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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 홈즈걸 2 : 출장 편 - 명탐정 홈즈걸의 사라진 원고지 ㅣ 명탐정 홈즈걸 2
오사키 고즈에 지음, 서혜영 옮김 / 다산책방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어릴 적 어머니를 따라 시장이나 백화점 쇼핑을 가면 어찌나 싫었던지 투정 부리기 일 수였다. 옷을 사는데 몇 번을 입어야 하는지, 마음에 드는 옷 발견했으면 그냥 사면 되는 데 어찌 그리 다른 가게들은 돌아다니는 지, 한 두 시간 끌려 다니다가 결국엔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곤 했다. 그러다 보니 어머니와의 외출은 가히 “공포”로까지 느껴졌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어머니께서 작전을 바꾸셨다. 나를 백화점 인근의 서점에 맡겨놓고는 혼자서 두 세시간씩 쇼핑을 하시는 걸로 말이다. 어릴 적부터 책을 좋아했는지라 서점에서만큼은 혼자서도 두 세 시간씩 잘 놀다 보니 어머니의 남동생인 외삼촌 친구가 운영하는 서점에 맡겨놓고는 마음 놓고 쇼핑을 하시는 거였다. 그러다 보니 그 지겹고 무서웠던 어머니와의 쇼핑이 어느 순간부터 서점가서 노는 재미에 빠져 매 주말만 되면 어머니께 쇼핑가자고 성화를 부렸었다. 이제 결혼해서 아내와 똑같은 일을 겪고 있는데, 처음에 한 시간 정도는 아내 뒤를 따라다니다가 지겨워질 때 쯤 되면 백화점 서점에 있을 테니 마음 놓고 쇼핑하고 오라고 아내를 보내고는 서점에서 유유 작작 신간 책들을 보곤 한다. 그래서인지 어릴 적 꿈 중의 하나가 나중에 어른 되면 서점 주인 해야지 하는 소박한(?) 생각을 했었나 보다. 지금이야 동네 서점 뿐만 아니라 대형 서점들도 줄줄이 망해서 서점이 더 이상 노후 대책이 아니게 되었지만 마음 한 켠에는 책들과 함께 하는 서점 주인 꿈이 아직도 남아 있다. 서점을 배경으로 하는 독특한 추리소설인 오사키 고즈에의 <명탐정 홈즈걸> 시리즈가 유독 반가운 것도 아마도 아직도 미련이 남아 있는 서점 주인이라는 꿈 때문일 것이다. 시리즈의 1권은 작년에 읽었는데 근 일년 여 만에 2권을 읽게 되었다. <명탐정 홈즈걸2: 출장편(원제 晩夏に捧げる/다산책방/ 2009년 12월)>이 바로 그 책이다. 단편집이었던 1권과는 달리 장편인 이번 책도 역시나 1권처럼 흐뭇하고 즐거운 그런 책 읽기였다.
전편에서 서점에서 일어나는 소소하면서도 결코 쉽지 않은 미스터리들을 멋지게 해결한 세후도 서점의 콤비 교코와 다에에게 한 통의 편지가 날라온다. 교코와 함께 일했던 동료 미호가 자신이 근무하고 있는 나고야의 고서점 마루우도에 유령이 나타나니 어서 와서 해결해달라는 뜬금없는 편지였다. 글쎄 하는 마음에 망설이는 교코와는 달리 부쩍 흥미를 느끼는 다에는 교코에게 가보자고 조르고, 결국 둘은 휴가를 얻어 나고야로 향하게 된다. 미호와 서점 주인 등 여러 사람들에게 목격된 유령의 정체가 27년 전 유명 작가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알려진 작가의 제자라는 소문이 돌고, 교코와 다에는 본격적인 탐문 수사에 착수하게 된다. 이미 공소시효도 끝나버린 케케묵은 옛날 일이 되어 버린 살인사건을 과연 3박 4일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둘은 해결할 수 있을까? 스케치북에 알 수 없는 단어들과 그림을 그려대던 다에는 그 당시 사건 관계자들을 불러 모아 전통적인 추리 쇼라 할 수 있는 “범인은 바로 너!” 쇼를 펼쳐 보이고, 해결될 수 없을 것 만 같던 과거의 살인사건과 유령의 정체를 통쾌하게 밝혀낸다.
이번 미스터리는 단편인 전 권과는 달리 조금은 긴 호흡의 이야기인 장편 소설로서 두 주인공이 태어나기도 전인 27년 전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사실 추리소설만의 절묘한 트릭이나 반전을 기대하기 어려운, 명탐정인 다에가 추리해내는 장면도 그다지 인상적이지는 않아 미스터리로만 본다면 평범한 수준의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보통 추리소설이라 하면 기괴한 살인사건과 그것을 풀어가는 진지한 명탐정이 떠오르는 것이 일반적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책처럼 잔혹한 연쇄살인 같은 범죄가 아닌 - 책에서 등장하는 27년 전 살인 사건은 칼로 난자한 살인이니 사건 자체만큼은 잔인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세월이 그걸 희석시켜 이제는 먼 옛날 애기처럼 느껴진다 - 실제로 주변에서 일어날 법한 소소한 미스터리를 다뤄 가볍고 편안하게 읽어볼 만한 미스터리를 “코지 미스터리(Cozy Mystery)”라고 부른다는데 이 <명탐정 홈즈걸> 시리즈가 딱 제격이다. 그러다 보니 추리소설로서는 그다지 인상 깊지는 않지만 부담감 없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그런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다 보니 작년에 여러 코지 미스터리 작품들을 읽었었는데 그들 중에서 이 <명탐정 홈즈걸> 시리즈가 가장 장르적 재미를 잘 담아낸 그런 작품으로 평가하고 싶다. 이 시리즈를 내가 재미있어 하는 이유는 바로 13년이나 서점에서 근무했었다는 작가의 이력이 책 곳곳에 잘 녹아 있어 서점 직원들의 하루 일과, 책들의 배치와 인테리어, 다양한 고객들의 표정과 사연 등 서점에 대한 묘사가 꽤나 흥미롭기 때문이다. 이번 2권에서도 주인공인 교코가 나고야의 고서점 마루우도와 분점을 묘사하는 장면에서는 머릿 속에 서점의 모습들이 절로 그려질 정도로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번 2권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은 초반 세후도 서점을 찾아온 형사들이 서점에서 두 시간 이상 머무는 사람들이 있다는 데 의심스러워하는 장면이었는데, 내가 바로 그런 사람들 중에 하나이니 절로 웃음이 나오는 장면이었다.
1권 단편집에 이어 2권 장편에서도 꽤나 쏠쏠한 재미를 안겨준 이 시리즈는 이제 3권만을 남겨두고 있다. 3권에서는 1권처럼 다양한 에피소드를 담아낸 단편집 - 개인적으로 이 시리즈는 사실 장편보다는 단편들이 더 재미있는 것 같다 - 이라니 아무 서점에나 가면 만나볼 수 있을 것 같은, 평범하면서도 기발한 추리 콤비 교코와 다에가 어떤 유쾌하고 재미있는 미스터리를 소개해 줄 지 기대가 된다. 묵직하고 불편한 추리소설에 거부감이 있는 분이라면 추리소설 특유의 재미를 한껏 가지면서도 부담없이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이 시리즈를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