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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 - a True Story ㅣ 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 1
페르디난 트 폰쉬라크 지음, 김희상 옮김 / 갤리온 / 2010년 11월
평점 :
최근 끔찍한 흉악 범죄들이 뉴스 헤드라인들을 장식하면서 “사형(死刑)제도”에 대한 논란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2010년 12월 현재 사형 확정 판결을 받고 수감 중인 사형수는 59명이며, 우리나라는 1997년 이후 사형을 집행하지 않고 있어 사실상 “사형제도 페지 국가”로 분류되고 있다고 하는데 찬성론자들은 “가해자 인권도 존중돼야하지만 피해자의 인권과 정의를 위한 사형 집행은 불가피하다”는 반면 “사형이 범죄 억제에 효력이 없음에도 논란을 부추기는 것은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라는 반대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세계일보 2010년 12월 30일자 기사 인용). 개인적으로는 사형제도 폐지를 지지하는 쪽인데 그래도 무차별적인 부녀자 연쇄살인사건이나 영유아 유괴살인 사건 등 끔찍한 뉴스들을 보면 저런 인면수심(人面獸心)의 범죄자들까지 인권을 보호해야 하는가 하고 울분이 치솟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2009년 8월에 출간된 이후 무려 50주 이상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 있으며, 전 세계 25개국에 번역 출간된 유명 작품이라는 현직 독일 변호사 페르디난트 폰 쉬라크의 <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원제 Verbrechen / 갤리온 / 2010년 11월)>을 접하고는 흉악한 살인범들을 변론하는 변호사들 이야기로 생각했었다. 법정 드라마나 영화에서 종종 보듯이 “선처를 바랍니다”나 혹은 정신병자로 둔갑시켜 석방시키는 그런 류의 이야기 말이 다. 그런데 책을 읽고 나니 내가 예상했던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비록 끔찍한 살인사건이지만 범인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기막힌 사연을 들려주는, 출판사 표현대로 “범죄이야기 혹은 인생이야기”였다. 내가 이렇게 오해한 이유는 원제인 “Verbrechen"의 뜻을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범죄“라는 뜻인데 원제에 비하면 너무나도 기막힌 번역 제목을 탓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책에는 11건의 살인사건 이야기가 나온다. 사건 내용만 보면 아내의 머리를 도끼로 찍어 살해하고 토막 내는가 하면(<페너)>, 남동생을 독살하고(<첼로>), 자신들을 협박하는 사람을 살인 청부하여 잔인하게 살해하고(<타나타의 찻잔>), 몸을 팔던 창녀가 고객이 돌연사하자 자신의 애인과 결탁해 토막 내서 암매장(<행운>)하는 등 끔찍한 사건들 일색이다. 그런데 작가가 들려주는 사건 이면에는 살인을 할 수 밖에 없는 애달픈 사연들이 숨어 있다. 먼저 아내를 끔찍하게 살해한 사건에는 40 여 년 간 아내에게 끔찍한 학대 받은 노인 이야기가 이면에 깔려 있고, 고지식한 아버지에게서 독립한 두 남매가 자유를 만끽하지만 남동생이 교통사고로 뇌를 다쳐 갈수록 죽어가는 것이 안쓰러워 결국 누나는 동생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독약을 주사하고는 자신 또한 죽음의 길로 떠나고 만다. 이 소식을 들은 아버지도 결국 자살하는 비극적인 종말을 맞는다. 돌연사한 자신의 고객을 암매장한 창녀 이야기도 내막을 들여다 보면 내전에 휩쓸려 자신의 가족을 모두 잃고 자신 또한 성폭행당한 비운의 처녀가 결국 독일에까지 흘러들어와 어쩔 수 없이 매춘에 나서는, 그런 그녀를 사랑했던 남자 친구는 결국 그녀를 사랑하기에 끔찍한 사건에 가담할 수 밖에 없는 애달픈 사연이 담겨져 있다. 물론 작가는 이런 범죄가 사연이 있기 때문에 용서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다만 범죄 사실에만 집착하지 말고 그 안에 담겨진 이야기들이 이렇다고 담담한 어조로 우리에게 설명하고 있다. 그들의 범죄에 대한 단죄는 바로 법에 의해 공평하게 집행된다는 전제를 깔고 말이다.
이러한 사연들 외에도 독특하고 재미있는 사연들도 소개하는데, <정당방위>에서는 악명 높은 스킨헤드 청년 두 명이 역 앞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남자에게 칼을 꺼내 휘두르고 행패를 부리자 이 남자가 마치 쿵푸 영화에서나 볼 법한 신기한 솜씨로 둘을 살해하는 그런 사건을 이야기한다. 결국 처음부터 끝까지 묵비권을 행사해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남자는 정당방위로 풀려나게 된다. <서머타임>에서는 남자 친구를 위해 매춘을 하는 여인을 살해한 것으로 오인받던 남자가 CCTV에 찍힌 시간 때문에 꼼짝없이 범인으로 몰리지만 사실은 서머타임 으로 변경된 시간을 반영해 놓지 않은 것이 밝혀지면서 누명을 벗게 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를 연상시키는 <고슴도치>편에서는 독일로 이주한 레바논 가족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9형제의 막내로 태어난 “카림”은 고등교육을 받지 못하고 도둑질이나 마약 판매로 생계를 유지하는 형제들처럼 보잘 것 없을 걸로 여겨지지만 사실은 천재적인 두뇌로 유명 대학을 나와 주식 투자로 큰돈을 벌게 된다. 그러나 카림은 그 사실을 철저히 감추고 살아가는데, 어느 날 큰 형이 강도짓을 저질러 체포되자 큰 형의 알리바이에 대해 교묘한 거짓진술을 하여 형을 결국 풀려나게 만든다. 마지막 편인 <에티오피아 남자> 편이 어쩌면 가장 감동적이라 할 수 있는데, 젊은 시절 온갖 범죄를 저지르던 한 남자가 에티오피아에서 진정한 삶과 사랑을 찾았지만 추방당하고 다시 에티오피아로 돌아가기 위해 은행을 터는 슬픈 사연을 들려준다.
이처럼 한편 한편을 독립시켜 소설로 구성해도 좋을 정도로 기막히고 애달픈 이야기들을 소개하고 있는 이 책은 내용들이 꽤나 재미있어 금세 읽게 만드는 몰입도가 꽤나 강한 책이다. 내가 과문(寡聞)한 탓인지 앞에서 언급한 사형제도 논란처럼 현행 법체계의 모순점들에 대한 작가의 성찰이나 고민을 엿볼 수 는 없었다. 그러나 책에 담겨있는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워 읽어볼 만한 그런 책이다. 34분마다 살인사건이 발생한다는 미국 -범죄의 종류별 발생 빈도를 시간 단위로 분석한 것으로, 범죄가 얼마나 자주 되풀이되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종류별 사건의 수를 시간으로 나눈 수치를 “범죄시계[犯罪時計]”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런데 저 수치는 12 년 전인 1999년 자료라 지금은 더 빨라졌을 수도, 혹은 늦어졌을 수도 있다. - 처럼은 아니겠지만 여기저기서 수많은 범죄들이 벌어지고 있을 오늘, 세상에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는, 사연 하나 하나 듣다 보면 이유 없는 사람은 절대 없다는 - 최근에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는 이른바 “묻지마 살인”이 심심찮게 뉴스에 오르내리는 것을 보면 꼭 사연이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것처럼 설사 사연이 있다고 하더라도 저지른 죄만큼은 법 원칙에 입각하여 엄히 단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처럼 한번쯤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필요는 있지 않을까? 혹은 억울한 누명을 쓰는 경우도,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애달픈 사연도 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