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소담 한국 현대 소설 1
이혜린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유명 포털 사이트 뉴스 면을 보면 하루에도 수십 수백 건의 연예 관련 기사들이 끊임없이 올라온다. 톱스타 누구와 누가 사귄다더라, 오랫동안 쉬고 나오더니 훨씬 예뻐진 여가수 얼굴이 알고 보니 수억을 들여 완전 개보수(?)한 얼굴이라더라, 엄친아로 유명한 아이돌 남자 가수가 사실은 강남 유명 룸싸롱에서 살다시피 한다더라 등등 일명 “카더라” 통신이라 불리기도 하고 기사라고 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고 해서 “찌라시”라고도 불리우기도 하는 이 연예 기사들, 한심하다고 혀를 쯧쯧 차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 이름이라도 보일라 치면 어김없이 마우스 버튼을 클릭하고 있는 나를 보면서 깜짝 깜짝 놀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인터넷 뉴스를 “도배”하다 시피 하는 이런 기사들을 쓰는 사람들은 과연 누굴까? 그 어느 전쟁보다 더 치열하다는 연예계 뉴스 전쟁을 치르는 그들의 하루는 과연 어떠할까? 최근 연예인들 뒷담화만큼이나 재미있고 흥미진진할 것 같은 연예부 기자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소설 책을 만났다. 자신이 실제 몸담았던 스포츠 신문 연예 기자 생활을 적나라하게 담아낸 이혜린 작가의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소담출판사/2010년 12월)>이 바로 그 책이다.  

  남부럽지 않은 외모와 학벌, 그리고 부자 부모님 밑에서 부족함 없이 자란 대학 졸업반 “이라희”는 바늘구멍보다 어렵다는 취업문을 뚫고 신생 스포츠 신문사에 취직하게 된다. 드디어 출근 첫날, 이런 이런 일정 기간을 거치면 정식 사원으로 배치받는 “수습사원”이 아닌 정규직 전환이 보장 안되는 임시직인 “인턴사원”으로 채용된 것이 아닌가. 거기에 변변한 책상도 없이 자신의 “사수”이자 슈렉과 비슷하게 생긴 과장 옆 쓰레기통이 자신의 자리이고, 첫날부터 말이 많다고 함부로 지껄이면 죽는다라고 협박하는 무식한 상사라니 라희는 바로 직장을 그만둬 버리겠다고 결심한다. 그러나 아무 문제없는 줄만 알았던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셨다는, 그래서 네가 우리집 가장이라는 어머니의 청천벽력같은 말을 듣고는 라희는 그만 꼬리를 바짝 내리고 자신이 살고 있는 오피스텔 월세 70만원에도 못 미치는 월급 50만원 짜리 신문사 인턴 자리에 감지덕지하기로 결심하고는 열심히 일을 하게 된다. 그러나 진흙탕보다 더 더럽고 치사한 연예부 기자 업무는 결코 녹록치가 않아 온갖 수모를 당하여 하루하루 버텨낸다. 자신의 사수였던 슈렉 과장이 부장과의 트러블로 회사를 그만두자 그 자리를 꿰차게 된 라희는 부장의 ‘체면’을 위해 연예인을 깎아내리는 기사를 연작으로 쓰고, “단독 기사”라는 엄명에 매니저들에게 기사를 구걸하기도 하고, 부장의 석사 학위를 위한 설문을 자신이 직접 후배들에게 돌리기도 하며, 부장 사모님이 하는 식당에 연예인들 사인회를 섭외하기도 하는 등 온갖 일들을 겪어내면서 어느새 어엿한 연예부 기자로 자리잡게 된다. 그러나 신생 신문사였는지라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불어닥치면서 부장을 몰아내려는 국장과 연예부 선배 기자들의 쿠테타에 가담하게 된 라희는 부장의 온갖 비리를 국장에게 일러바치지만, 엉뚱하게도 국장이 밀려나고, 부장이 국장 자리를 차지하면서 주동자를 밝히라는 부장의 협박에 꿋꿋이 버텨낸다. 드디어 입사한지 1년이 된 라희는 정식 사원이 되지 못하고 다시 한번 인턴사원으로 근무하라는 제의에 미련없이 회사를 그만두고 자신만의 보금자리인 오피스텔로 돌아온다. “넌 열정이 없다”라는 신임 국장의 질책에 속으로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라고 되받아치면서 말이다.

   작가의 실제 경험이 오롯이 녹아있어서일까? 그동안 연예계를 다룬 그 어느 탐사보도나 기사들보다도 더 현실감있고 생생하게 느껴진다. 이 책을 읽다 보니 메이저 신문이나 3류 인터넷 신문사들의 연예 기사들이 왜 그렇게 판박이일 수 밖에 없는지, 드라마나 공연이 시작도 하기 전에 벌써 시청소감이나 관람 후기들이 인터넷에 실시간으로 올라올 수 밖에 없는지, 한 유명 연예인에 대한 비하나 험담 기사를 기자들이 그렇게 집요하게 써내고 있는지, 연예인들이 좋던 싫던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 순위에 왜 그렇게 목을 매달고 있는지에 대한 이유를 저절로 알게 된다. 이처럼 온갖 추한 연예계 뒷모습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지만 작가 특유의 경쾌하고 재치있는 이야기 전개 때문인지 눈살을 찌푸리기 보다는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는 재미가 느껴진다. 작품 속 작가의 분신인 “이라희”는 결국 그만둬 버렸지만 - 아마 훌훌 털어버리고 싶은 작가의 바램을 라희에게 투사한 것으로 보인다 - 아직 종사하고 있다는 작가가 자신이 몸 담고 있는 곳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묘사해도 문제가 없을지 괜한 걱정이 들 정도 사실적인 묘사가 뛰어난 이 책은 겉으로는 욕을 하면서도 포털 사이트의 연예 기사에 저절로 손이 가고야 마는 나와 같은 “속물(俗物)” 들이라면 흥미롭고 재미있을 그런 책이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저 막연하게 연예계를 동경하고 있을 사회 초년생들의 환상을 멋지게 깨뜨려주는,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드는 그런 책으로 , 그리고 수없이 올라오고 사라지는 연예 기사들 행간에 숨어 있는 온갖 사연들을 알고 싶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길 권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