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온다 리쿠 지음, 박수지 옮김 / 노블마인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내가 “온다 리쿠”를 처음 만난 건 <삼월은 붉은 구렁을(三月は深き紅の淵を)>였다. 일본 추리 소설 붐이라 그녀의 이름은 익히 들어왔지만 나만의 여성 작가 콤플렉스 - 여성 작가 작품들은 별로일 것이라는 일종의 편견이다. 이 편견을 처음 깬 작가가 역시나 일본 작가인 “미야베 미유키” 때문에 선뜻 손이 가지 않다가 워낙 입소문이 대단했던 <삼월은~>을 읽고서는 “왜 그녀를 좀 더 일찍 만나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가 들 정도라고 서평을 썼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삼월은~>의 연작들을 모두 읽어볼 요량으로 책을 샀건만 다른 책들을 읽느라고 책꽂이에 고이 모셔두고는 아직도 읽어보지 못하고 있어 아쉬움마저 들었는데 최근에 <삼월은~> 시리즈가 아닌 그녀의 다른 책을 읽게 되었다. 그녀의 첫 번째 본격 호러라는 평을 받고 있다는 <우리 집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원제 私の家では何も起こらない/노블마인/2011년 1월)>이 바로 그 책이다. 220 여 페이지의 짧은 분량이기도 하지만 뒷골이 서늘할 정도로 무서우면서도 몽환적인 아름다움이 꽤나 인상적이어서 금세 읽게 만드는 강한 흡입력으로 “역시 온다 리쿠!”라는 감탄이 절로 나오는 책이었다.  

  책의 배경은 표지처럼 언덕 위의 오래된 집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환한 보름달 아래 그늘이 드리워져 있는 이쁜 집, 서로 껴안고 있는 토끼와 눈과 팔이 그려져 있는 잼 유리병, 주전자, 찻잔, 나이프, 가위, 쇠스랑이 그려져 있는 표지만 보면 그저 예쁘다는 느낌만 드는데 책을 다 읽고 나니 표지 그림 하나하나가 섬뜩하기 그지 없는 그런 아이콘임을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림 책에서나 나올 법한 언덕 위의 이쁜 집, 오랜 풍상을 거쳤음에도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는 이 집의 정체는 바로 “유령의 집”이다. 처음 이 집을 지은 주인은 아내와 아들을 잃고 자살 했고, 사이좋은 자매는 사과 파이를 굽다가 서로를 칼로 찔러 죽이고,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는 눈 먼 주인을 모시는 여자는 아이들을 납치해 토막 내서 잼 유리병에 담아 지하 창고에 보관해 놓고는 주인에게 먹이며, 독거노인들을 골라 연쇄 살해하던 소년은 자신을 괴롭히던 친구들 앞에 나타나 자살하게 만든 존재가 바로 이 집 지하창고에 살고 있는 유령 소녀임을 알고는 그녀 앞에서 자살하고 사건은 미궁에 빠진다. 이처럼 이 집에서 죽은 유령들은 이 집을 떠나지 못하고 계속 집에 머물게 되고, 덕택에 유령의 집으로 명성(?)을 얻게 되면서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방문해서 이것저것 묻기도 한다. 최근에는 소설가가 새로운 주인이 되고, 집수리를 맡게 된 일꾼들 앞에 이 집에 거주하고 있는 유령들이 떼를 지어 나타나지만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오히려 새롭게 단장하려는 좋은 의도임을 알고는 눈에 잘 안 띄는 파손 부분을 일러주는 등 적극적으로 집수리를 도와주고, 일꾼들의 돈을 떼어 먹으려는 악덕 부동산 업자를 혼내주기도 한다. 

  여름만 되면 공중파며 케이블 TV며 납량 특집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흉가(凶家)”가 주 소재인 이 책은 집에서 벌어진 사건들 - 자살, 존속 살인, 아동 납치 살해, 식인 등 -을 뜯어보면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로 무시무시한 사건 일색 - 다 읽고서 잠자리에 들면서 책 내용을 상기시켜보니 꿈자리가 뒤숭숭해질 것 같아 얼른 생각을 멈췄다 - 인데도 책을 읽고 난 느낌은 무섭기보다는 꿈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처럼 몽환적이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아마도 이 집이 겪어온 세월만큼 켜켜이 쌓인 추억- 물론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그런 추억 - 들을 이 집을 방문하는 사람들과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하나 하나 들려주는 목소리 톤이 여느 공포 소설들처럼 귀청을 쩌렁 쩌렁 울리는 경기(驚氣)을 일으킬 만큼 그런 소리가 아니라, 마치 그 어떤 “존재”가 내 귓등에서 들릴락 말락 조용한 목소리로 소곤소곤한 들려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일 것이다. 물론 읽으면서 뒤를 돌아다보면 어떤 “존재”의 눈과 마주 칠 것 같은 불안감에 읽으면서 선뜻 뒤를 돌아보기가 어려웠지만 말이다. 특히 유리창에 빼곡히 달라붙어 집수리하러 온 일꾼들을 바라보는 장면을 머릿 속에 떠올려 보면 마치 영화 <주온(呪怨)>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무서울 수 있는 장면인데 결국 일꾼들을 도와 집 수리를 마치고 수리 기간을 넘겼다는 핑계로 품삯을 떼어먹으려는 업자를 혼내주는 장면까지 읽게 되면 절로 웃음을 짓게 만들기도 한다. 

  어느 독자는 이 책을 읽고 꿈자리가 사나웠을 정도로 무서웠다고 하는데 내가 무딘 건지 읽는 동안 오싹한 기분은 들었지만 그렇게까지 무섭게 느껴지지는 않았는데, 오히려 읽고 나서 책 속 내용을 상상해보니 그제서야 참 무서운 이야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티븐 킹의 지극한 공포를 기대했던 독자들이라면 실망스러웠겠지만, 읽는 동안은 그렇게 무섭지 않았지만 읽고 난 후 상상해보면 더 무섭다는 느낌이 드는, 은근하면서도 묘한 느낌이 참 매력적인 공포소설을 읽어보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온다 리쿠, 색다른 재미와 매력을 보여주는 작가임을 다시 한번 확인 시켜준 이 책 덕분에 책장에서 먼지만 쌓이고 있는 그녀의 <삼월은~> 시리즈를 드디어 꺼내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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