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라이트 - 성지 바티칸에서 벌어지는 비밀 의식
매트 바글리오 지음, 유영희.김양미 옮김 / 북돋움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하느님과 예수님에 대한 신앙의 힘, 즉 기독교적인 믿음으로 악마를 물리친다는 카톨릭 구마사제(驅魔司祭; Exocist)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공포 영화의 고전이라는 <엑소시스트(The Exocist/윌리엄 프리드킨 감독/1973)>에서 등장하는 신부들과 “PC 통신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했다고 평가받고 있는 소설인 이우혁의 <퇴마록(退魔錄/들녘/1994)>에서 퇴마사들의 좌장(座長)인 “박신부”, 이 두 가지 모습이다. 먼저 영화에서는 악마에게 빙의(憑依)당한 소녀가 끔찍하고 흉칙한 얼굴로 변하질 않나, 목이 뒤로 돌아가고 물구나무서서 계단을 내려와 피를 토하지 않나, 침대에서 공중부양(空中浮揚)까지 해대는 온갖 공포스러운 현상을 연출하는데도 성경 구절을 외우며 십자가를 들이대고 성수(聖水)만 뿌려대는 무기력한 대응만 보이더니 결국 악마를 몸 안으로 받아들여 몸을 창밖으로 투신자살하여 퇴치하는 데 반해, 소설에서는 중세 기독교 회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연록색 오로라(Aurora)를 발현시키고 심지어 오로라 구체를 발사하여 흡혈귀와 악마들을 퇴치하는 흡사 성자(聖者)의 위용(威容)을 보여주지만 둘 다 비현실적(非現實的)이긴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처럼 엑소시스트는 과연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허구(虛構)일까 실재(實在)하는 것일까? AP통신과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로마 통신원인 언론인 매트 바글리오의 <더 라이트; 성지 바티칸에서 벌어지는 비밀의식(원제 The Rite / 북돋움 / 2011년 5월)>에서는 엑소시스트는 실재하며 심지어 엑소시스트 양성을 위한 정식 교육 프로그램이 로마 교황청에 개설되어 있다는 믿기 어려운 사실을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다.  

2007년 1월 이탈리아 로마에서 실제로 있었다는 한 여성의 충격적인 퇴마의식 장면부터 시작하는 이 책은 “프롤로그”에서 엑소시즘(Exocism)에 대한 정의부터 설명한다. 엑소시즘은 종교 용어로, ‘맹세로써 속박’하거나 끊임없이 요구한다는 의미의 그리스어 "엑소르키조(exorkizo)"에서 유래된 용어로 카톨릭 교회 내에서 주교의 승인을 받은 사제가 집행하는 공식적인 의식이라고 한다. 그 권위는 신약(新約)에서 자세히 기록된 것처럼 그 자신이 수많은 엑소시즘을 행했고 나중에 제자들에게도 같은 일을 시켰던 예수에게서 나온다고 하는데, 초기 기독교인들에게는 개종자를 얻고 그의 믿음을 증명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대 의학이 눈부시게 발달하면서 교회 내부에서조차 엑소시즘을 간질이나 정신분열증 같은 질병을 퇴치해야 할 ‘악마’로 여기던 시대에 행해진 미신의 잔재라고 여기게 되면서 사제들 중에서도 자신의 신앙과 관련된 풍부한 역사를 배척하지 않으면서 악마를 상징으로 보는 현대의 실재론적인 관점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아졌으며, 극단적인 경우 악마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사제들도 있다고 한다. 오히려 오컬트(occult)가 유행하면서 일반인들 사이에 천사와 악마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이탈리아에서만 매년 5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엑소시스트를 찾는 지경에 이르게 되자 교계 내에서 이러한 현실을 심각하게 받아 들여야 하고 더 많은 엑소시스트와 적절한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이 수년간 제기되어 왔다고 한다. 급기야 2004년 가을 교황청 신양교리회에서는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교구에 서한을 보내 주교들에게 공식 엑소시스트를 임명하라고 지시하고, 같은 시기에 로마 교황청이 운영하는 한 대학에서 최초로 ‘엑소시즘과 해방의 기도(Exocism and Prayer of Liberation)'이라는 정식 엑소시스트 양성 강좌를 개설하기에 이른다. 이 책은 미국인 사제인 “게리 토마스” 신부가 2005년 여름 이 교육을 참가해서 9개월간 교육 과정을 마치고, 이탈리아인 선배 사제와 함께 80 여회의 실제 엑소시즘 의식에 참여하고 미국으로 돌아와 자신 또한 엑소시즘을 시행하는 과정을 그린 일종의 다큐멘터리 기록이라 할 수 있다. 

2005년 당시 쉰두 살이었던 게리 신부는 1983년 서품을 받은 뒤 22년간 신부로 일하고 안식년을 맞게 되었는데 몸담고 있는 교구의 주교가 엑소시스트가 되는 특별 과정을 이수하고 오라는 요청에 로마로 향하게 된다. 사실 악마에 관란 이야기를 특별히 선호하지도 혐오하지도 않은,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도 없었던 게리 신부는 사람들을 돕고 싶어 신부가 되기로 했던 결심과 악령을 쫓아내고 아픈 사람을 치유했던 예수님이 하신 일이 바로 이 일이었다고 생각하며 엑소시즘 프로그램 교육 신청서에 자신의 이름을 올려놓게 된 것이다. 언어(이탈리아어) 문제로 첫 교육부터 어려움을 겪게 되지만 다행히 통역이 제공되면서 수업에 집중하게 된 게리 신부는 엑소시즘 의식과 악마의 존재에 대한 정의와 천사들의 계급, 악마에게 영혼을 지배당한 사람들의 구분법 등 기초부터 차례차례 공부한 후 로마에서 실제 교구 엑소시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카르미네” 신부의 80여 회에 이르는 엑소시즘 의식을 참관하게 된다. 모든 교육 과정과 실습을 마치고 미국에 돌아와 교구에서 임명한 정식 엑소시스트가 된 그에게 엑소시스트 의뢰가 들어오면서 본격적인 악마와의 싸움에 첫걸음을 내딛는다. 이처럼 한 신부가 엑소시스트가 되는 과정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는 이 책은 마지막에 이르러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가졌을 의문인 악마의 존재에 대한 물음에 다음과 같이 답하며 끝을 맺는다. 

세상에 악마는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을 물리칠 방법 역시 존재한다. - P.317 

서두에서 언급한 공포· 퇴마 소설이나 영화에 관심이 많다면, 특히 베일에 쌓여있는 카톨릭 엑소시즘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무척 흥미롭고 재미있을 책인데 아쉽게도 나는 그다지 큰 감흥이 느껴지지 않은 책이었다.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엑소시즘의 정의와 연원, 악마의 유래나 천사의 계급, 악마의 유혹 방법 등은 체계적으로 잘 정리가 되어 있지만 인터넷이나 관련 서적 등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즉 비밀스러울 것 까지는 없는 상식에 가까운 것 들이 대부분이었고, 책에서 수차례 소개하고 있는 엑소시즘 장면들도 생생하게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이것도 관련 다큐멘터리나 영화 등에서 여러 번 접한 내용이라 그런지 그다지 공포스럽거나 충격적이지 않은 평범한 수준의 내용들이었다. 어쩌면 책 속의 엑소시즘의 사례들이 오히려 소설이나 영화 속의 그것보다 시시하고 밋밋하다 못해 실망스럽게까지 느껴지는 이유는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한다“는 저 유명한 경제 격언처럼 소설이나 영화의 과장된 허구에 더 익숙한 나머지 실재가 오히려 더 싱겁게 느껴지는 지도 모르겠다. 실제 격투기인 “K1”보다 짜고 치는 고스톱인 미국 프로레슬링인 “WWE"를 더 재미있다고 느끼는 독특한 개인적 취향 탓 일 것이다.  

작가는 호기심은 있지만 종교를 믿지 않은 나와 같은 비신자들이나 엑소시즘이 비과학적이라고 생각하는 독자들을 의식했는지 작가는 종교와 과학은 서로 양극단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 아니며, 과학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러한 현상들을 부정하겠지만, 부정하는 것 자체가 과학의 기본 정신이라 할 수 있는 과학적 호기심을 배반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즉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해서 부정되어서는 안 되는 실재성(實在性)이 분명 있다는, 그 실재성이 바로 악마의 존재이며 그것을 물리치는 방법인 “엑소시즘”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종교를 믿지 않지만 그렇다고 과학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고 여기지 않는, 즉 과학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일들이 존재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이 책에서 주장하는 신과 악마의 존재와 엑소시즘의 실재성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꼭 이처럼 기독교식 방법만이 유효할까? 각자 신봉하고 있는 종교나 문화권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는 각종 퇴마의식들, 즉 우리한테는 더 친숙할 수 도 있는 불교 “구병시식(救病施食)”이나 무당(巫堂) “굿”, 부적(符籍) 등은 전혀 의미도 없고 효과도 없는 이교도(異敎徒)의 사술(邪術)에 지나지 않은 것일까? 이렇게 종교마다 다른 방법들도 유효하다면 이 책에서 말하는 신과 악마의 존재도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닌 각자마다 가지고 있는 내재적 가치관에 의해 만들어지는 심리적인 현상에 불과하지 않을까?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책 소개에서 언급한 악마를 상징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다르지 않을 듯 한데 더 고민해볼 만한 대목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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