 작품이 네 번째로 읽은 작품인데 네 권 모두 기대 이상의 재미를 보여주고 있어 “이재익 작품은 재미있다”라는 공식을 만들어도 될 것 같다. 다양한 이야기 꺼리와 장르를 넘나드는 그의 작품들, 앞으로도 계속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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