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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 - 대유행으로 가는 어떤 계산법
배영익 지음 / 스크린셀러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요새 신문과 방송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는 뉴스가 바로 “구제역(口蹄疫)” 관련 소식일 것이다. 지난해(2010년) 11월 29일 경북 안동에서 발생한 구제역으로 2011년 1월 18일 현재까지의 피해가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살처분ㆍ매몰 대상 가축은 4,251농가, 210만4448마리에 이르고 정부 지출비용이 총 2조원이 넘는다고 하니 피해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비단 이런 경제적 손실뿐이겠는가? 자식과도 같은 소 - 어릴 적 시골 살 때 소 한 마리 한 마리에 이름을 붙여 키우시고 자식 대학 등록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소를 팔아야 할 때마다 소 얼굴을 쓰다듬으시며 눈시울을 붉히셨던 이웃집 아저씨를 떠올려보면 농민들에게는 가축 그 이상의 “가족” 그 자체였을 것이다 - 를 살처분해야 하는 농민이 흘리는 눈물이야말로 돈으로는 측정할 수 없는 그런 아픔일 것이다. 뉴스를 보면서 과연 사람에게 발생하는 그런 전염병이었다면 과연 사람도 저 소나 돼지처럼 살처분 할까 하는 생각에 절로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멀리는 지난 1918년 5,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는 “스페인 독감”이나 가까이는 지난 2009년 12월 세계적으로 208개 나라에서 사망자가 10,582명에 이르렀다는 “신종플루” 사례를 보면 전혀 가당치도 않은 생각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어차피 이러한 대규모 살처분의 명분이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해야 한다” 이라고 한다면 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괜한 걱정을 하던 차에 바로 인간에게 치명적인 전염병을 소재로 한 우리 소설을 읽게 되었다. 바로 <전염병; 대유행으로 가는 어떤 계산법(배영익 저/스크린셀러/2010년 12월)>이 바로 그 책이다. 읽은 시기가 참으로 절묘했기도 했지만, 우리 소설에서는 매우 드문 장르인 “재난 스릴러” 분야 임에도 치밀한 설정과 현실감 넘치는 묘사 덕분에 그동안 보아온 여느 외국 재난 소설이나 영화와 비교해 봐도 손색이 없는 멋진 소설이었다.
이 소설은 가까운 미래 어느 날인 8월 초순에서 11월까지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끔찍한 전염병과의 사투를 그린 이야기이다. 8월 초순 북태평양 베링해 북단에서 명태 잡이 조업하던 원양어선인 “문양호”가 그만 유빙(遊氷)과 충돌하여 어창 냉동설비가 망가지는 사고를 당한다. 갑작스런 사고로 냉동 창고를 고칠 수 없었던 터라 주변의 유빙을 대신 채우고는 항로를 바꿔 남진하는데 회항 5일 만에 울릉도 남서쪽 50킬로미터 해상에서 원인모를 이유로 침몰하게 된다. 이 사고로 두 명의 생존자를 제외한 선원 전원이 배와 함께 바다 속으로 가라앉게 된다. 그로부터 얼마 후인 8월 31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서 정체불명의 바이러스 병원체에 의한 첫 감염자가 발생한다. 질병관리본부 역학본부는 전염원인 바이러스에 대한 역학 조사에 나서지만 그저 달 모양이라고 해서 “문(Moon) 바이러스” - 후에 정식으로 “M 바이러스”로 불리운다 - 라는 명칭을 붙였을 뿐 그 전파 경로를 미처 밝히지 못하고 있던 중에 감염자는 계속 증가하고, 인체 면역계를 파괴하고 과다출혈로 사망에 이르는 치명적인 바이러스임을 알게 된다. 조사 끝에 감염 숙주이자 “장티푸스 메리” - 자신은 바이러스를 보유하면서도 건강에 이상이 없지만 타인에게 전염시키는 사람 - 가 “문양호” 의 최후 생존자 중 한 사람으로 밝혀지지만 같이 숙식한 선배와 친구의 죽음으로 자신이 바로 바이러스 숙주임을 눈치챈 그는 질병관리본부와 경찰의 눈을 피해 도주생활을 하고, 바이러스는 일산과 서울에 이어 부산에까지 전파되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그를 체포했지만 그는 사고로 그만 죽어버리고, 이제 겨우 백신을 개발했는가 싶더니 곧이어 좀 더 치명적인 변종 바이러스가 발견되면서 전염병은 전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고, 바이러스의 진원지가 바로 유빙 속에 잠들어 있던 고대의 바이러스가 지구 온난화 및 문양호 사건으로 활성화되면서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 것임이 밝혀진다. 그러나 민족 대이동으로 전국이 몸살을 앓는 “추석”과 백신 개발을 위해서는 감염자 수가 더 많아져 바이러스를 이겨내 항체를 보유한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질병관리본부 관계자의 증언 동영상이 UCC에 퍼지면서 이제 바이러스는 걷잡을 수 없이 전국으로 확대된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와 의료인들까지 전염병이 퍼지면서 혼란은 더욱 가중되고, 결국 정부는 재난 선포에까지 이르게 된다.
"대중소설은 무조건 재미있어야 한다."는 저자의 말처럼 대중 소설 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책은 읽는 내내 결코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재미와 몰입감이 상당히 뛰어난 소설이다. 첫 바이러스 전파 단계에서 마지막 장면에 이르기까지 시간 순으로 사건을 전개하는 이 책은 M 바이러스와 마지막 백신 개발의 단서가 된 “바이러스가 박테리아로 변환한다”는 설정 등 과학적인 개연성이 얼마나 있는지는 문외한인지라 판단할 수는 없지만 - 이 책을 읽은 전염병 분야 전문가가 있다면 그의 해석을 한번쯤 들어보고 싶다. -, 전염병 발발과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과정에 대한 묘사, 관련 당국인 전염병 관리본부의 대처와 백신개발 과정, 치명적인 전염병에 걸린 사람들의 심리 묘사 등등 이야기의 구성과 전개가 상당히 치밀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어 절로 빠져들게 만드는 흡입력이 꽤 대단하다. 구제역처럼 인간 살처분이라는 끔직한 장면은 당연히 없지만 감염자 수 가 많아져야 한다는 UCC에 경도되어 감염자들이 정상인들에게 피나 침을 뱉는 장면과 수용소에 격리되어 죽어 가는 환자들을 묘사한 장면 등에서는 그에 못지않은 공포와 두려움이 느껴지게 한다. 또한 숙주로 지명되어 수배를 피해 도망 다니는 첫 바이러스 보유자나 사고로 다친 자신의 아이가 전염병에 걸린 것을 알면서도 인공호흡을 하는 젊은 소방대원을 모른 척 하는 어머니, 역시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백신 개발자가 전염병에 걸릴지도 모르는 딸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자신 또한 전염병에 걸렸을 수 있음에도 피 흘리면서 전철이며 공공장소를 헤매고 다니는 장면들은 인간의 이기심이라고 몰아붙이기에는 왠지 그러한, “나라면?”이라는 질문을 절로 하게 만드는 그런 장면이었다. 최근 들어 앞에서 언급한 구제역과 역시 급속히 퍼지고 있는 “조류 독감”, “인플루엔자 에이(A) 캘리포니아(California)”로 공식 명칭을 바꿨지만 여전히 사망 소식이 들리고 있는 “신종 플루”, 어떤 항생제도 듣지 않는다는 "슈퍼 박테리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물고기와 새들의 원인모를 떼죽음 등등 “종말론”을 연상시키는 흉흉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 이 책에서 묘사하고 있는 전염병의 대유행이 결코 소설 속 허구가 아니라 언제 어디서도 일어날 수 있는 재앙이라는 생각에 오싹한 기분마저 들게 하였다.
긴장감과 스릴 넘치는 재미있는 “우리” 재난 소설을 만났다. 출판사 홍보글을 보니 드라마로 제작된다고 하는데, 과연 영상으로는 어떻게 그려낼지 궁금함과 더불어 과연 드라마가 책의 엄청난 스케일과 많은 이야기를 제대로 담아낼 지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최근 들어 “한류(韓流)” 바람을 몰고 올 정도로 크게 향상된 우리 드라마의 경쟁력을 한번 믿어보고 싶다. 벌써부터 드라마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