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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 ㅣ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 1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현정수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집의 크기를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무지막지한 재벌가 외동딸과 멋진 외모의 집사, 신분 차이를 극복하고 아름다운 사랑에 골인 어쩌구 저쩌구가 딱 생각나는, 하이틴 로맨스 소설에서나 볼 법한 조합인데 엉뚱하게도 추리소설의 등장인물이란다. 추리소설에는 어울리지 않을 이 조합을 선보이고 있는 “히가시가와 도쿠야”의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21세기 북스/2011년 5월)>가 일본에서는 2011년 일본 서점 대상 1위를 차지하고 150만부를 돌파할 정도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니, 그리고 “유머 미스터리”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고 평가받는다고 하는데, 등장인물 뿐만 아니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유머”와 “미스터리”의 조합이라니 이래저래 호기심을 자아내는 그런 소설이었다. 300 여 페이지 분량의 이 책을 다 읽고 난 소감은 추리소설로서 진득한 맛은 없지만 가볍게 읽어볼 만한 재미있는 그런 책이었다.
이 책의 여주인공 “호쇼 레이코”는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재벌 호쇼 그룹의 외동딸이다. 가히 크기를 짐작할 수 없는 대저택에서 하인들을 손짓으로 부려먹는, “공주” 대접이나 받을 법한 이 아가씨, 엉뚱하게도 자신의 신분을 속인 채 구니타치(国立) 시(市) 경찰 신참 형사로 일하고 있다. 그의 상사인 가자마쓰리 경부는 역시 일본 유명 자동차 회사 - 호쇼 레이코네 집안보다는 한참(?) 수준이 낮은 - 사장 아들임에도 외제차 은색 재규어를 몰고 다니는, 항상 레이코보다 한발 늦은 추리솜씨를 보여주면서도 으스대기 좋아하는 허풍스러운 인물이다. 10월 15일 토요일, 구니타치 역의 북쪽 출구에서 걸어서 몇 분 거리, 생활감이 떠도는 평범한 주택가에 있는 삼층 짜리 연립주택에 사는 25세의 “요시모토 히토미”라는 여인이 자신의 집안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특이한 사항은 집 안임에도 불구하고 갈색 부츠까지 신고 있는 모습이었다는 점. 주변에 탐문 수사를 해보지만 사건은 해결 기미가 안보이고 오리무중에 빠진다. 경찰서를 나와 거리를 걸으며 홧김에 길가의 작은 돌을 발로 걷어차는데 그만 칠미터나 되는 리무진 측면에 정통으로 명중하여 금속음을 낸다. 다행히도 신분을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 경찰서에서 멀찌감치 주차해 놓은 레이코 집의 전용차이었다. 삼십대 중반, 상복 같은 검은색 슈트를 입고 은테 안경을 쓴, 레이코 집안에 한 달 전에 새로 들어온 집사 “가게야마”는 그녀를 태우고 저택으로 향한다. 그날 저녁. 답답한 마음에 가게야마에게 지금 수사 중인 살인사건을 설명하는데,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집사, 생각한 것을 말해도 되냐고 양해를 구하고는 대뜸 한다는 소리가 “아가씨는 멍청이이십니까?”란다. 일순 이 황당한 상황에 어이가 없어 하던 레이코는 집사에게 화를 내지만, 집사는 그런 그녀에게 급히 사과를 하고는 자신의 추리를 밝히는데 그 추리 솜씨가 기가 막히다. 결국 집사의 추리대로 사건은 해결되고 이때부터 재벌가 외동딸 여형사와 충직하면서도 사건 얘기만 나오면 독설을 퍼부어대는 기묘한 명콤비의 활약이 펼쳐진다.
책에는 위에서 잠깐 소개한 첫 번째 이야기 “살인 현장에서는 구두를 벗어 주십시요”를 포함하여 짤막한 6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한편 한편 보면 독살, 살인 장소, 밀실살인, 다잉메시지 등 전형적인 추리소설 소재가 등장하지만 기막힌 반전이나 정교한 플롯이라기 보다는 밋밋한 수준이며 일부 사건은 유치 - 개인적으로 다섯 번째 이야기 “양다리는 주의하십시오” 편이 그러했는데 키높이 구두로 신장(身長)을 착각하게 만드는 대목에서는 헛웃음을 짓게 만든다 - 하기까지 하다. 역시 이 책의 재미는 독특한 인물 설정인데 재벌가 여형사와 까칠한 집사, 그리고 허풍스럽고 어딘가 모자라기까지 한 레이코의 상사, 세 명이 펼쳐내는 엉뚱하면서도 익살스런 이야기가 소설에 재미와 활력을 불어넣어 마지막 페이지까지 재미있게 만든다. 야구 선수나 탐정이 꿈이었다는 집사 “가게야마”는 일견 레이코가 들려주는 사건의 개요만을 듣고도 단박에 범인을 알아맞히는 전형적인 “안락 의자형 탐정”의 모습을 보여주다가도 때론 범인과 멋진 활극을 벌이기도 하는 “행동파 탐정”의 면면도 갖추고 있는 그런 인물로 설정하고 있다. 작가는 레이코에게 멍청하다느니, 아마추어보다 수준이 낮다느니, 눈은 멋으로 달고 다니냐느니 험한 독설을 퍼붓다가도 화를 내는 레이코에게 금세 비굴(?) 모드로 사과하는 장면을 이 책의 주요 웃음 코드로 제시하는데 배꼽을 잡을 정도로 커다란 웃음이 아닌 그저 가벼운 미소 정도 수준에 그칠 정도였다. 홍보용 문구로는 본격 “유머 미스터리”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고 하지만 너무 과한 평 인 것 같고, 평범한 수준의 “코지 미스터리(Cozy Mistery)" - 피가 낭자한 잔인한 유형이 아닌 유쾌하면서도 일상적 사건을 다룬 가볍고 재미있는 미스터리 - 로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추리소설로서는 다소 부족하지만 그래도 가볍고 재미있게 읽을거리로는 제격인 그런 소설이라 할 수 있겠다. 일개 집사임에도 불구하고 가게야먀가 레이코의 아버지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받는 것을 보면 뭔가 비밀을 간직하고 있을 것 같고, 레이코와의 로맨스도 기대해볼 만 한데 작가가 후속편에서 그런 이야기를 우리에게 다시 선보이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