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는 왜 반복되는가 - 공황과 번영, 불황 그리고 제4의 시대
로버트 라이시 지음, 박슬라.안진환 옮김 / 김영사 / 2011년 2월
평점 :
절판


국가 대환란(大患亂)이라는 IMF 사태를 겪은 지 딱 10년 만에 다시 한번 세계적 경제 위기를 겪게 되었다. 이번 경제 위기가 10년 전 아시아로 한정된 IMF 사태와 다른 점이라면 세계 경제 대국인 미국에서 시작되어 유럽, 아시아 등 전 세계로 확장된 위기라는 점에서였을 것이다. 원인에 대해서는 “서브 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로 일컬어지는 미국의 주택 시장 거품 붕괴를 가장 큰 원인으로 들기도 하고, 세계 금융 시장을 주름잡던 미국 뉴욕 금융가(Wall-Street)의 "모럴 헤저드(Moral Hazzard)"를 꼽기도 하며, 지난 수십년 간 전 세계 경제를 지배해온 “신자유주의(新自由主義)”의 모순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라는 등 다양한 진단과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제 3년여가 흘러 어느 정도 진정된 국면(局面)을 보이고 있지만 아직도 유럽 재정 위기가 뉴스에 심심찮게 오르내리고 있고, 중동(中東)발 민주화 열풍이 일파만파 번지면서 유가(油價)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으며 설상가상으로 일본 대지진 여파로 경기(景氣)가 다시 더블 딥(Double Deep: 경기침체 후 잠시 회복기를 보이다가 다시 침체에 빠지는 이중침체 현상. 네이버 백과사전 발췌)에 빠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위기는 왜 반복되는 것일까? 앞에서 잠깐 언급했던 원인들이 해결되면 이런 위기의 반복은 없어질까? 클린턴 행정부에서 노동부 장관 및 오바마 대통령의 경제자문위원을 맡기도 했으며 현재 버클리 대학 공공정책 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에 있는 “로버트 B. 라이시(Robert B. Reich)”는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원제 After Shock/김영사/2011년 2월)>에서 보다 근원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위기는 계속 반복될 것이며, 더 악화될 수 도 있다고 경고한다.  

 작가는 서문인 “호황과 불황의 시계추”에서 작금의 대불황을 국민들의 과소비가 문제였다고 지적하는 미 재무장관 “티머시 가이트너”의 말을 소개하면서 국민들의 과소비는 문제의 핵심이 아니며, 이전보다 거대해진 경제시스템이 국민들에게 제공해야 마땅한 생활수준을, 대다수의 국민들의 수입으로는 누릴 수 없다는 사실이 문제라고 잘라 말한다. 그렇기에 경제의 왜곡, 소득 불균형 심화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는 계속 악몽에 시달려야만 하며,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기 전 지금 당장 단계별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하고 있는, “자본주의 모순”이라고까지 일컬어지는 부(富)의 편중, 즉 소득 불균형이 과연 이번 경제 위기의 진짜 원인일까? 서문만 읽어서는 오래전 자본주의의 붕괴를 예언했던 마르크스의 또 다른 변주(變奏)에 지나지 않은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본문에 들어가 작가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들어보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본문에서 작가는 1930년대 대공황과 2007년 대불황이 같은 양상을 띠고 있다고 전제한다. 먼저 작가는 대공황 시절 미국 연방준비제도 위원회(FRB: Federal Reverse Bank) 의장(1934~1948)을 역임한 “매리너 에클스(Marriner Eccles)”의 대공황 원인에 대한 진단을 소개한다. 그 당시에도 1920년 대 과도한 소비가 대공황의 주요 원인이었다는 분석이 우세했고 이자율을 올리고 국가 재정 균형 위주의 정책이 실행되었지만 공황의 골은 더욱 깊어만 갔다. 매리너 에클스는 대공황의 주요 원인은 1920년대의 과도한 소비와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진짜 원인은 오히려 최상위 부유층이 소득의 방대한 축적을 거머쥔 것이 핵심원인이었다고 결론을 내린다. 즉 극소수가 대다수 국민들의 구매력을 흡수해버린 것이 진짜 문제였던 것이다. 따라서 소득 불평등을 해결할 정책, 즉 “뉴딜(New Deal)" 정책 - “부유한 사람들을 더욱 부유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풍요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진보의 기준이다”이라는 루스벨트 대통령의 말이 이 정책의 방향성을 잘 드러낸다 - 을 시행하면서 공황을 극복해냈다고 한다. 대공황에 뒤이은 정부정책들은 에클스가 루스벨트의 취임직전에 제안한 프로그램들의 상당수(사회보장제도, 국가 공공기반 시설및 교육기관 개선안 등)를 포함하며 새로운 경제 질서를 선도했으며, 이에 필요한 재원은 정부 부채로 지원되었다고 한다. 이들 프로그램들은 이후 중산층이 안정과 번영, 생산성을 되찾는 데 큰 도움이 되었으며, 이 시절에 고안되거나 개선된 고용보험과 노령 사회보장연금, 상해보험 및 장애인 복지, 60년대 제정된 메디케어(Medicare:노인 의료보험), 매디 케이드(Medicaid: 저소득층 의료보험) 등은 그 후 불행이 닥쳤을 때조차도 일정 수준의 소득을 보장해주는 일종의 “기본합의”로써 1947년부터 1975년까지 계속된 “대번영의 시기”를 이끈 주요 정책이 되었다고 한다. 즉 중산층이 사회의 번영과 부를 충분히 공유할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을 만드는 데 성공한 미국정부는 완전고용이 이뤄지도록 경제 시스템을 재건하고, 소득세를 더욱 적극적으로 거둬들이고 일반 근로자들의 협상력을 증진시키고, 사회보장제도를 강화하고,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고, 노동 생산성을 향상시킴으로써 공황이후 근 30여년의 대번영의 시기를 누리게 된 것이다. 그런데 1970년 대 말부터 “기본합의”가 천천히 무너지는 상황이 오면서 - 장하준 교수는 신자유주의가 이때부터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고 진단한다 - 경제는 계속 발전하고 일자리는 차고 넘치는데도 중산층의 소득은 더 이상 증가하지 않았고, 반면 경제성장의 달콤한 열매는 대부분 다시 상류층으로만 집중되는, 대공황 직전과 유사한 상황으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세계화와 자동화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노동자들이 대거 해고되고, 일자리의 개수를 감소시키지는 않았지만 과거만큼의 보수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지다 보니, 중산층의 소득이 갈수록 주는 상황이 발생했으며, 또한 정부는 기본합의를 유지하고자 하는 각종 정책들을 등한시하고, 기업들이 직원 해고, 임금 및 복지 삭감, 노조 해체, 보험료 지원 중단 등 기본 합의 깨뜨리는 행동들을 정부가 방관하면서 소득이 다시 상위층에 집중되는 그런 상황이 갈수록 심해졌고, 결국 2007년 대불황이 시작되고 만 것이라고 진단한다.  

 그렇다면 2007년 대불황 이후 대책은 과연 어떡했을까? 작가는 2007년 말에 시작된 대불황은 1930년 공황 이후 “기본합의”를 이끌어낸 것과는 달리 새로운 경제 질서를 전혀 창출하지 못했다고 진단한다. 경기 하강을 충분히 제어할 수 있는 자본을 신속히 투입하면서 제2의 대공황이 될 뻔한 상황을 방지할 수 있었지만 건강보험 적용 대상 확대 외에는 갈수록 심해지는 근원적 문제, 즉 에클스가 대공황의 원인으로 파악한 '불균형 심화 문제'를 경감하는 조치는 거의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작가는 경기 부양책과 통화량 증대의 효과가 사라지고 나면 장기간의 고실업률 사태가 벌어질 것이며, 지난 30년을 지배했던 근원적인 트렌드가 되풀이 되고 만다고 경고한다. 즉 중위임금은 변동이 없거나 오히려 내려갈 것이고 대부분의 가구는 경제적으로 불안정해질 것이며 불균형은 더욱 커져갈 것이라는 의미이다. 2007년 대불황의 근본적인 문제는 금융기관들이 무모했거나 소비자들이 돈을 너무 많이 빌려 썼다는 것이 핵심이 아니며, 대공황을 야기한 것처럼 국민 총소득에서 점점 더 많은 부분이 상위 부유층에만 집중되었고, 지금도 그러고 있기 때문에, 즉 급료와 생산을 연결해주는 기본합의가 깨졌기 때문에 미국인들은 이제 미국 경제가 생산할 수 있는 재화와 용역을 더는 마음껏 구매할 능력이 없게 되어 미국은 다시는 '정상'으로 되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무서운 경고이다. 셈이다. 따라서 그 합의를 다시 확립하는 것이 진정한 해결책이라고 주장한다. 

작가는 그 합의로 9가지 대안을 제시한다. 역소득세 정책, 탄소세의 부과, 부자들의 한계세율의 인상, 재고용 대책, 소득수준에 따른 학교 바우처 제도, 향후 소득과 연계한 학자금 대출, 전국민 메디케어 정책, 공공재의 활용, 깨끗한 정치풍토의 마련이 바로 그 대안이다. 작가는 마지막 말에서 소수의 부가 소득을 독점하고 다수가 그 나머지를 나눠 갖는 나라에서는 그 누구도 성공할 수 없으며, 불균형은 단순히 경제적 성장만 잠식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날실과 씨실을 가르고 찢어버린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성공을 거두고 권력의 정점에 이를 수 있는 것은 오직 경제 및 정치체제가 안정되어 있을 때만 가능하며, 이러한 안정은 사회체제가 우리 모두의 이익을 위해 돌아가고 있다는 대중의 믿음에서 비롯된다. 그러한 믿음이 사라지면 모두의 행복과 안녕이 위협받고, 결국 우리는 개혁을 택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를 하며 끝을 맺는다.  

  책 내용을 소개하다 보니 글이 길어졌지만 핵심은 바로 “소득 불균형의 해소”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어쩌면 장하준 교수가 주장하는 “복지 정책 확대”- 그의 저서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서 부자들에게 주어지는 더 많은 부가 사회 전체의 혜택으로 파급되게 하려면, 국가는 각종 정책 수단(감세를 허용하는 대신 투자를 조건으로 제시)를 통해 부자들로 하여금 더 많이 투자하도록 해서 더 놓은 경제성장을 이루어 낼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아울러 복지 국가 같은 매커니즘을 통해 전 사회 구성원들과 성장의 과실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와 일맥상통하는 이 책은 소득 불균형이 어떻게 공황과 불황을 가져왔고, 그걸 만회할 구체적인 정책 대안 - “기본 합의”를 복원하는 정책 - 을 제안했다는 점에서 보다 실질적인 진단과 해결책을 명쾌하게 제시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아마도 이 책을 읽을 어떤 세력들은 소득 재분배와 상위층 중과세(重課稅), 각종 과격한(?) 복지 정책들을 대한다면 “극좌 빨갱이”라고 욕을 하겠지만 작가가 공산권 국가나 복지체제가 잘 갖춰져 있다는 북유럽 국가 출신이 아니라 바로 자본주의의 총본산이라 할 수 있는, 또한 그들의 경외에 마지 않는 “미국” 행정부의 주요 관리를 지냈고, 주류 경제학자로서 권위 있는 교수라는 이력을 알게 된다면 튀어나온 입들이 저절로 들어갈 만 하다. 부디 이 책에 색깔을 칠하지 말고 옷깃을 여미고 제대로 귀담아들어주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  작가의 경고대로 작금의 경제 정책들이 그 원인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해법이 아닌 벼랑 끝으로 향하는 폭주기관차를 잠시 멈추게 하는, 그저 위기를 봉합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다면 책의 제목대로 위기는 다시 반복되고 말 것이다. 이번에 닥칠 위기를 해결하려면 천문학적인 국민의 혈세(血稅)가 투입되도 해결될 지가 미지수이며, 그 바닥이 과연 어디일지를 짐작키가 어렵다는 작가의 경고는 어쩌면 자본주의에 큰 경종을 울리는 묵시록(黙示錄)이라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 복지를 결코 이념적인 잣대로 재단할 것이 아니라 경기 호황과 불황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나아가 우리의 생존에 직결된다는 이 책의 교훈이 널리 알려지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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