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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븐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8
가와카미 미에코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20~3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없던 “왕따 문제”가 외래문화의 무분별한 유입으로 인해 일본의 “이지메(イジメ; 괴롭힘)” 문화가 우리나라에 상륙하면서 시작된 것이라고 하는 분들도 있는데, 그당시 학창시절을 돌이켜보면 그때도 분명 “왕따”라는 것이 존재했었다. 다만 지금과는 정도가 차이가 있고 - 물론 당시 괴롭힘을 당했던 아이들이 느꼈을 상처와 아픔은 지금과 다르지 않겠지만 -, 그 당시에는 그런 괴롭힘을 미성숙한 청소년들이 겪는 일종의 “성장통(成長痛)”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는 것이 지금과 다르다 할 것이다. 그런데 2009년 기준 15~24세 청소년들의 사망원인 1위가 바로 “자살”- 2011.5.3. 통계청 자료 <2011 청소년 통계> - 이라고 하며, 하루가 멀다 하고 왕따로 인해 자살한 청소년들 기사가 올라오는 것을 보면 이제는 심각한 사회 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 보니 왕따를 소재로 한 국내 소설들도 여럿 만나볼 수 있는데, 특히 왕따의 원조격인 이웃 일본에서는 조금만 둘러보면 소설 뿐 만 아니라 애니메이션, 드라마, 영화 등 참 다양한 장르로 만나볼 수 있다. 이번에 읽은 아쿠타가와상 수상작가인 “가와카미 미에코(川上未映子)”의 <헤븐(원제 Heaven/비채/2011년 4월)>도 바로 이런 “이지메”를 소재로 한 소설이다. 다만 기존 이지메 소재 소설들이 피해자의 상처와 아픔만을 강조했다면 이 책은 가해자의 이야기도 들어볼 수 있다는 점이 이색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얼토당토않은 궤변으로 밖에 느껴지지 않지만.
남들과 다른 눈(사시(斜視)) 때문에 아이들에게 상습적으로 집단 괴롭힘(이지메)을 당하는 중학교 2학년생인 “나”에게 4월이 끝나가는 어느날 “우리는 같은 편이야”라는 쪽지를 받는다.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들의 못된 장난으로 밖에 생각이 안되어 무시해버리지만 편지는 계속되고, 5월 접어들어 만나자는 편지에 마음을 진정할 수 없었던 나는 편지에서 일러준 약속 장소로 나가게 된다. 약속 장소에 나와 있던 사람은 자신을 괴롭히는 “니노미야” 패거리가 아니라 집이 가난하다고 해서, 불결하다고 해서 괴롭힘을 당하던 같은 반 여학생인 “고지마”였다. 서로 친구가 되기로 한 둘은 계속 편지를 주고 받게 되고, 고즈미의 편지들은 갈수록 심해지는 니노미야 패거리들의 괴롭힘을 견디게 하는 유일한 위안거리가 된다. 고지마는 “나”의 “사시”에 대해 “있잖아 나는 네 눈이 참 좋아”라고 말하며 아이들이 “나”의 눈이 기분 나쁘다느니 뭐니 하지만 그건 다 거짓말이고 실제로는 자기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는 사실이 무서워 그런 거라고 이야기한다. 둘의 우정은 계속되지만 괴롭힘은 더욱 계속되고, 급기야 인간 축구 놀이라고 해서 축구공 가죽을 머리에 씌우고 구타당해 크게 상처를 입게 된다. 치료를 위해 병원에 갔던 나는 의사에게서 천형(天刑)처럼 여겨온 사시가 쉽게 교정이 가능하다면, 그것도 적은 비용으로 가능하다는 얘기를 듣는다. 그런데 그런 말이 고지마 와의 관계를 멀어지게 만들어 버린다. 오랜만에 만나자는 고지마의 편지를 받고 처음 만난 장소인 “고래 공원”에 달려 나간 “나”, 그곳에는 니노미야 패거리들이 고지마를 둘러싼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와 고지마는 니노미야 패거리들에게 옷 벗김과 성행위를 강요당하기에까지 이르게 되고, 망설이고만 있는 나 대신 고지마가 패거리들에게 달려든다.
작가의 실제 경험담이었을지 아님 취재의 결과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무나도 잔인한 이지메 장면들과 어린 소년 소녀들의 사실적인 심리 묘사 장면 때문에 읽는 내내 불편했던 책이다. 둘 다 이지메의 이유가 극복할 수 있는 문제 - “나”의 사시는 간단하게 교정될 수 있으며, 고지마의 더러움도 집이 가난해서가 아니라 이혼하고 가난하게 사는 아버지 때문에 일부러 씻지 않는, 일종의 “의리”라고 볼 수 있다 - 임에도, 그리고 괴롭힘에 저항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듯한 두 소년 소녀의 태도가 영 마땅치가 않다. 특히 고지마가 “나”에게
“너도 나도 약하기 때문에 당하고만 있는 게 아니야. 녀석들이 하라는 대로 그냥 복종하고 있는 게 아니라고. 처음에는 그랬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냥 복종하는 게 아니야. 받아들이고 있는 거야. 우리는 눈앞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확히 이해하면서 받아들이고 있는 거라고. 강한가 약한가 하는 기준으로 말한다면, 그건 오히려 강하지 않으면 못하는 일이야.”
라는 말처럼 아이들이 괴롭힘을 당하는 것이 그냥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이해하면서 받아들인다는 것을 살아남기 위한 서글픈 생존 방법으로 해석될 수 있지만 그렇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두 아이의 생각이 왠지 처량하면서도 안타깝게 느껴진다. 또한 병원에 치료하기 위해 갔다가 마주친 “니노미야” 패거리의 “모모세”와의 대화는 이지메 가해자의 변(辯)이라 할 수 있는데 괴롭힘에는 아무런 이유도 없으며 - “나”는 “사시”가 괴롭힘의 원인으로 여겨왔었다 - 모든 것은 그저 우연히 “나”가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며 양심의 가책 은 전혀 받지 않는다는 모모세의 말은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할 수 있는 일은 할 수 있잖아? 하고 싶으면 하면 돼. 아무도 너를 제지할, 그야말로 권리 같은 것은 안 갖고 있어. 그렇지만 문제는 말이야, 그런 비유가 아니고, 왜 너는 죽일 동기라든가 타이밍이 충분히 있는데도 지금 우리 중에 누구라도, 나라도 상관없지만, 죽이지 않는가 하는 것 아닐까? (중략) “왜 너는 그런 짓을 하고 싶지 않을까? 왜 못할까? 문제는 그거야. 왜 너는 우리를 부엌칼이나 뭔가로 찌르지 않을까? 막상 하면 예상 외로 상황이 바뀔지도 모르는데, 왜 너는 그것을 못할까? 잡히는 게 무서워서? 그렇지만 우리는 14세 미만이니까 처벌을 안 받거든. 소년원에는 가겠지만.”(중략) “하면 죄책감이 생기니까? 그럼 왜 너는 죄책감이 생기고 나는 안 생길까? 어느 쪽이 제대로 된 걸까?” “이 세상은 이런 저런 일을 할 수 있거나 할 수 없는 사람으로 가득 차 있지.”
할 수 있기 때문에 괴롭히는 것이고 괴롭힘의 대상인 “나”는 저항하지 못했을 뿐이라는 생각, 이것이 지금 이지메 문제의 진정한 원인일까? 그저 아무 이유 없이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라니, 그저 즉흥적인 답변이 아니라 오랜 시간 곰곰이 생각한 흔적까지 엿볼 수 있는, 14세 소년의 말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이 말에 섬뜩함마저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극단까지 치달은 이지메가 고지마의 저항으로 일단락되고, 주인공도 사시 교정 수술을 받아 더 이상 놀림을 당하지 않게 되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지만 그 해피엔딩이 결코 행복하지 않은 “슬픔”으로까지 느껴지는 이유가. 그런 괴롭힘이 정말 이유 없는 그런 것이라면 괴롭힘에 저항했다고 해서, 놀림의 대상으로 여겨왔던 눈을 교정했다고 해서 해결된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현재진행형(ing)이 될 것임에는 분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왕따문제”를 제3자의 동정이 아니라 당사자인 가해자와 피해자, 둘의 입장에서 있는 그대로 바라봐야 한 다는 것을 일깨워준 소설이었다. 나에게는 지극히 불편했던 이야기였긴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살아갈 용기가 생겼다”라는 어느 일본 중학생의 독후감처럼 이지메를 당하는 학생들에게 희망을 선사하는 작품이 되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