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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틀라잇 - 패러디 트와일라잇
하버드 램푼 지음, 변용란 옮김 / 바다출판사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21세기 들어 소설, 방송, 영화계 최고의 아이콘은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다는 “뱀파이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인기의 시발점은 역시 뱀파이어와 인간의 사랑이야기를 그린 “트와일라잇”의 영향 때문이라 할 수 있는데, 원작 소설도 1편이 출간되자마자 “해리포터” 완결편을 끌어내리고 각종 서점 1위를 차지하더니, 영화로 각색된 1편이 전 세계에서 3억 8000만 달러를 거둬들였고, 2편은 “뉴문”도 개봉 2주 만에 제작비의 다섯배를 벌어들이는 대 흥행 실적을 거두었다고 한다. 올 7월에 개봉한 3편 “이클립스”도 1,2편만큼은 아니지만 개봉하자마자 북미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차지하고는 롱런 태세를 갖추고 있다니 그 인기가 가히 짐작할 만하다. 서양 귀신의 대명사이자 공포 영화의 단골 소재로 공포와 금기의 존재이기만 했던 뱀파이어 이야기가 이렇게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트와일라잇에 등장하는 뱀파이어들은 우리가 그동안 공포영화를 통해서 접해온 날카로운 송곳니와 붉은 눈, 피를 갈구하는 끔찍한 모습이 아니라 조각같은 외모와 초능력, 그리고 인간 여인을 지키려는 지고지순한 사랑이라는, 어릴 적 순정만화나 하이틴 로맨스에서나 등장할 법한 그런 멋있고 매력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심지어 나 같은 남자가 봐도 참 멋있다 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이니 뱀파이어의 아름다움과 위험한 매력에 여성들이 열광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트와일라잇이 대 흥행을 거두자 여기저기서 아류작들이 쏟아져 나왔다. 소재도 뱀파이어에서 타락천사, 늑대인간 등으로 다양해졌고, 만화, 애니메이션, TV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져, 케이블 TV 영화채널을 보다보면 하루에도 몇 편씩 만나볼 수 있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여기 트와일라잇을 소재로 한 또 하나의 책을 만났다. 이번에는 트와일라잇에게 바치는 오마주나 또는 그 인기에 편승하여 제작되는 고만고만한 아류작이 아니라 아예 작정하고 조롱하고 비꼬고 우스꽝스럽게 만들어버린 “패러디” 소설이다.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훨씬 전인 1876년 하버드 대학 재학생들이 만들었다는 서양에서 가장 오래된 유머 잡지 “하버드 램푼 Harvard Lampoon"에서 만들었다는"나이틀라잇 Nightlight: A Parody(바다출판사, 2010년 7월)”이 바로 그 책이다.
책은 패러디 소설답게 주인공 이름부터 벨라 스완은 벨 구스로, 에드워드 컬렌은 에드워트 멀렌으로 개명을 한다. 스토리 전개는 원작의 기본적인 사건 전개를 그대로 따르고 있지만 사건은 절로 실소가 나올 정도로 매번 비비꼬이고 어처구니없이 변형된다. 원작처럼 벨은 엄마의 재혼으로 피닉스를 떠나 아버지가 있는 오리건 주, 스위치블레이드로 전학을 온다. 원작처럼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의 소녀가 아니라 툭하면 넘어지고 손대면 망가뜨리고, 모든 남자들이 자신에게 반해버리며 심지어 세무서와 전기회사에서도 자신에게 연애편지를 보내온다고 생각하는 과대망상증 환자에, 댄스 파티에서 무대에 올라서기만 하면 댄스장에서 폭동이 일어나버리는 참 어처구니 없는 소녀이다. 역시 원작처럼 아버지에게 초대형 트럭을 선물받아 등교를 한다. 전학 온 첫날부터 원작을 연상시키는 멋진 외모의 에드워트 멀렌을 만난 벨은 여학생들과 절대 데이트 하는 법이 없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자기가 그의 첫 여자친구가 될 것을 확신하며 흐뭇해한다. 그를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하면서 그에게서 왠지 모를 이상한 점들을 발견하고는 그가 뱀파이어라는 결론을 내린다. 동아리 모집에서 에드워트가 만든 기괴한 클럽 ‘가격 탄력성 클럽’에 가입한 벨은 쇼핑 클럽 친구들과 시내에 나갔다가 우연히 에드워트의 도움을 받으면서 서로 정식으로 사귀게 된다. 기상천외한 클럽 활동에 열중하던 중, 처음 친구를 집에 초대한다는 에드워트의 집에 가서 성형외과 의사라는 아버지와 별난 어머니를 소개받고 온통 유리로 지어진 대저택을 보게 되고는 그가 뱀파이어라는 확신은 더욱 굳어진다. 에드워트가 자신의 목덜미를 깨물어 자신을 뱀파이어로 만들어주기를 바라며 늦은 밤 공동묘지, 즉 아예 자리를 펼치지만 어찌 에드워트는 자신의 집처럼 익숙한 분위기였을 공동묘지에서 귀신이 나올까 덜덜 떠는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 시간이 지나고 깨물 생각을 안하던 찰나, 드디어 이야기는 원작의 틀을 벗어나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옆으로 빠져 산으로 가버린다. 공동 묘지에서 검은 망토를 입고 긴 송곳니를 드러낸 전형적인 뱀파이어가 짜짠 하고 깜짝 등장하고 만 것이다! 이때부터 이야기는 갈수록 허무맹랑 황당 엽기로 치닫게 된다.
패러디 소설의 재미는 원작을 어떻게 비비꼬았는지를 하나하나 확인해보는 것 일텐데, 아쉽게도 트와일라잇은 원작소설을 읽진 못했고 영화만 봐서 세세하게 어떤 부분이 변형되고 비틀어졌는지는 확인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원작을 토대로 한 영화와 비교해 봐도 그 패러디 정도가 어떤지 쉽게 짐작이 되는 것을 보면 원작을 읽은 독자들이라면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킥킥대는 웃음을 참지 못하거나, 아니면 마치 다비드 조각상처럼 아름답고 멋있는, 소녀들 뿐만 아니라 결혼한 아주머니들도 한 눈에 반해버렸다는 미남자 에드워드 켈렌을 이렇게 망쳐놓다니 하는 분노에 일찌감치 책을 바닥에 집어던졌을 수도 모르겠다. 책은 원작을 보지 못한 내가 읽어봐도 마치 유머 콩트를 한편 보는 것처럼 황당하면서도 재미있다. 다만 종종 서양 시트콤을 보면 도대체 왜 저렇게 웃는 거지 하고 이해가 안되던 것처럼 서양인들의 웃음 코드를 기반으로 한 이 책의 유머가 이해가 안되서 웃기다는 생각보다는 참 유치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가 없었다. 이 책이 트와일라잇을 좋아하는 팬들에게 또 다른 즐거움이 될지, 아니면 원작의 인기에 편승하는 불경스러운 책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을 읽는 짧은 시간 동안 황당한 유머에 눈살을 찌푸리다가도 천연덕스럽게 시침을 떼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작가의 유머와 재치에 절로 웃음이 나게 하는 유쾌하고 즐거운 책 임에는 분명하다 할 것이다. 순서가 거꾸로 되긴 했지만 괜히 말랑말랑할 것만 같아 읽지 않았던 트와일라잇을 한 번 읽어봐야겠다. 그리고 나서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원작이 어떻게 변형되고 비비꼬였는지를 확인해보면 더욱 재밌고 즐거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