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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 사냥꾼 - 유쾌한 과일주의자의 달콤한 지식여행
아담 리스 골너 지음, 김선영 옮김 / 살림 / 2010년 7월
평점 :
원래 과일을 즐겨하지 않았었다. 풍족하지 않았던 가정 형편상 과일은 비교적 사치스러운 먹을거리였기도 했지만, 객지에서의 오랜 자취 생활에서 과일은 항상 냉장고 한 켠을 차지하고 있는 처지 곤란한 음식이었다. 과일을 좋아하게 된 것은 결혼을 하고 나서 원래 과일을 즐겨 했던 아내가 꼬박꼬박 챙겨주면서부터였다. 식사를 배불리 하고 후식으로 뭘 또 먹는다는 게 영 익숙치 않아 처음에는 먹는 게 영 부담이 되었지만 맛을 들이고 나니 식사 후에는 자연스레 과일을 찾게 되었다. 그리고 정말로 과일이 좋다는 것을 제대로 느끼게 된 것은 거봉 포도 재배지로 유명한 천안시 입장면에 직장을 잡게 된 후 부터인데 포도 수확 철에 회사와 담 하나로 이웃하고 있는 포도재배 농가에서 갓 딴 포도를 맛본 후 였는데, 농약도 치지 않아 씻을 필요 없는 포도를 나무 줄기에서 갓 따내어 입안에 넣었을 때 입안 가득 퍼지는 그 달콤함과 과육의 싱그러움이란 그 어떤 가공식품이나 육류에서는 맛볼 수 없는 바로 천상의 맛 그 자체였다. 비록 비싸서 자주 맛볼 수 는 없지만 포도를 수확하는 9월이 되면 맛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두근 거릴 정도로 설레임을 느끼는 것을 보면 그 맛에 단단히 반하긴 반했나 보다. 과일의 문외한조차 포도가 익는 계절이 오면 그 맛을 떠올리면서 침이 고이는 데 과일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사람들이라면 과일이 풍성하게 익어가는 계절인 여름과 가을은 일년 중 가장 즐겁고 행복한 그런 시간들일 것이다. 그런데 그저 먹어도 그만, 안먹어도 그만이 아닌 과일에 자신의 인생을 바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소개하는 작가가 있다. 과일탐정, 과일 주의자, 과일사냥꾼으로 불리우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과일에 대한 온갖 상식을 소개하는 “과일사냥꾼”(살림출판사, 2010년 7월)의 저자 아담 리스 골너가 그 작가이다.
작가 소개글을 보니 작가는 세계를 여행하며 숨겨진 과일세계와 각국의 문화에 대해 기고하는 칼럼니스트로「뉴욕 타임스」등 각종 언론 매체에 과일 관련 글을 활발하게 기고하고 있으며, 데뷔작인 이 책으로 세계 유수 언론 매체의 극찬을 받았고,'맥오슬런 최고 저작상'을 수상했다고 하니 과일에 대해서만큼은 진정한 매니아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 그런 사람이다. 그런데 책을 읽어 보면 과일탐정, 과일주의자, 과일사냥꾼으로 불리우는, 작가보다 더한 열정으로 과일에 푹 빠져 지내는 범상치 않은 사람들이 수두룩한 것을 보면 놀라울 지경이다. 책에는 이처럼 과일을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인터뷰들과 과일에 대한 온갖 역사적, 사회적, 과학적, 문화적 상식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동안 그저 먹는 음식으로만 알았던 과일에 이렇게 다양하고 즐거운 상식들이 숨어 있다니 읽는 내내 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오게 만든다. 작가는 머리글에서 인간이 자연과 교감하는 이유를 에리히 프롬이 만들었다는 생명애(biophilia) 이론으로 설명하는 데 죽음을 맞는 유기체는 생명체와 접촉하면서 자신을 보호하려 하며, 과학자들이 환자들이 자연이 가득한 녹지를 접할 경우 빠른 회복속도를 보였다는 증거를 인용하면서 생명애는 상호의존적인 생명체의 생존을 보장하는 진화론적 장치라고 추측하였다고 설명하면서 우리는 과일의 존재를 발견하면서, 자연이라는 숭고한 영역과 결합하게 되며, 그것이 바로 다양성을 사랑하는 생명애 체험이라 할 수 있으며 이 책은 과일에 대한 이야기이자. 과일과 인간 사이의 긴밀한 유대에 대한 이야기라고 소개한다. 그러면서 이 사랑에 흠뻑 빠져버릴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고 애교스런 경고를 하는 데 이 책을 읽다보면 작가 말대로 과일에 대해 흠뻑 빠지게 되는 읽는 내내 절로 과일 향기와 그 맛이 떠오르게 되는 착각과 환상을 경험하게 된다.
작가가 소개하는 수많은 과일에 대한 이야기 하나하나가 흥미롭고 재밌지만 , 그중 가장 특이한 과일은‘숙녀과일 Lady Fruit' 을 뽑고 싶다. 여성의 골반 부위를 앞뒤로 빼닮은, 어찌보면 흉측할 수 도 있는 이 열매는 그동안은 라마야나(고대 인도의 대서사시) 전설과 멜라네시아의 창조신화에서나 볼 수 있는 가상의 과일로 생각되어 왔는데, 작가는 인도의 주술을 다룬 책을 접하고서 그 과일이 실재하는 과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인터넷과 각종 서적을 검색하면서 이 과일이 코코드메르coco-de-mer-라고 불리우는 실제 과일임을, 그동안 보아왔던 과일 중 단연코 제일 야한 모습의 과일로 이 과일을 소개하는 여행 안내서조차 “불경스럽다”고 언급할 정도로 그 생김새가 여성의 둔부와 앞모습을 꼭 빼 닮았는 것을 알게 된 작가는 인도의 세이셀로 날아가 이 과일을 실제로 맛보게 된다. 맛은 어땠을까? 작가는 맛은 순한 감귤 같고 산뜻했으며 원기가 느껴지는 소박한 단맛이었다. 코코넛과 비슷햇지만, 섹시한 맛이 났다고 밝히면서 아담이 이브를 맛보는 그런 경험을 느끼게 된다. 숙녀과일 외에도 신 맛을 만나면 황홀할 정도의 단맛을 느끼게 하는 “기적의 열매”와 그 열매의 상업화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각종 흥미로운 이야기들 , 이제는 세계인의 과일로 인기가 높은 “키위”가 사실은 중국의 야생 다래였으며 뉴질랜드의 나라 새를 뜻하는 마오리족 단어인 "키위"라는 이름을 얻게 된 재밌는 사연을 들려주기도 한다.
작가는 손에 넣기 힘든 보물이었던 과거에 비해 오늘날 너무나도 풍족해서 흔히 만날 수 있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기면서도, 생화학적 성장 억제제와 호르몬 억제제를 사용하면서 과일의 평균 저장 수명이 대폭 늘어나버린 과일 저장의 문제, 즉 에틸렌 가스 주입으로 빨갛게 만들어 버린 생기 없는 토마토, 역시 가스를 주입하고 합성 착색료로 범벅한 과일인 오렌지들과 제철에도 평균 이하의 똑같은 사과와 오렌지. 딸기만 들여놓는 '전 세계가 사시사철 여름'이라고 불리우는 현재 과일 유통의 문제를 꼬집는다. 또한 과일을 일종의 명상이나 종교 수단으로 여기는 단체들을 언급하면서 과일에 대한 이러한 집착은 어떻게 해서든 과일에 대해 모조리 알고 싶고 박식해지길 원하는 욕망으로, 선악과 열매를 맛본 이후 우리는 다른 나무의 열매에 눈을 돌려 영생을 찾으려 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창세기에서 암시하듯 우리가 얻은 지식이 우리를 반드시 자유롭게 해주지는 않으며 오히려 그 노예가 되거나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도 있다고 경고하기도 한다.
최근 사람의 얼굴 한복판에 있는 장기인 “코”에 대한 역사적, 사회적, 과학적 탐구에 대한 책을 읽고서 어찌 보면 별날 수 있는 것에 대한 지적 탐구가 더 색다르고 흥미로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런 생각이 이 책을 읽으면서 더욱 확실해졌음을 느끼게 되었다. 인터넷이 확산되면서 일반적이고 광범위한 백과사전식의 상식들은 더욱 쉽게 접하게 되었지만, 이렇게 하나의 주제에 대한 깊이 있고 전문적인 지식 - 물론 그러한 지식의 유용성이나 흥미는 각자에 따라 다르겠지만 - 들을 접하기에는 아직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특히 우리가 자주 접하지만 오히려 피상적인 상식밖에 모르고 있던 과일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던 즐겁고 재밌는 책이었고, 평소에도 과일을 즐겨하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색다른 지적 즐거움을 찾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읽어봐도 좋을 과일 상식 백과사전으로 추천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