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만의 비밀스러운 삶
아틀레 네스 지음, 박진희 옮김 / 비채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리만(Georg Friedrich Bernhard Riemann, 1826~1866).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독일의 수학자로 해석학, 미분기하학에 혁신적인 업적을 남겼으며, 그가 남긴 기하학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의 기술에 사용되었을 정도로 후대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위키백과 사전 발췌). 특히 그가 처음 형식화했다는 “리만의 가설(Riemann hypothesis)” - 어떤 복소함수가 0이 되는 값들의 분포에 대한 가설. 즉 1과 그 수 자신으로만 나누어 떨어지는 소수(素數:2·3·5·7·11 등)들이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있다는 학설(네이버 백과사전)은 1세기가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1세기 이상 미해결인 상태로 남아 있으며,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주인공이자 199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며 역시 천재 수학자로 잘 알려진 존 내쉬(John Forbes Nash Jr.)조차 리만 가설을 풀기 위해 노력했으나 실패했다고 할 정도이니 수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미해결 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여기까지가 내가 “리만”이라는 수학자에 대해서 알고 있는 전부이다. 그런데 인터넷을 검색해 봐도 여느 천재 수학자들과 그리 다를 것 없는 그의 삶에 뭔가 비밀이 숨어 있다고 이야기하는 책을 만났다. 바로 노르웨이 작가 아틀레 네스의 <리만의 비밀스러운 삶(원제 Roten Av Minus En / 비채 / 2011년 4월)>이 그 책이다. 혹 리만도 천재성 때문에 외계인으로 종종 오해(?)받는 아인슈타인처럼 뭔가 신비주의(神秘主義)나 음모론(陰謀論)과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면서 책을 펼쳐 들었다.

책 첫 페이지부터 아버지가 실종된 지 벌써 나흘째라는 딸과 경찰의 대화로 시작된다. 단서라고는 아버지 컴퓨터에 담겨있는 문서파일 뿐. 엄마에게 보여줄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사적인 내용이 담긴 파일이 소개되면서 이 소설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올해 마흔 세 살의 아내와 두 아이를 두고 있는 중년남성인 “나”는 노르웨이 지방대에서 수학 강의를 맡고 있는 교수이다. 나는 천재 수학자이자 어린 시절 자신을 사로잡았던 “소수”에 대한 가설(-> 리만 가설)의 주창자인 “리만”의 일생을 평전으로 쓰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지만 지난 3개월 동안 고작 한 페이지 밖에 쓰지 못할 정도로 난항을 거듭하자 글 쓰는 데 도움을 얻기 위해 창작입문강좌인 “전문작가를 위한 세미나 - 살아 숨 쉬며 긴장감이 도는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작가입문강좌”에 수강 등록 한다. 그 강좌에서 같은 수업을 듣는 독일어 강사인 비슷한 연배의 중년 여성 “잉빌드”를 만나게 되고, 나는 기본적인 수에 대한 이해력이 탁월하며 내 습작에 대해 거침없는 의견을 제시하는 그녀에게 매력을 느낀다. 경제적으로 큰 문제없이 잘 살고 있는, 아내와 사랑스런 아들과 딸을 가진 인생의 황금기라고 여겨온 삶이 이때부터 조금씩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어느덧 성장해서 자신을 멀리하는 두 아이, 이제는 시들어버린 아내와의 애정으로 자신만의 공간에서 평전을 집필해가던 “나”에게 잉빌드는 어쩌면 밋밋한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그런 존재가 되어가고, 결국 리만의 평전 작업이 진행되면서 나는 잉빌드와 더욱 많은 의견을 나누며 가까워지고 결국 불륜 관계를 맺게 된다. 이때부터 “나”는 자신의 작업노트(일기)에 집필하고 있는 리만 평전의 내용과 함께 자신의 비밀스러운 일탈(逸脫)을 병행해서 적어 내려간다. 잉빌드와의 위험한 사랑이 깊어지면서 부부사이에는 다툼이 잦아지고 반항적이 되가는 아들로 인해 마음이 더욱 흔들려 버리는 나는 리만에 대한 자료 조사를 위해 독일로 잉빌드와 밀월여행을 떠나게 된다. 더 머물고 오겠다는 잉빌드를 남겨놓고 온 나는 평전 작업에 박차를 가하는 데 그러던 중 나는 흔적조차 하나 남기지 않고 갑자기(!) 사라져 버리며 일기는 끝을 맺는다. 아내는 일기 속에 상세히 묘사되어 있는 남편의 불륜이 그저 ‘문학적 허구의 묘사’에 불과하다며 일축하고 불륜 대상이었던 잉빌드 조차 독일 여행은 혼자만의 여행이었을 뿐 일기장의 모든 불륜 사실은 거짓이라고 부인한다. 그렇다면 과연 리만 평전을 집필했던 수학교수 “나”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단란한 가정과 대학교수라는 사회적 위치를 하루 아침에 버려두고 사라져버린 이유는 진정으로 무엇일까? 책은 어떤 해답도 내놓지 않은 채, 말 그대로 결론을 “비밀”로 묻어둔 채 끝을 맺는다. 

책은 앞에서 언급한 대로 19세기 천재 수학자 리만의 삶과 그의 평전을 집필하는 현재의 수학자 “나”의 이야기를 두 축으로 교차로 진행된다. 따라서 제목에서의 “비밀”은 책 중 작가인 “나”가 리만에 대해 알려진 여러 정보들의 편린(片鱗)을 재구성해서 들려주는 리만의 삶과 그의 수학적 업적으로 볼 수 도 있고, 리만의 평전을 집필해가면서 우연찮게 만난 여인으로 의해 평온했던 일상이 하나씩 무너져 내리는 과정과 결국 의문스러운 실종을 “비밀”로 볼 수 있는 중의적(重義的)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독자들에게는 그저 수학자로서 이름 정도만 알고 있었을 - 나도 리만에 대해서는 그가 수학자였다는 것과 그의 가설로 설명했던 소수(素數) 개념이 오늘날 신용카드 등의 전자거래 보안에 응용되고 있다는 정도의 기초적인 상식 수준만 알고 있었다 - 리만의 삶을 책 속 “나”의 필치에 따라 하나씩 구성해 보는 지적 재미와 함께 자신의 불륜 사실을 가감 없이 상세히 기록해 놓은 일기장을 엿보면서 평범한 중년의 삶이 어떻게 흔들리고 번민하는지 , 즉 은밀한 비밀을 공유하는 재미 두 가지 모두를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아쉬운 점을 꼽아보자면 먼저 책에 등장하는 수와 연관된 각종 지식들과 리만이 연구했다는 각종 수학적 이론. 동시대를 살았던 수학자들 이야기는 지적 즐거움을 느꼈던 독자들도 있겠지만 수학 비전공자인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들이어서 읽는데 꽤나 애를 먹기도 했다. 그리고 일기 속에 소개되는 리만의 이야기와 나의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리만의 삶을 온전히 구성해내기가 어려운 점이 있는데 책의 말미에 책 속 작가가 집필하고 있었다는 평전을 따로 구성해서 실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마지막으로 주인공인 “나”의 갑작스런 실종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도 난감한 부분이었다. 연인과 함께 사라졌다면 그렇고 그런 치정(癡情) 사건이었겠지만 일기에도 어떤 단서 하나 남겨 놓지 않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나”의 실종은 아직도 풀리지 않는 리만의 가설에 대한 작가의 역설적인 해석, 즉 리만 가설은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을 “나”의 실종처럼 결코 해결되지 않을 그런 이론으로 남을 것이라는 작가의 일종의 예언(?)이 아니었을까 내 멋대로 추측해본다.  

책은 지루함이 느껴지지 않는 재미있는 책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책의 속살까지 올곧이 이해해내지 못하고 그저 피상적인 줄거리 위주로만 읽어낼 수 밖에 없었던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 그래도 19세기와 21세기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았지만 묘한 공명(共鳴)을 일으키는 두 명의 삶을 엿보는 지적 즐거움 만큼은 강한 느낌으로 남을 그런 책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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