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야구부의 영광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모 방송국의 예능 프로그램이었던 연예인 야구단 방송을 즐겨본 적이 있었다. 야구를 좋아하는 연예인들이 모여 팀을 결성해 기존의 사회인 아마추어 야구팀들과 경기를 벌이지만 연전연패를 하다가 드디어 1승을 거두며 서로 얼싸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보면서 잔잔한 감동마저 느꼈다. 그런데 방송이 인기를 얻으면서 여러 프로야구 구단에서 그들을 지도하고 여러 협찬이 들어오면서 실력이 일취월장해 강팀들마저 이기는 모습을 보고는 이내 흥미를 잃게 되었다. 내가 그들에게 열광했던 것은 그들이 유명 연예인이거나 출중한 야구 실력을 갖춘 강팀이어서가 아니라 꼴찌라도 정말 순수한 열정과 노력만 가지고 있다면 언젠가는 이길 수 있다는 그런 희망을 엿볼 수 있어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프로 야구 구단들의 전문 교육을 받고 실력이 급성장해서 강팀으로 변모해가는 모습이 마치 “개천에서 더 이상 용(龍)이 나올 수 없다”는 시쳇말 - 돈이 바로 실력을 키우는 지름길이라는 자본주의 논리 - 그대로 들어맞는 것 같아, 이제는 더 이상 순수한 열정의 아마추어 팀이 아니라 상업적 냄새가 물씬 풍기는 여느 기성팀들과 다를 바가 없다고 느껴져 관심이 금세 시들해져버렸다. 내가 서울대 야구부에 삐딱한 시선을 가지고 있던 이유도 아마 비슷한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대한민국 최고 수재(秀才)들이 동호회, 즉 취미 수준으로 하는 야구, 한 때는 앞서 말한 연예인 야구단 못지않게 언론에 희자되었고 역시나 여러 프로야구 구단들이 야구 장비를 지원하고 특별 교습까지 했다는 기사들을 보면서 앞으로 이 사회를 이끌어나갈 예비 엘리트들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 영 못마땅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그네들의 대학과는 비교도 안되는 수준의 대학 출신이라는 자격지심(自激之心)이 더 컸을 수 도 있겠지만. 그래서였을까. 전작인 <카시오페아 공주>, <압구정 소년들>을 읽으면서 참 글 재미있게 쓰는 작가구나 하고 생각해온 이재익의 신간 <서울대 야구부의 영광(황소북스/2011년 3월)>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던 이유가. 그런데 막상 책을 읽고 나니 나의 선입견을 여지없이 무너뜨린, 기대를 져 버리지 않는 탁월한 재미와 전작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잔잔한 감동까지 불러일으키는 멋진 소설이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인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의 김지웅, 대기업 영화 투자 파트에서 성공가도를 달리던 중 신생 영화 투자 회사에서 투자금 관리 책임자인 부사장으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직장을 옮겼지만 제의를 해왔던 제작자가 펀딩한 돈 일부를 가지고 해외로 도피하는 바람에 졸지에 실업자 신세가 된다. 설상가상으로 불륜 사실을 아내에게 발각당해 이혼 위기에 처하고 집에서 쫓겨나와 월세 70만원의 오피스텔에서 거주하고 된다. 하루하루가 좌절과 낙담일 수 밖에 없던 지웅은 이삿짐에서 오래전 받았던 “박철순” 선수의 사인볼 - 인터넷 연재에서는 “최동원” 선수 사인볼이었다^^ -을 발견하고는 자신이 몸담았던 서울대 야구부 시절을 떠올린다. 그리고는 좌절을 딛고 일어설 대안으로 자신이 투자 평가자로서 늘 접해왔던 영화 시나리오를 써보기로 결심하고 그 첫 소재로 서울대 야구부를 선택한다. 책은 야구부 시절 같이 뛰고 뒹굴었던 야구부원들을 한명씩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지웅의 학창시절 추억이 오버랩된다. 변호사, PD - 아마도 SBS 라디오 컬투쇼 PD인 이재익 작가 자신을 롤모델로 한 것 같다 -, 의사 등 서울대 출신들답게 사회 각층에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동기들을 만나 그 시절 추억을 이야기 나누는데 유독 자신과 배터리를 이루었던 포수이자 4번 타자였던 선배 장태성의 소식만큼은 어느 누구에게도 듣지 못한다. 시나리오는 완성단계에 들어서지만 장태성의 후일담을 담지 못해 아쉬워 계속 장태성의 행방을 수소문하던 중 그 당시 야구부 매니저이자 태성을 짝사랑했던 희정의 소식을 우연찮게 전해듣고 태성이 졸업 후에도 야구를 그만두지 못하고 롯데 자이언트에서 2군 포수생활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부산으로 그를 만나러 간다. 드디어 만난 태성에게서 그간의 사정과 함께 며칠 후 마지막 은퇴 경기를 치룬다는 것을 알게 된 지웅은 은퇴 경기에 서울대 야구부 동기들을 불러 모은다. 태성의 사연이 인터넷으로 알려지면서 2군 경기임에도 관중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사직구장의 28,500석은 만원 사례를 이루고 드디어 태성의 경기가 시작된다. 마지막 은퇴 인사를 하는 장태성을 바라보면서 서울대 야구부원들의 눈이 축축히 젖는다. 

책 목차를 1회 초부터 연장전까지 야구 경기를 모티브로 따온 이 책은 1997년 창단하여 한국 스포츠 사상 최대인 199연패를 기록했던, 공부에서는 최고였지만 야구실력은 꼴찌였던 서울대 야구부 이야기를 주축으로 하고 여기에 한국 프로야구 30년사를 길이 빛낸 스타들이자 야구 매니아들에게는 전설적인 영웅들이었던 박철순, 최동원, 선동렬, 장종훈, 양준혁 등의 이야기를 중간 중간에 들려줘 읽는 재미가 여간 쏠쏠한 것이 아니다. 스포츠 소설로 볼 수도 있는 이 책에서 작가는 독자들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먼저 이 책의 주요 무대이자 이미 전작인 <압구정 소년들>에서도 소재로 삼았던 작가의 모교인 “서울대”에 대한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서울대학생과 다른 대학교 학생이 지능이나 학력에서 차이가 확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고집이 다른 거다. 한참 마음이 들끓는 10대 후반, 여자, 술, 잠, 영화, 게임 등등 수많은 유혹을 물리쳐야 한다. 타협을 권유하는 마음의 소리와도 맞서야 한다.(중략) 서울대 졸업장은 끝까지 타협하지 않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인증서가 아닐까?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확실하게 통하는, 이 사람은 능력과 함께 근성을 지난 사람입니다 하는 인증서 - P.29 

타대학생들은 그만큼 근성이 부족했다는 뜻으로도 들릴 수 있어 약간은 불편할 수 도 있는 말일수도 있겠지만 이런 관점이 바로 서울대 야구부가 그렇게 패배를 당하면서도 해체되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주된 이유라고 해석할 수 도 있을 것이다. 즉 작가는 연이은 패배에 좌절해서 그만 둘 법도 하지만 바로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런 포기와 좌절을 종용하는 마음의 소리와 주변의 비웃음에도 끝까지 타협하지 않는 서울대 특유의 근성과 야구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그들의 마음이 그 어느 누구보다도 강렬했기 때문에 아직도 이어져 온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야구부를 이끌었던 감독은 그들에게 승리하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싫든 좋든 타인의 주목을 받아야 하고 리더가 될 그들이 패배를 통해서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매번 콜드 게임 패를 당하면서도 오뚝이처럼 포기하지 않고 승리에 대한 확신만큼은 절대 버리지 않는다.  

“단 한 번도 질 거라고 생각하며 연습한 적은 없었으니까. 항상 믿었으니까. 적어도, 믿으려고 애썼으니까. 이번에는 꼭 이긴다고.”

큰 스코어 차이로 졌음에도 승리하지 못한 점을 아쉬워하며 다음 경기에서는 꼭 이기겠다고 다짐하는 그들, 결국 창단한지 27년 만에 꿈에 그리던 1승을 거두었다고 한다. 작가가 말하는 서울대 야구부의 영광은 그렇게 목말라하는 승리를 거둔 결과가 아니라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했던 서울대 야구부원들의 열정이 그 자체가 바로 영광이었다고 말한다. 장태성의 마지막 헛스윙이 지웅에게 멋진 희망의 홈런으로 보였던 것도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젊은 날의 열정을 다시금 떠올릴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굳이 “서울대” 야구부만은 아닐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야구단’인 충북 충주 “성심학교” 야구단원들이 흘리는 구슬땀과 바쁜 일상으로 파김치가 되어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야구가 좋아서 휴일마다 동네 운동장에서 목청이 떠나가라고 소리 지르며 야구 연습을 하는 동네 야구팀 직장인들의 상기된 목소리에서도 이런 열정을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책을 덮고 나서 나는 과연 젊었을 때 무언가에 미치도록 열광했던 적이 있었는지 잠시 떠올려봤다. 선배들과 술 마시며 사회 부조리와 모순을 이야기하며 울분을 토했던, 세상 고민이라는 고민은 혼자 다하려 했던 대학시절, 혼자 짝사랑했던 여학생에게 편지 쓴다고 밤을 하얗게 지새웠지만 수십 장의 구겨버린 편지지만을 남긴 채 결국 부치지 못했던 일, 학교 다닐 때도 잘 하지 않았던 공부를 회사 들어와서 근 몇 달을 주말마다 학교 도서관을 찾아가서 공부했던 일들이 떠오른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절로 입가에 미소를 짓다가도 지금은 싸늘하게 식어버린 열정에, 이제 젊은 시절의 열정을 되살리기에는 너무 늦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씁쓸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젊은 시절을 다시금 상기시켜보는 계기가 되었던 이 책, 참 재미있고 감동적인 책이었다. 이재익 작가의 작품, 앞으로도 계속 읽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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