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엠퍼러 1 - 로마의 문
콘 이굴던 지음, 변경옥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갈리아(지금의 프랑스)를 정복하고 이집트의 여왕이자 지금도 미녀(美女)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클레오파트라와의 멋진 로맨스를 벌이던, “주사위는 던져졌다", "부루투스, 너마저도" 라는, 지금도 심심찮게 희자되는 명언을 남겼으며,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 황제에 오르지 않았는데도 그의 이름은 황제를 지칭하는 말로 쓰이고(독일어인 카이저(kaiser), 러시아에서는 차르(czar)가 바로 그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심지어 성경(聖經)에도 등장하는('가이사르의 것은 가이사르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돌려라' 루가 20:25)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의 로마의 정치가이자 군인으로 우리에게는 영어식 발음인 “시저(Caesar)"로 더 잘 알려진 그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상식 전부이다. 2009년 미국의 경제잡지 포브스가 선정한 '역사상 가장 강력한 인물 7인' 에 진시황, 나폴레옹 등을 제치고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는 그는 어쩌면 서양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 중의 한 사람으로 꼽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는 그런 영웅일 것이다. 콘 이굴던의 “엠퍼러 1 - 로마의 문”(소담출판사, 2010년 7월)는 카이사르를 그린 역사 소설 시리즈의 첫 번째 권으로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카이사르의 유년기와 청년기를 다루고 있으며, 마치 카이사르가 성큼 성큼 걸어 나와 우리 앞에 마주서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수천년 전의 로마와 등장인물들을 세밀하고 생생하게 그려 재미와 몰입감이 뛰어난 소설이다.
로마시 외곽에 영지를 소유하고 있고, 원로원 의원을 역임하고 있는 "율리우스"를 아버지를 둔 “가이우스”와 창녀의 자식이라는 비천한 신분이지만 가이우스의 집에서 살고 있는 "마르쿠스"는 신분의 차이를 넘어 둘도 없는 친구로 유년시절을 보낸다. 11세가 되던 날, 율리우스는 유명한 검투사 “레니우스”를 두 아이의 선생으로 맞아들이고, 레니우스의 호되고 모진 교육을 받으면서 둘은 멋지고 다부진 청년으로 성장한다. 그로부터 3년 후 14세가 되던 해에 레니우스는 마지막 가르침으로 제자들과 최후의 대결을 벌이고, 가이우스는 크게 부상을 당하고 레니우스도 한 팔을 잃고야 마는데, 마침 여행 중이었던 신비의 노인 “캄베라”가 그들을 치료해주게 된다. 공교롭게도 그때 로마에서 식량 폭동이 일어나고, 촉도로 변한 노예들이 가이우스의 집으로 쳐들어오게 되고, 가이우스 일행은 집 안의 노예들과 함께 그들을 힘겹게 막아내지만 가이우스의 아버지 율리우스는 그만 목숨을 잃고야 만다. 가이우스는 자신의 외삼촌이자 로마의 집정관인 “마리우스”에게 의탁을 하게 되고, 마르쿠스는 마리우스의 추천으로 스승인 레니우스와 함께 마케도니아로 떠나게 된다. 가이우스는 마리우스의 후견으로 아버지의 뒤를 이어 노빌리타스(로마공화정 때 형성된 신귀족으로, 원로원 신분 중에서도 최상층에 속함)의 직을 승계하고, 로마 귀족 사교계에서 주목받는 청년이 된다. 마리우스는 원로원들을 회유하여 자신의 정적인 "슐라"를 그리스 반란군과의 전쟁에 내보내고는 로마를 장악하고, 슐라가 다시 로마로 돌아올 것을 대비하여 로마를 요새화한다. 1년 후 그리스 반란군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슐라는 자신의 군대를 거느리고 로마로 되돌아오고, 17세로 어엿한 청년이 된 가리우스는 외숙부의 전쟁에 참여하기 앞서 자신과 사랑을 나눈 “코르넬리아”와 서둘러 결혼을 한다. 마침내 결전의 날, 도시에 위장 잠입해 있던 슐라의 비밀 부대에 의해 성문이 열리고 전쟁에 패한 마리우스는 살해당하고, 전쟁 중에 생포된 가리우스도 사랑하는 아내를 남겨둔 채 추방을 당하고, 일행들과 함께 이집트로 떠나 로마 해군에 복무하게 된다. 한편 마케도니아에서의 2년 복무기간을 훌륭히 마친 마르쿠스는 가이우스의 소식을 전해 듣고 자신의 맹세인 가이우스의 검이 되기 위해 부대를 떠나려 하지만, 그의 사정을 이해한 사령관의 배려로 가리우스의 남은 복무기간인 1년하고 하루를 군단에서 더 복무할 수 있게 된다.
책 소개글을 보니 이 책은 카이사르라는 인물을 역사적 사실과 작가의 상상력으로 다시 구현해낸 일종의 역사 팩션 소설로 분류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책의 마지막에 실린 역자 주해에 보면 작가는 그 이유를 카이사르 인생 초년기에 대해서는 역사적으로 알려진 사실이 매우 적기 때문에, 가능한 한 그 당시의 사료와 자신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카이사르에게 당시 로마 이류 가문의 소년이 누렸을 만한 유년 시절을 부여해 주었다고 밝히고 있다. 작가가 설정한 각종 장치들, 즉 가이우스와 마르쿠스의 스승으로 레니우스라는 가상의 인물을 등장시키고- 책에서는 레니우스 못지않게 흥미로운 인물로 마법같은 의술과 예언능력을 가진 신비의 노인인 캄베라가 등장하는데, 실존인물 여부는 작가가 따로 언급을 하지 않아 모르겠지만 앞으로 가이우스와 운명을 함께할 든든한 동반자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매력적인 인물이다.-, 훗날 카이사르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브루투스를 그의 친구로 설정 - 마지막 페이지에서 마르쿠스의 전체 이름, 즉 “마르쿠스 브루투스”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멍해지는 그런 느낌마저 들었다 -한 점, 실제로는 외삼촌이 아니라 고모부였던 마리우스와 그의 정적인 슐라 와의 몇 년에 걸친 전쟁을 압축해서 묘사한 점들은 딱딱한 역사책 속 이야기를 더욱 생동감있고 매력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이처럼 역사적 사실과 작가의 상상력을 전혀 이질감없이 조화롭게 엮어낸 작가의 글솜씨는 같은 로마시대를 다뤄 크게 인기를 끌었던 영화 “글래디에이터”나 드라마 “스파르타쿠스”를 보는 것처럼 이 천년 전 세계 제일의 도시인 로마의 모습과 그저 역사 책 속에서나 존재했던 카이사르를 생생하게 구현해내 마치 눈 앞에 등장하는 현실 속의 영웅으로 새롭게 창조해내어 580 페이지에 달하는 만만치 않은 분량임에도 전혀 지루함이 없이 술술 읽히게 만들 정도로 재미와 몰입감이 뛰어나다. 이제 2권부터는 카이사르와 마르쿠스는 파란만장했던 유년과 청소년 시절을 마치고 이제 다시 만나 로마라는 거대한 복마전 속에서 자신들의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본격적인 전쟁을 벌이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비록 그 끝은 알고 있지만 가이우스와 마르쿠스가 엮어낼 우정과 야망, 그리고 배신이 어떻게 전개될 지 다음 권들이 더욱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