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규나 소설
김규나 지음 / 뿔(웅진)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단편소설의 묘미는 한정된 분량 안에 이야기를 얼마나 제대로 담아내느냐에 있을 것이다.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고 욕심을 내다 보면 기승전결의 흐름이 없이 이야기의 소개에 그치게 될 것이고, 분량에 얽매이다 보면 독자들에게 어떤 재미나 감흥도 없는 그저 밋밋하고 짧은 이야기에 그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200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작가인 김규나의 첫 번째 단편 소설집인 “칼”(뿔, 2010년 7월)은 11편의 짧은 이야기들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마치 한권 한권 장편소설을 읽은 것처럼 이야기의 전개와 묘사가 뛰어나서 오랜만에 단편 소설을 읽는 맛을 제대로 느끼게 해준 그런 소설이다. 

 책에는 표제작이자 작가에게 200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을 안겨준 “칼”을 시작으로 총 11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각 단편들에는 하나같이 상처입고 때론 버림받기까지 한 소외감과 상실감으로 고통받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하룻밤 찰나의 사랑을 나눈 남녀가 시체와 부검의로 마주하게 되는 “칼”, 자신의 이야기를 가로챈 친구에게 여자까지 뺏기고 만 남자 이야기인 “뿌따뽕빠리의 귀환”, 무능한 남편 대신 생활전선에 나섰지만 점점 남편과 가족들에게 소외당하는 아내의 이야기인 “테트리스 2009”, 어린 시절 엄마에게 버림받고 할머니 손에 자라다가 훗날 커서 다시 엄마를 만나 같이 살게 되었지만 그런 엄마를 미워하는 “퍼플레인” 등 모두가 가슴에 큰 상처들을 앉고 살아가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들이 간직하고 있는 상처에 대한 사연이 소개되고, 그런 상처를 준 또 다른 등장인물과의 갈등이 극에 달한 후 자살(죽음), 체념, 반항, 이혼 등 이야기는 각각의 방식으로 결론을 맺는다. 각 편당 20~30페이지의 짧은 분량 안에 작가는 등장인물의 소개와 각각의 사연들, 그리고 갈등의 고조와 해결이라는 이야기의 서사를 치밀하고 충실하게 담아내고 있어 한편 한편이 읽는 맛이 모두 다르게 느껴지고, 마치 11편의 장편을 읽는 듯한 그런 묘미를 느끼게 한다. 

  11편 중에서 개인적으로는 표제작인 “칼”과 마지막 편인 “바이칼에서 길을 묻다”가 인상적이었는데, 그중 “칼”을 소개해본다. “당신”이라 지칭하는, 차가운 시체가 되어 부검대에 오른 “그”와 시체의 얼굴을 알아보고 놀라는 부검의 “그녀”의 만남에서 시작된다. 그들은 이렇게 재회하기 사흘 전 금요일 밤 나이트클럽에서 만나 하룻밤을 같이 보내며 찰나의 사랑을 나눈 그런 사이였다. 그녀는 의사를 “하늘이 내려준 직업”이라며 감사해하는 의사 아버지가 단순 의료 사고로 결국 폐인이 되는 것을 보고 의료사고가 걱정이 없는 부검의가 되어 3년째 국과수에서 근무하고 있다. 오케스트라 수석 바이올리니스트로 안정되고 잘 “조율”된 삶을 살고 있었던 “당신”은 행복한 줄로만 알았던 아내의 불륜을 알게 되고는 바이올린 줄이 끊어지는 그런 충격을 받는다. 정기 공연이 있던 날 연주 중에 바이올린 줄이 끊어지는, 아내의 불륜에 이어 두 번째 줄이 끊어지는 충격을 받은 “당신”도 그날 저녁 나이트클럽으로 향하게 되고, 당신은 그곳에서 그녀를 만나게 되고는 서로에게 강렬히 끌려 호텔에서 하룻밤 사랑을 나누게 된다. 외박 후 들어간 당신의 집, “서로 힘들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라는 아내의 한마디에 연습실에서 괴로워하던 당신은 팽팽하게 조여진 마지막 줄만은 당신 손으로 끊고 싶어했던 순간이 바로 지금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는 약을 입에 털어 넣고는 아내에게 다가가다가 그만 수석에 머리를 부딪혀 죽게 된다. 당신의 시체를 부검하면서 그녀는 당신과의 하룻밤을 떠올리고, 부검이 끝난 후 그녀는 갑자기 잊고 있었던, 잊으려고 애썼던 아버지가 견딜 수 없이 보고 싶어진다. 다음 주검 앞에 선 그녀의 발이 휘청거리고 손이 바르르 떨리는 걸 아무도 알지 못한다. 

 작가 프로필을 보니 이번 단편과 수필집, 여러 작가들과 함께 작업한 작품들은 있지만 아직 본격적인 장편은 없는 듯하다. 이번 단편집에서 장편을 연상케 하는 인물 설정과 서사적 전개와 결말에 있어 녹록치 않은 필력을 보여주었듯이 그녀의 장편 소설 또한 훌륭한 재미와 감동을 우리에게 선사할 것으로 기대가 된다. "내가 쓴 한 줄이 당신의 심장을 따사롭게 어루만져 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그녀의 바램이 올곧이 담겨진 그녀의 장편을 벌써부터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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