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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전 6 - 완결
이종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어린 시절 동화책 속에서나 또는 할머니 무릎을 베고 듣던 귀신 이야기들이 이제는 스토리텔링에 있어 가장 각광받는 소재로 부각되면서, 만화, 소설,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한 플랫폼으로 이식되면서 이제는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되었다. 21세기 들어 새롭게 해석되고 각색되면서 가장 인기 있는 문화 아이콘으로 등장한 “뱀파이어”라는 해외 사례뿐만 아니라, 여름철 납량특집의 단골 소재로 수 십 차례 드라마 및 영화로 제작되었고 올 여름에도 어김없이 드라마로 제작되어 인기를 끌고 있는 우리에게는 뱀파이어만큼 익숙한 귀신인 “구미호” 등 그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종교적인 힘이나 주술로 귀신과 악마를 물리치는 “퇴마(退魔)소설”은 각종 악마와 귀신에 대한 신화와 전설상의 기원, 기기묘묘한 술법들, 무서우면서도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사연과 사건들 때문에 이미 해외에서는 두터운 매니아 층을 형성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인터넷 장르 소설의 효시로 수백만 독자들이 읽은 베스트셀러이자 게임, 영화로도 제작되어 큰 화제를 낳았던 이우혁의 "퇴마록”이후로 한 때 퇴마 소설들이 붐을 이루었지만, 일본 마코토 오기노의 만화 “공작왕”과 “퇴마록”의 아류 수준의 작품들이 대부분이어서 - 사실 장르 애호가인 나로써도 만화작가로 유명한 윤인완의 “아일랜드”나 아직 완간이 되지 않고 있는 문성실의 “무(巫)” 정도 외에는 딱히 추천할 만한 책이 없다- 크게 인기를 끌지 못하고 겨우 명맥만 유지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그래서 "분신사바", "이프"등 이미 이미 여러 공포 소설들을 출간하고 공포 문학 작가들의 모임인 ‘매드클럽’을 운영하는 등 국내 공포문학 저변을 넓히는데 기여하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는 이종호 작가의 퇴마소설인 “귀신전” 시리즈의 마지막 권인 “귀신전 6권(랜덤하우스코리아,2010년 8월)”은 척박한 퇴마소설 장르에서 그 명맥을 훌륭히 이어나갈 뿐 아니라, 앞으로 새로운 도약의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는 일종의 시금석으로 가치 있는 책이라 평할 수 있을 것이다.
시리즈 마지막 권인 6권에서는 그동안 인간들을 공격해온 사령자, 자귀 등의 저승의 존재들이 본격적으로 현실세계에 나타나 인간들을 공격하고, 퇴마사들이 드디어 조직적으로 그들에게 대항하면서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고, 이 환란의 근원이었던 망각의 강 레테로 향한다. 사실 이 시리즈의 도입부였던 1,2권을 읽고 중반은 생략한 채 결말인 6권을 읽게 되어 책 읽기 시작하면서는 사건이 어떻게 전개되어 이런 결말에 치닫게 되었는지, 몇몇 등장인물들은 생소하기까지 했지만 읽어나가면서 주인공들의 입을 통해 듣게 되는 사건의 전말들은 사건의 배경과 스토리를 이해하는 데 큰 무리 없게 만들어준다. 이 책이 다른 퇴마소설들과 차별화되는 특징은 바로 세기말적 종말을 연상시키는 어둡고 암울한 이미지를 꼽을 수 있다. 현실세계에 강림하여 우리가 살고 있는 서울 도심을 활보하는 각종 저승의 귀물들과 악마들, 그들에게 사냥당하며 죽어가는 일반 시민들의 공포와 절망들이 머리 속에 확연한 이미지로 떠올릴 수 있을 만큼 그 묘사가 세밀하고 현실감이 느껴진다. 특히 “안개보다는 조금 굵고 이슬비보다는 가는 비”라는 의미의 순수 우리말인 “는개”를 수 천년간 쌓아올린 인간의 문명을 사라지게 만드는 저승의 비로 설정한 장면은 그 어느 소설에서도 볼 수 없는 독창적이고 기발한 이미지를 제공한다. 또한 귀물들과 벌이는 퇴마 액션 장면들이 완결편에 이르러 더욱 그 규모가 커지고 화려해진 액션이 곳곳에 등장하여 3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책을 단숨에 읽게 만들 정도로 흥미와 재미를 불러일으킨다. 물론 이 책에 등장하는 주술이나 술법들은 퇴마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그리 새로울 것은 없지만 - 여러 술법 중 “홀리건(Holy Gun)"과 자동차에 성수를 뿌려 가속을 하게 되면 그 영적 능력이 배가 되는 장면들은 독창적이다 - 1, 2권에서도 보여준 것처럼 새까맣게 밀려오는 귀물들과 퇴마사들의 전투 장면만큼은 여느 소설에서 느낄 수 없는 박진감과 재미가 느껴지는 탁월한 묘사가 압권이다. 마지막 권의 결말은 퇴마사들의 억지스런 승리나 아니면 악마들의 승리로 인한 인류의 종말이라는 명확한 결론이 아닌 뫼비우스 띠를 연상케 하는 다소 모호하고 개운치 않은 결말인데, 멀티엔딩으로써 독자들의 상상을 자극하고, 또 다른 시리즈로의 연계를 위한 작가의 의도였는지, 아니면 시리즈를 서둘러 마무리할 수 밖에 없었던 작가의 고충인지는 명확하지가 않아 아쉬웠다.
귀신전은 이렇게 기대와 아쉬움 속에 만 2년여만에 그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아마도 이 귀신전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또 다른 이야기들을 선보이겠다는 “작가 후기”의 말대로 귀신전은 여기에서 끝을 맺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주인공들과 이야기로 조만간에 우리에게 다시 선보이게 될 것 같다. 귀신전은 그 성취면에서나 재미면에서 최고라 평하기에는 다소 부족한 미완의 작품이지만 그동안 계속 위축되어 온 공포 소설 장르에서 그 명맥을 훌륭히 잇고, 외면해왔던 독자들로 하여금 공포, 퇴마소설 장르에 대한 흥미와 재미를 새롭게 알게 하는 작품으로서의 가치만큼은 어느 작품도 따라올 수 없는 그런 작품으로 평가하고 싶다. 척박한 우리나라 장르소설 현실에서 어쩌면 외롭고 힘든 여정이 될 지도 모르는 이종호 작가의 노력들이 결실을 맺어 좀 더 다양하고 수준 높은 성취들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