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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그리움 - 자전거 타고 대한민국 멀리 던지기
이종환 지음 / 하늘아래 / 2010년 7월
평점 :
작년에 새로 집을 이사하면서 자전거를 하나 장만하였다. 시청 및 종합운동장 공원이 도보로 10분 거리인데다 차량 통행량이 많지 않은 한적한 곳이라 운동도 할 겸 장만한 것이다. 처음엔 주로 근처 공원 위주로 짧은 거리를 주행하다가 자전거 타는 데 재미가 붙고 나서는 좀 욕심을 내서 주말에는 왕복 40~50km 3시간이 넘는 거리를 주행하곤 했다. 시원한 바람을 온 몸으로 느끼며 주변 경치와 함께 달리는 그 맛이란 자동차로 그저 바쁘게 다녀오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즐거움과 재미를 안겨 주었다. 점점 자신감이 붙은 나는 올해 나와의 약속으로 집(천안)에서 왕복 200 km 내외 거리인 “대천해수욕장”까지 자전거 여행이라는 야심찬(?) 계획을 수립하였는데, 바쁜 일상에, 무더위에 이래저래 핑계 거리만 찾으면서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다. 자주 들르는 자전거 동호회 카페에 보면 여름방학을 맞아 자전거로 전국 일주를 하는 대학생들의 글을 종종 보면서 참 그들의 젊음과 열정이 부럽다는 생각을 하면서 괜히 중년이 된 내 나이 탓을 하곤 한다. 그런데 최근에 50이 넘는 나이에도 자전거로 전국일주를 훌륭히 해낸 중견 문학 비평가이자 에세이스트 이종환의 “마침내 그리움(하늘아래, 2010년 8월)”을 읽고는 그저 삶의 바쁨과 피곤함에, 나이 탓에 부러워만 하고 시도조차 하지 않은 내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과 도전은 나이가 아니라 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책은 작가가 10월 12일 서울에서 시작하여 11월 8일 청평에 이르기까지 한 달여 기간 동안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일주한 자전거 여행기이다. 어릴 적 아버지 자전거로 처음 타기 시작한 작가는 서울로 이사와 자전거 탈 기회가 좀처럼 없었다가 어느새 50이 넘은 어른이 된 후에 다시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다. 여름 내내 신나게 탔지만 가을이 되면서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답답해하면서 더는 다람쥐처럼 살 수 가 없으며, 더는 이렇게 밍숭맹숭하게 살 수 가 없다는 생각에, 좀 더 멀리 멀리 굴려봐야겠다는 생각에 드디어 10월 중순 후배와 함께 자전거 전국 일주 길에 나선다. 설레임으로 시작했지만 날짜가 지나갈 수 록 힘들고 지쳐간다. 함께 떠난 후배가 다리부상으로 중도에서 돌아가면서 홀로 여행길에 오르게 되고, 자전거 여행의 가장 큰 적이라는 비를 피하기 위해 수 없이 자전거를 멈춰 세워야 했고, 자동차 위주의 도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위험한 갓길 주행을 하게 되고, 어두운 터널에서 무시무시한 속도로 스쳐지나가는 트럭들의 횡포, 자전거 도로라면서도 오히려 허술한 도로 처리로 위험천만한 상황들을 겪기도 하고 아직 한번도 가보지 못한 제주도 대신 오르게 된 울릉도에서도 기상악화로 며칠 발이 묶이는 등 많은 우여곡절들을 겪는다. 그러나 작가는 결코 여행을 포기하지 않고 작가가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길과 자전거와 마음의 풍경, 나름대로 독자적이지만 서로 겹치며, 때론 겹치는 정도를 넘어 끌어안거나 밀어내기도 하는, 그리하여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는 풍경, 혹은 함몰하는 풍경을 사진들과 함께 마치 일기 쓰듯이 일자별로 빠짐없이 기록해 나간다. 작가는 자전거 타는 것이 일상의 정직성을 가능한 한 끝까지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며 차를 몰 때와는 팔 다리는 물론 마음까지 동원해야 균형을 잡을 수 있으며, 한 눈 팔지 않고 온몸으로, 온 마음으로 몰아야 쓰러지지 않는 것에서 다르다고 말한다. 또한 시인 김수영이 ‘머리나 심정으로가 아니라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일’이라고 시 쓰는 것에 대해 한 말을 인용하며 ‘자전거 타기’도 정확히 동일선상에 있으며, 그런 점에서 자전거 타기 역시 시를 쓰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즉, 이 기행문은 그에게 있어 시를 쓰는 그런 작업과 다름이 아니라는 이야기인 셈이다. 또한 그는 자신이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또는 사랑이나 어떤 신념이 있어서 떠나온 것이 아니라 자전거라는 바퀴를 타고 굴러왔을 뿐이며, 바퀴가 구른다는 사실이, 내 힘으로 그 바퀴를 굴려 어딘가로 갈 수 있다는 사실이 경이로워 떠나왔다고 이 여행의 목적을 독백하고 있다. 결국 한 달여의 긴 여행을 마치고 일상으로 귀환하면서 그는 불야성처럼 반짝이는 네온의 거리가 자신의 삶의 터전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면서 인공의 빛 속에서 부나비처럼 움직여야 하는 것이며, 그것이 자신의 운명이고, 길이며, 안고 가야 할 그리움이라고 말하며 끝을 맺는다.
서울에서부터 서해안을 따라 전라도 영암까지, 또 남해안을 따라 포항과 울릉도를 거쳐 주문진, 홍천, 청평까지 이어진 작가의 자전거 여행기를 읽고 나니 나도 왠지 작가와 함께 페달을 밟아 여행을 한 것처럼 피곤함과 함께 긴 여행 후 느끼는 흥분과 여운이 느껴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작가가 말한 “때때로 나는 이제 자전거의 몸이다. 자전거 자체인 몸, 의식 자체인 자전거”라는 말은 비록 작가처럼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세 시간 넘게 자전거를 타다 길 위에 내려서서 느꼈던 감각들, 즉 엉덩이의 아픔이 가시지 않아 아직도 묵직한 안장 위에 앉아 있는 듯한 느낌, 핸들을 오래 잡고 있던 팔에는 아직도 자전거의 울림이 남아있어 계속 떨리는 그런 느낌, 발을 내딛으면 바퀴가 신발에서 나와 쭉 미끄러져갈 것 같은 그런 느낌, 자전거가 어느새 내 몸이 되어버린 그런 경험이 떠올라 절로 공감을 하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에 대해 시샘까지 느껴질 정도로 참 많은 것이 부러웠다. 나보다 더 지긋한 나이에 젊은 사람들도 해내기 어렵다는 자전거 전국일주를 해낸 그의 열정이 부러웠고, 또한 그 여행을 그저 고생스러움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명상 여행처럼 자신를 관조해보는 의미있는 여행으로 만든 것이 부러웠고, 이렇게 멋진 사진과 글로 담아낸 그의 글 솜씨에도 괜한 시샘까지 느껴졌다.
이번 주말에는 한동안 타지 않은 자전거를 꺼내어 타이어에 바람도 넣고 삐끄덕 소리를 내는 체인과 구동기어에 기름칠을 꼼꼼히 해야겠다. 작가처럼 긴 여행은 할 순 없겠지만 가까운 공원이라도 자전거를 끌고 나가봐야겠다. 그래서 온 몸으로 바람을 맞는 그런 상쾌함과 즐거움을 다시 한번 느껴봐야겠다. 그리고 그저 막연히 가고 싶다고만 생각해오던 자전거 여행을 이제는 진지하게 계획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