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의 서재 - 그리고 그들은 누군가의 책이 되었다
한정원 지음, 전영건 사진 / 행성B(행성비)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초대로 지인들의 집에 방문하면 제일 먼저 살펴보는 곳이 바로 “책장(冊欌)”이다. 우리네 살림살이가 개인 “서재(書齋)”를 따로 가지고 있을 정도로 부유한 사람들이 없어 대부분 아이들 책 위주이고 어른들 책은 책꽂이 한 구석에 꽂혀 있거나 또는 아예 박스에 담겨 집안 구석으로 치워 놓기가 일수이지만 그래도 한쪽 책장을 차지하고 있는 지인의 책들을 보노라면 그 사람이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를 알 수 있는, 마치 일기장을 엿보는 것 같은 재미가 느껴진다. 둘이서 책장에 서서 책들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노라면 어느새 서로 한 뼘 이상 가까워진 듯 한 친밀감이 느껴지고, 내가 읽어 보지 못한 책을 선뜻 빼서 건네는 지인의 책 선물은 그 어떤 선물보다도 소중하고 값진 선물이어서 아예 미리부터 가방에 챙겨 놓거나 가방을 가져오지 않은 때는 식사 중에도 발 밑에 깔고 앉기도 한다. 아마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경험해봤을 그런 이야기 일 테다. 이처럼 평범한 우리 이웃의 책장을 엿보는 재미도 이렇게 쏠쏠한데, 사회적 명사들의 서재를 엿보는 재미는 어떨까? 14년차 베테랑 방송작가인 “한 정원”의 <지식인의 서재; 그리고 그들은 누군가의 책이 되었다(행성:B잎새/2010년 5월)>은 이 시대를 대표하는 15인의 지식인들이 말하는 책이야기와 그들 서재의 속살을 우리들에게 낱낱이 선보이고 있다. 

먼저 최근 <진보집권플랜(오마이북/2010년 11월)>로 새 정치 대안을 우리에게 제시했던 “조국” 교수의 서재는 어떤 모습일까? 붉디 붉은 소파가 인상적인 그의 서재는 차으이적이고 도발적인 것을 좋아하는 법학자답게 늘 차분하게 정돈되어 있지만, 불쑬불쑥 적도의 태양같은 열정이 튀어나오는 그런 곳으로 이야기한다. 서재 안에 있는 책 한 권 한 권을 볼때마다 한번도 만난 적 없는 저자와 대화하는 거라고 생각한다는 조국 교수는 책을 통해서 동지를 만나고 친구와 연인을 만나고 때로는 적을 만나기도 하면서 자신을 다듬으며, 책은 자신의 정수리에 죽비를 내리치며 자신의 한계와 편향을 알려주는, 스승이자 동지이고, 친구이자 연인이며, 훌륭한 적이 되기도 한다고 이야기한다.  

예술마을 해이리의 촌장이자 맘씨 좋게 생긴 흰수염, 넉넉한 웃음이 인상 깊은 솟대 예술작가 “이안수”씨는 “널따란 거실을 빙 둘러 바닥부터 천장까지 꽂힌 그의 책들은 그저 보고만 있어도 가슴이 벅차오른다”는 작가의 말처럼 1만 2천권이 넘는 책의 숲을 이룬 멋진 서재를 가진 참 부러운 사람이다. 그는 서재는 사유의 숲으로 이곳에 있으면 영혼을 정화해주는 나무, 좌절 앞에서 지혜를 속삭 여주는 나무도 있는 울창한 숲 속에 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숲이 계절의 변화에 항상 같이 변화하듯이 그의 사유의 숲도 하루가 다르게 책의 순서가 바뀌고, 책의 수가 자꾸만 늘어나고 있다고 하며 피가 돌듯 책 또한 순환하면서 여행을 한다는 서재는 그래서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있는 것 같지만 안의 모습만큼은 끝없이 새롭게 변화하는 “숲” 그 자체이다.  

조금은 낯선 직업인 북디자이너 “정병규”씨, 작가는 그를 책과 백년가약을 맺고 40 여년을 함께 해온 걸출한 지성이며, 책이 가진 내용과 디자인의 조화를 일궈내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북디자인계의 철학자라고 부르고 있는데 과연 그의 서재는 어떨까? 집이든 작업실이든 그가 가는 어디에나 책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기 때문에 발로 밀고 손으로 치우며 다녀야 할 판이니 굳이 서재라고 명명할 필요가 없는, 그를 둘러싼 모든 공간의 서재라는, 어쩌면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로망(Roman)"일 그런 모습이다. 그는 독서는 ‘약간의 낯섦’을 전제로 해야 한다고 말하며, 그 ‘약간의 낯섦’은 언제든 관둘 수 있고 어려우면 집어 던질 수 있는 , 반대로 모든 걸 포기하고 매달릴 수 있는 것, 이것이 독서의 기본적인 지평, 즉 “자유”라고 표현될 수 있다고 말한다. 

만화책이 잔뜩 꼽혀져 있는, 어쩌면 이 책에서 소개하는 15명의 서재 중 가장 부러운 서재를 갖고 있는 이는 바로 한복 디자이너 “이효재”씨다. 자신의 서재를 “만화방”이라고 부르는 그녀의 서재에 만화를 들일 땐 규칙이 있단다. 누가봐도 좋은, 훗날 빈집에 들어와 무심코 봤을 때도 아름다운 내용의 그런 만화라는 규칙. 책을 분류할 때도 만화책이냐 만화책이 아니냐로만 분류한다는 그녀의 서재가 유치하지 않고 부러운 까닭은 나 또한 만화를 무척 좋아하는 데도 있지만 책의 장점이 어디에서나 어울리는, 책은 보석보다 화려하고, 엎어놔도, 접어놔도, 어디에 놓아도 폼나고 보기 좋다는 그녀가 정말로 책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서재가 괜히 주눅 들게 하는 인문서적이나 전공 서적들이 빽빽하다면 앞서 소개한 이효재씨 서재만큼 편하게 책을 뽑아 볼 수 있는 서재는 아마 영화감독 “장진”의 서재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번역서와 사회과학 서적은 아예 읽지 않고 오로지 소설과 시, 그리고 비평만이 독서의 대상이라는 편독이 심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다른 분들이 1년에 몇 권 읽는다는 것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독서광이라면 그는 1년에 50권만 읽자는 결심도 쉽지 않은, 어쩌면 지극히 평범한 그런 독서 수준을 보여준다. 그는 독서를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것, 즉 자신이 읽은 책을 자랑하는 일이 독서의 가장 큰 재미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되새김질한 책은 확실하게 머릿속에 기억되고, 게다가 책을 자랑하는 동안 스스로 즐거워져서 독서에 점점 빠져들게 되는 효과까지 얻을 수 있다고 우리들에게 추천한다. 다만 책의 글귀만 인용하는 것은 위험한 것으로 책을 읽더라도 스스로 충분히 사유하고 자신의 철학과 조화롭게 접목시킨 후 ‘나’라는 사람의 철학에서 나오는 말과 글로 세상과 소통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이 외에도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지식인들의 서재들이 소개되고 있는데, 작가는 에필로그인 “After Interview"에서 이 책에 등장하는 지식인들의 서재는 멋지고 화려한 물리적인 의미의 서재가 아니며, 그들의 청춘과 인생과 생각이 녹아 있는 하나의 삶의 공간이며, 사유의 세계이라면서 그들의 들려주는 독서와 인생에 대한 이야기가 여러분의 숨어 있는 지적 욕구를 깨워주었으면 바란다며 책을 끝맺는다.  

사실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15분 중에서 “조국”교수와 “김용택” 시인, “박원순” 소장, “장진” 감독을 제외하곤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된 분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그들을 그저 신문기사나 프로필 등으로만 만났다면 역시나 낯설기만 했을텐 데, 그들에게 직접 초대받아 그들의 서재와 그들이 읽은 책들의 면면을 소개받은 것 같은, 한결 그들과 두 뼘 세 뼘 더 가까워진 그런 느낌이 들었다. 역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책 보다 더 신나고 즐거운, 그리고 서로 가까워질 계기가 되는 것이 어디 또 있을 수 있을까? 그래서 저마다의 색깔과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책” 이야기를 나눈 작가나 자신의 일기장 같은 서재를 보여주며 책 이야기를 신나게 나누었을 15명의 지식인 모두 참 즐거운 인터뷰였을 것이다. 그래서 즐겁고 재미있는 책 이야기를 읽는 우리들도 절로 즐거워질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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