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펄 벅을 좋아하나요?
안치 민 지음, 정윤희 옮김 / 밀리언하우스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펄 벅을 좋아하나요?(안치 민 저/밀리언하우스/2011년 1월)>을 받아들고서 “펄 벅”에 대해 내가 얼마나 알고 있는지 자문(自問)해보았다. 그녀의 대표작품인 <대지(大地)>는 청소년 권장 소설로 읽어봤었고, EBS에서 오래전 흑백영화 <대지(1939)>- 수많은 메뚜기 떼가 하늘을 뒤덮는 장면과 책에서도 펄 벅이 잠깐 언급하는데 중국인이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서양 사람들이 그 역할을 해 상당히 어색했던 기억이 난다 -를 본 정도가 내가 펄 벅에 대해 알고 있는 전부였다. 그녀가 노벨문학상 탔다는 것도, 실제 중국에서 살았었다는 것도 이 책 첫 부문의 프로필을 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그녀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없다 보니 질문이기도 한 제목에 대한 나의 첫 대답은 긍정도 부정도 아닌 “글쎄”일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모호한 대답과 함께 펄 벅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다.
19세기 말, 중국 남부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윌로우는 그 당시 중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난한 집의 외동딸로 자란다. 그러던 어느날 윌로우는 마을 교회 선교사의 딸인 푸른 눈의 이방인 펄 벅을 알게 되면서 그녀와의 평생에 걸친 우정이 시작된다. 1940년대 중반 “국공내전(國共內戰)”이 시작되면서 펄 벅은 미국으로 돌아가게 되고, 공산당원의 아내였던 윌로우는 중국 독립과 “모택동” 공산당의 집권, 문화혁명 등 중국 현대사의 온갖 풍상(風霜)들을 온 몸으로 겪어내며 멀리 있는 친구 펄 벅을 그리워한다. 1972년 미국 닉슨 대통령의 방중(訪中)때 다시 중국으로 돌아 오기로 했던 펄 벅은 중국 정부의 거부로 결국 방문이 취소되고, 그녀를 기다리던 오랜 친우 윌로우는 펄 벅이 살았던 마을을 찾아온 닉슨 대통령에게 안부를 전하게 된다. 결국 펄 벅은 자신이 자랐던 마음의 고향인 중국으로 되돌아 오지 못하고 1973년 눈을 감고, 등소평이 집권하면서 폭압의 정치가 막을 내리게 된 중국 당국은 윌로우에게 미국 방문을 허락하게 되고, 윌로우는 팔 십 노구를 이끌고 드디어 펄 벅을 만나러 미국으로 떠난다. 펄 벅이 잠들어 있는 무덤에 선 윌로우는 자신이 살던 마을에 있는 펄 벅 어머니의 무덤가 흙을 뿌려주고 수십년 간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를 그녀에게 들려준다. 그리고 펄 벅 무덤 주변 흙과 화초 씨앗을 담는다.
이 책은 펄 벅의 일대기를 그린 전기(傳記)소설이겠지만 주로 전기소설이 위인(偉人)들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그의 업적과 삶을 연대기 순으로 나열한 “역사 소설”이라고 한다면, 이 책은 펄 벅이라는 실존 인물에 펄 벅과 우정을 나눈 인물로 설정된 가공의 인물 “윌로우”를 끼워 넣은, 즉 실제와 가상이 교차되는 “팩션(Faction)"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 보니 기존 전기 소설이 작가가 자서전이나 주변 인물들의 증언을 토대로 위인의 삶을 전지적(全知的) 작가 시점으로 서술 - 주인공의 생각을 작은 따옴표 형식으로 직접 서술한다 - 한다면, 이 책은 윌로우의 시선으로 펄 벅의 삶을 그려내는 관찰자(觀察者)적 시점 서술 - 윌로우가 펄 벅과 직접 나눈 대화나 주고 받은 편지, 곁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들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다 - 형식을 띤다. 물론 저자 후기에서 작가가 밝히고 있듯이 자서전이나 주변 인물들의 증언들을 토대로 재구성해낸, 실제 펄 벅의 삶에 근거한 구성이겠지만 몇 몇 사건 들 - 펄 벅 아버지의 사망 시기나 펄 벅이 중국을 떠나게 만든 사건 등 - 소설적 전개를 위해 그 시간대를 바꿔놓기도 한다. 또한 문화 혁명 기간 모택동 부인의 펄 벅을 “미국 제국주의자”로 고발하라는 지시로 악의적인 글을 썼었던 경험이 있던 작가는 주인공 윌로우가 자신과 똑같은 지시를 받고서도 친구인 펄 벅을 배신할 수 없다는 이유로 온 몸으로 거부하고 온갖 고초를 겪는 일종의 “자기반성”의 설정을 삽입하기도 한다. 그렇다 보니 윌로우가 함께 보낸 시간들 외의 펄 벅의 삶, 즉 잠시 미국으로 돌아가 대학을 다녔던 시절이나 중국을 완전히 떠난 후 미국에서의 삶 등은 단편적으로만 언급하고 있다.
오히려 개인적으로는 펄 벅 보다는 윌로우의 이야기가 더 다채롭고 흥미로웠는데,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펄 벅과 그의 가족들과 인연을 맺게 되면서 조금씩 자기 현실을 자각하게 되고, 팔려가다 시피 한 첫 결혼의 실패 후 상해로 떠나 인텔리 여성으로 극적인 신분 변화를 가져왔지만 1950년대에서 70년대까지 중국 독립과 공산당 집권, 문화 대혁명 등 대 격변의 시대에서 모택동의 최측근으로 촉망받던 간부의 아내에서 펄 벅을 비난하라는 지시를 거부한 탓에 오랜 수감생활을 거쳐 “반동”으로 낙인찍히고 남편 또한 수용소에서 비참하게 죽는, 윌로우의 파란만장하고 굴곡진 삶을 쫓아가다 보면 어느새 잔잔한 감동까지 불러일으킨다. 어찌 보면 이 책의 진정한 주인공은 바로 “윌로우”가 아닐까? 물론 윌로우의 삶을 드라마틱하게 만든 인물로서 펄 벅의 가치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사실 펄 벅을 다른 인물로 대체한다 해도 크게 어색할 것 같지는 않을 것 같다.
책에서 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인명(人名)에 대한 영어식 표기를 들 수 있겠다. 주인공이 “윌로우(버드나무)”라는 이름을 갖기 전에는 “위드(잡초)”로 불렸다던가, 기독교식으로 이름 짓다 보니 우스꽝스럽게 되어 버린 이웃 아이들의 이름, 펄 벅 가족을 생사의 위험까지 내몰기도 했고 훗날 참회하여 윌로우 아버지 뒤를 이어 선교사에까지 오르는 자주 등장하는 주요 인물인 “시골뜨기 황제” 등 이러한 영어식 이름 표기가 영 익숙하지가 않았다 . 특히 책 후반부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이라 할 수 있는 닉슨 대통령이 펄 벅이 자란 마을을 방문하는 장면에서 윌로우가 대자보처럼 걸어놓은 시(詩) - 가로, 세로, 상하 등 읽는 방식에 따라 뜻이 달라지는 시구 - 만큼은 한자(漢字)가 병기되었다면 더 이해하기 쉬웠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작가가 미국에 거주하고 있고 영어권에서 출간하다 보니 서양인들에게는 낯선 한자를 모두 영어식으로 표현해서 그렇게 번역될 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추측이 되는데 앞에서 영화 “대지”에서 중국인 역할을 서양인이 한 것처럼 영 낯설고 어색하기만 했다. 혹 이 책의 중국어판(中國語版)이 있었다면 영어판과 비교해보면서 번역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 책을 통해서 펄 벅과 윌로우, 두 주인공이 만나게 된 유년기에서 함께 살았던 성인의 세계, 그리고 헤어져 서로를 그리워하면서 보냈던 안타까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성장해가는 긴 여정을 그린 “성장소설”과 같은 재미와 감동을 맛볼 수 있었다. 끝으로 처음 질문으로 돌아와서 책을 다 읽고 난 후 난 과연 펄 벅을 좋아하게 되었을까? 내가 중국인이었다면 이 책으로 펄 벅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었겠지만 내 대답은 처음과 마찬가지로 “글쎄”로 끝을 맺어야 할 것 같다. 다만 그녀의 중국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컸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대답이 될 것 이다. 그러면서 중국을 사랑했던 펄 벅과 같은 사람이 우리에게는 누가 있을까 하고 엉뚱한 생각을 해봤다. 우선 우리나라를 ‘새 고향’이라고 부를 정도로 사랑하여 수차례 방문을 했고, <한국 찬가>라는 작품마저 썼던 <25시>의 작가 “콘스탄틴 게오르규(Constantin- Virgil Gheorghiu)”가 우선 떠오르고, 본국인 프랑스보다 우리나라에서 더 인기 있다는, 그래서 신간 나올 때 마다 꼬박꼬박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최근작에서는 아예 주인공으로 한국인을 등장시키는 “베르나르 베르베르(Bernard Werber)” - 게오르규에 비해서는 좀 더 상업적인 냄새가 나긴 하지만 - 정도가 떠오른다. 물론 펄 벅의 중국 사랑과는 그 정도가 다를 수 도 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