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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 워킹 Book One : 절대 놓을 수 없는 칼 1 ㅣ 카오스워킹 1
패트릭 네스 지음, 이선혜 옮김 / 문학수첩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때때로 말이 안 통하는 고집스런 사람이나 도통 자식의 속내를 이야기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는 답답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독심술이라도 익혀서 저 사람의 속내가 과연 어떤지 마음 속 소리를 듣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생각을 가감 없이 온전히 알 수 있다면 과연 어떠할까? 일견 남을 속이는 거짓이나 사기가 없어지고 오로지 진실만이 존재하는 정직한 사회가 될 것 같지만 왠지 사회가 더 삭막해지고 무서워질 것 같다. 남에게 밝히고 싶지 않은 자신만의 ‘말하고 싶지 않은 비밀’이나 선의의 ‘하얀 거짓말’도 용납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진실의 무거움 때문에 거짓보다 더 혼란스럽고 심지어 더 공포스럽게 변하지 않을까? 페트릭 넥스의 “카오스워킹”(문학수첩, 2010년 7월)은 바로 이처럼 모든 사람의 생각이 가감 없이 들리는 것이 얼마나 공포스럽고 끔찍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인 토드가 사는 마을인 “프렌티스 마을”은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과 동물들의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마치 말처럼 들리는 “노이즈(Noise)"로 가득찬 세계이다. 따라서 굳이 말로 이야기하지 않아도 자신의 생각은 자연스럽게 타인에게 들려지게 되니 자신의 생각을 감춘다는 것이 불가능한 그런 세계이다. 외계인인 스팩클과의 전쟁에서 그들이 퍼뜨린 신종무기인 노이즈 세균에 의해 생긴 이 질병은 항체가 없는 여자들은 전부 죽음을 맞이했고 일부 남자들만 살아남게 되었고, 토드는 이제 성년식을 30여일도 채 남기지 않은 그 마을에서 마지막 남은 유일한 미성년자이다. 어느날 마을 주민의 심부름으로 늪으로 사과를 따러 갔다가 토드는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누구나 지니고 있어야 할 노이즈가 전혀 들리지 않는 이상한 존재를 만나게 된다. 당황하여 마을에 돌아온 토드는 자신을 키워준 벤과 킬리언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벤과 킬리언은 당황하면서 어머니의 유품인 일기장과 배낭을 챙겨주면서 어서 마을을 떠나라고 종용한다. 토드는 영문도 모른 채 마을을 떠날 수 없다고 반항해보지만 마을 주민들이 총을 들고 벤과 킬리언의 집을 공격하는 것을 보고는 질겁을 하고 마을을 떠나게 된다. 벤과 킬리언의 생사도 모른 채 그들이 알려준 이웃 마을로 떠나게 된 토드는 늪에서 노이즈가 전혀 들리지 않는 존재인 소녀 ”비올라“를 만나고 그녀를 죽이려고 하는 미친 남자 아론의 위협을 물리치고, 자신을 뒤쫓는 마을 주민들을 피해 늪을 가로질러 이웃마을인 파브랜치로 향한다. 자신의 마을과 달리 남자와 여자가 가정을 이루고 평화롭게 살고 있는 파브랜치 마을을 신기해하는 토드는 자신이 프렌티스 출신이라는 것을 알게 된 파브랜치 주민들에게서 까닭모를 적의를 느끼지만 당분간은 마을에 머무르기로 한다. 그러나 이내 자신을 추적해온 프렌티스의 군대에 의해 파브랜치 마을은 쑥대밭이 되고 토드는 비올라와 함께 뉴월드 최초의 개척도시라는 헤이븐으로 향하게 된다.
인터넷, 문자, 네트워크 등 온통 소음으로 가득 찬 오늘날의 세상이 모티프가 되어 이글을 쓰게 되었다는 작가의 말처럼 어쩌면 지금 이 세상은 수많은 생각들과 주장들이 보이지 않는 전파라는 형태로 가득 메운 그런 세상일지도 모르겠다. 라디오나 핸드폰처럼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그런 전파를 집어낼 수 있는 능력을 인간이 가지게 된다면 아마도 이 책과 같은 상황이 지금 현실에서도 충분히 벌어지지 않을 까 생각해보게 된다. 지금도 하루에도 수십 수백건 씩 주고받는 메일이나 문자, 쪽지들, 인터넷 서핑 정보가 고스란히 각종 데이터 마이닝 업체들에게 고스란히 제공되고 있고, 범죄 예방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CCTV로 일거수 일투족이 낱낱이 들어나는 조지오웰의 빅브라더의 세계가 이미 우리 삶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작금의 현실이 작가가 묘사하고 있는 뉴월드 속의 “노이즈”나 별반 다름이 없다는 생각에 소름이 끼치기도 한다. 아직 1부 1권이라 지구로 생각되는 올드 월드를 떠나 뉴 월드에 사람들이 정착하게 된 사연이나 파브랜치 주민들이 토드에게 느끼는 적의의 근원인 프렌티스 마을의 정체, 토드의 어머니가 남긴 일기장에 담긴 비밀들은 밝혀지지 않아 앞으로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 지, 어떤 충격적인 반전과 결말이 우리를 놀라게 할 지 등 이 책에 대한 평가는 3부작까지 있다는 전 권을 읽고 나서야 제대로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시리즈의 도입부인 1부 1권 만으로도 그 재미에 흠뻑 빠지게 하는 몰입도를 보여주는 것을 보면 후속권들이 더욱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