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여단 샘터 외국소설선 3
존 스칼지 지음, 이수현 옮김 / 샘터사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판타지, 무협, 추리, 공포 등 장르소설이라면 가리지 않고 즐겨 읽는 나에게 있어 유독 부담스러운 장르는 바로 “SF(Science Fiction)"소설이다. 특히 최근 들어 활성화 조짐이 보이고 있는 우리나라나 우리보다 장르 역사가 더 오래되어 이미 다양한 작품들이 출간되어 있는 이웃 일본 작가 작품 - 재밌게 읽은 다나카 요시키의 <은하영웅전설>은 “스페이스오페라(Space Opera)"라고 별도의 장르로 불리우며, 과학적 배경보다는 만화와 같은 작가의 상상력에 의존하여 거대한 우주 공간을 배경으로 주인공의 용맹한 혹은 황당한 스토리를 펼쳐가는 이야기로 정통파 SF 팬들에게는 이단으로 취급받는 그런 장르이기도 하다 - 들 보다는 소위 정통파 SF소설이라 불리우는 서양 작가들 작품들은 선뜻 읽기가 영 부담스러운 그런 책들이다. 물론 그렇다고 아주 경원시하는 것은 아니어서 프랭크 허버트의 <듄>, 로저 젤라즈니의 <신들의 사회>, 아서 클라크의 <라마와의 랑데부> 등 읽은 책들도 몇 권 있지만 그 책들도 읽기 전에 몇 번을 망설였고, 읽고 나서야 의외(!)로 재밌다는 것을 알게 된 그런 작품들이고, 아직도 내 책장에는 다른 분들의 추천으로, 또는 이벤트나 할인행사로 구입해놓고는 읽지 않고 있는 유명 SF소설이 몇 권 된다. 분명히 좋아할 만한 점들이 많은 장르임에도 왜 이렇게 부담스러울까? 아마도 문과 출신의 한계인 과학적인 개연성에 대한 이해 부족, 그리고 재미 위주의 다른 장르와는 달리 미래를 배경으로 하지만 현대 사회, 문화, 정치, 종교에 대한 모순들을 투영한 결코 가볍지 않은 묵직한 주제의식에 대해 부담감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노인의 전쟁>으로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다는 신예작가 존 스칼지의 “유령여단(샘터, 2010년 7월)”을 읽기 시작하면서도 어려운 설정과 주제 때문에 중도에 읽다가 포기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먼저 앞섰었다, 그런데 막상 읽기 시작하니 책장 넘어가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어떻게 결말이 날지 궁금해서 책을 놓을 수 없는, SF소설이 이렇게 뛰어난 재미와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소중한 즐거운 시간이었다.   

  책의 시대적 배경은 인류가 우주로 뛰쳐나가 외계 종족들과 "부동산"을 놓고 동맹과 결전을 반복하는 먼 미래이다. 지구를 모태로 하여 우주의 자원을 채취하고 식민지를 건설하기 위해 만들어진 "우주개척연맹"은 외계 종족과의 전쟁을 담당하는 일종의 군대인 ‘우주개척방위군(CDF)'를 창설한다. 그러나 지구와는 다른 우주환경에서의 전투는 인류의 신체적 특성상 매우 불리하기에  우주개척 방위군은 별도의 군인을 ‘만들어' 내기에 이른다.  75세 이상의 노인들의 의식을 DNA를 조작하여 만들어낸 젊은 육체에 전이하여 정규 군대를 조직하고 - 전작인 <노인의 전쟁>이 바로 이 군인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 한편으로 이미 사망한 인간들의 DNA와 동물, 외계 종족의 DNA를 혼합하여 인간을 뛰어넘는 특수한 신체 능력과 기술을 가진  '인조인간'으로 구성된 부대, 즉 "유령여단"이라는 일종의 특수부대를 운영한다. 의식 전이,  뇌도우미,  신체 생성 연구를 담당하던 과학자 샤를 부탱은 자신이 자살한 것으로 위장하고  외계종족에게 망명하여 르레이, 에네샤, 오빈 외계종족 연합군과 우주개척방위군과의 전쟁을 일으킨다.  부탱의 배신을 알아낸 우주개척방위군은 부탱의 연구실을 조사하던 중 부탱이 자신의 기억을 프로그램 형식으로 저장해놓은 사실을 알게 되고, 그의 배신 이유를 밝혀내기 위해 그의 기억을 DNA 조작을 통해 만들어낸 인공 인간에 이식을 하지만 부탱의 경험을 공유하지 못하고 단지 기억만 이식한 상태인지라 기억을 복원해내는 데 실패하고 한다. 결국 부탱의 기억을 이식한 "재러드 디랙"은 "유령여단"에 합류하여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어느 날 부탱의 경험과 유사한 경험을 하게 된 재러드는 부탱의 기억이 하나 둘씩 떠오르게 되고 방위군은 기억을 촉발하기 위해 부탱의 가족들이 죽은 곳으로 재러드를 보내고, 그 곳에서 부탱의 기억을 완전히 복원해낸 재러드는 부탱이 인류를 배신한 이유를 이해하게 된다. 유령여단을 태운 전함이 계속 실종되는 사건을 조사하던 중 부탱이 숨어있는 곳을 알아낸 방위군은 그를 체포하기 위해 재러드와 유령여단을 파견하지만, 이미 대비하고 있던 부탱에 의해 그만 재러드는 붙잡히게 된다. 자신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부탱과 마주선 재러드는 그에게서 전 우주적 연합인 “콘클라베”가 전쟁만을 일삼고 있는 우주개척연맹을 징벌하기 위해 군대를 일으킬 거라는 사실과 인류의 종말을 막기 위해 방위군을 없애겠다는 부탱의 계획을 듣게 된다. 재러드는 복종하기 위해 만들어진 인간 병기로서, 그리고 부탱의 기억을 재생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지만 “인간”으로서 마지막 선택을 하게 된다.

  전편인 <노인의 전쟁>을 읽지 않아 읽으면서 전체 스토리를 이해할 수 있을까 걱정을 했지만 전편과는 독립적인 스토리 전개로 읽는데 전혀 무리가 없었다 - 전편의 주인공인 "존 페리"는 대화 속에서 몇 몇 언급되고 마지막 결말에 이르러 재러드의 상사인 세이건 중위와 연관된 인물로 묘사된다-. 역시 과학 소설 인만큼 다양한 과학적 설정이 많이 등장하는 데, 일종의 생체 컴퓨터라 할 수 있는 “뇌 도우미”와 군인들의 뇌파를 공유하는 일종의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인 "통합", 그리고 상처를 치유하고 육체능력을 극대화하는 장치이자 결말에서 치명적인 무기로까지 작동되는 인공 피인 "똑똑한 피", 그리고 우주개척연맹과 전쟁을 벌이는 외계종족인 르레이, 에네샤, 오빈에 대한 설정들은 그 독특함과 기발한 설정이 과학소설에서만 맛볼 수 있는 그런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   작가가 담아내고자 했던 주제 또한 결코 가볍지가 않은 데, 재러드가 유령여단 초기 자신처럼 만들어진 생명체인 "프랑켄슈타인"을 읽고 충격을 받은 장면, 부탱의 기억이 복원되기 시작하면서, 부탱의 딸인 "조이"를 그리워하며 괴로워하는 장면, 인간의 특징으로 "유머"와 "선택"으로 설명하는 점,  부탱이 가담하고 있던 외계종족 오빈의 기원과 그들이 갖고자 했던 "의식"의 중요성에 대한 설명들, 오히려 인간들보다 더 영혼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리고 마침내 영예로운 자살을 택하는 인간보다 더 인간 같은 외계종족 포로 카이넨, 그저 소모품으로 만들어진 존재임에도 자신 또한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임을 깨닫고 마침내 내리게 되는 재러드의 최종 선택 - 어쩌면 이 소설의 백미이자 주제의식을 극명하게 드러낸 재러드의 선택은 이렇게 슬프게 끝내지 말고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해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작가에 대한 원망이 들 정도로 가슴이 찡해지는 그런 감동이 느껴졌다-  등 작가는 다양한 인물들과 에피소드를 통해 우리에게 인간다움의 가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역자는 존 스칼지의 “노인의 우주”3부작에서 2부인 이 책을 가장 뛰어나다고 말하는데, 판단에 대한 동의 여부는 이 시리즈의 사실상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존 페리"가 등장한다는, 그리고 2부와는 전혀 다른 전개방식이라는 1부 <노인의 전쟁>과  3부 <마지막 행성>까지 다 읽고 나서야 가능할 것 같다.  470 여 페이지에 달하는 만만치 않은 분량 임에도 전혀 지루함 없이 단숨에 읽히는 몰입감과 감동을 보여준 이 책 덕분에 SF 소설에 대한 부담감을 한결 덜어낼 수 있을 것 같다.  이  노인의 우주 3부작을 끝내고 난 후에는 책장에서 먼지만 쌓이고 있던 로버트 하인라인의 <낯선 땅 이방인(스트레인저)>와 <스타쉽 트루퍼스>, 조 홀드먼의 <영원한 전쟁>, 아서 C 클라크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를 읽는 데 전혀 망설임을 없어지기를 기대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