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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권으로 읽는 삼국지
장연 편역, 김협중 그림 / 김영사 / 2010년 6월
평점 :
내 생애의 최고의 책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내가 주저 없이 꼽는 책은 바로 “삼국지”이다. 내가 처음 삼국지를 읽은 것은 초등학교 4학년때 동화작가인 조풍연의 "소년판 삼국지(전 12권, 계림출판사)"였었다. 앞 표지에는 금장 입힌 삼국지 인물들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고 책 중간 중간 칼라 삽화가 그려져 있던 전 권 양장본인 이 책은 그 당시에는 꽤나 고급스러운 책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부모님께 처음 선물 받은 책이기도 했었던 터라 이 책 십 여번을 넘게 읽을 정도로 자주 읽었었고, 지금도 본가 책장 한 켠에 고이 모셔두고 있을 정도로 나에게는 보물과도 같은 책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삼국지에 대한 관심은 더 커져 정비석, 박종화, 김홍신, 이문열, 장정일 등 국내 유명 작가들이 펴낸 삼국지와 일본, 중국 작가들 작품들, 고우영, 박봉성, 일본 작가 등 만화로 나온 삼국지들, 주대황의 "반삼국지"처럼 삼국지를 변형시키는 작품들, 무협 스타일의 야설록, 검궁인의 삼국지, 각종 삼국지 관련 해설서, 코에이사의 게임인 "삼국지","진 삼국무쌍" 등에 이르기까지 “삼국지”라고 이름 붙여진 모든 장르의 컨텐츠들은 중년의 나이가 된 지금까지도 그 애정이 식을 줄 모르고 갈수록 더해가는 것 같다. 수없이 봐서 이제는 줄거리며 인물들까지 외울 정도가 되었는데도 아직도 이렇게 삼국지에 열광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아마도 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의 엮어내는 바로 그 이야기 때문일 것이다. 유비, 조조, 제갈량 등 영웅들 뿐만 아니라 주목받지는 못하지만 개성이 강하고 저마다의 꿈과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조연급 인물들, 그저 몇 만 몇 십만으로 지칭되는 이름모를 군인들과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상처받았을 민초들 모두가 한데 어우러져 엮어내는 그 거대하고 장대한 서사시는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읽을 때마다 새로운 재미와 감동을 불러 일으킨다. 이렇게 읽을 때마다 항상 새롭고 항상 즐거움을 주는 책이 또 어디에 있을까? 보통 10권 이상의 대하소설로 출간되는 삼국지를 그 정수만을 모아 한권으로 엮어낸 장연의 “한권으로 읽는 삼국지”(김영사, 2010년 6월)도 나에게 “삼국지를 읽는다”라는 가장 큰 즐거움과 재미를 맛보게 해준 그런 책이었다.

책은 삼국지를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익히 알고 있을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에서 시작하여 사마염이 삼국을 통일하고 “진(晉)”을 세울 때까지를 그리고 있다. 과연 앞에서 말한 대로 10권 이상의 분량인 삼국지를 한권으로 어떻게 축약할 수 있었을까? 역시나 작가는 머리말에서 방대한 분량의 삼국지를 한권으로 축약하기란 벅차고 힘든 일이었지만 가능한한 원작에 충실했다고 자부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기존에 읽었던 삼국지와 비교하게 되는데, 유비와 제갈량이 만나는 삼고초려(三顧草廬)나 적벽대전에서 연환계를 펼치는 방통과 동남풍을 부르는 제갈량, 심금을 울리는 명문장(名文章)으로 꼽히는 제갈량의 “출사표(出師表)” 등을 빠짐없이 수록한 것을 보면 작가의 고심을 엿볼 수 있다. 다만 작가가 “역사의 진실에서 벗어난 듯한 내용과 미신적인 부분은 과감히 생략했고, 반복되는 전투의 세세한 묘사도 가능한 한 압축”했다는 부분일 유비가 조자룡과 처음 만나는 장면, 관우가 조조의 만류를 뿌리치고 유비를 찾아 떠나면서 그의 무용(武勇)을 여실히 보여줬던 “오관참장(五關斬將)”, 삼국지에서 가장 기이하면서도 재밌는 에피소드인 도인 좌자(左子)가 조조를 골탕먹이는 장면, 제갈량이 남만왕 맹획을 마음으로 포섭하고자 벌인 “칠종칠금(七縱七擒)”의 장면들은 삭제되거나 간략하게 몇 단어로만 소개되어 있고, 원전 연의(演義 )에 등장하는 후대 문인들이 삼국지의 영웅들에게 헌사하는, 삼국지의 풍미를 더욱 높여주는 각종 시(詩)나 문장(文章)들은 생략되어 있어 다소 아쉽게 느껴진다.
물론 이 책만의 장점도 여럿 보이는데 작가가 머리말에서 밝혀 놓았듯이 책 곳곳에 등장하는 중국의 유명화가 김협중의 삼국지 그림들이나 삼국지의 고사성어들을 책 하단부 각주(各主)로 달고 지금도 종종 쓰는 삼국지 명언들과 연표를 부록으로 실은 점들은 장점으로 들 수 가 있다. 특히 각 장 말미에 실려 있는 “삼국지 깊이 읽기”가 이 책의 압권이라 할 수 있는데, 우리가 그동안 삼국지를 읽으면서 느꼈던 의문들을 역사서와 소설들을 비교하며 해설하는 내용은 나처럼 삼국지 스토리라면 훤히 꿰고 있을 매니아들이 읽어도 재밌을 그런 내용들로 꾸며져 있다. 몇 몇 예를 들어보자면, 제갈량이 능력도 의심스럽고 기반도 없었던 유비를 택한 이유는 유표가 보잘 것 없는 인물임을 간파하였고, 자신의 형이 모시는 군주인 손권 주변에는 이미 장소와 주유 같은 쟁쟁한 인재가 넘쳐나서 자신이 크게 쓰일 자리가 없다고 판단했고, 상대적으로 훌륭한 인재가 부족해 경쟁상대가 없었고, 황실의 후손이라는 명분을 갖춘 유비가 제갈량에게는 더 적합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또한 삼국지 최고의 맹장이자 고리눈에 밤송이 같은 수염으로 묘사되고 있는 장비는 사실은 최근 출토된 자료나 삼국시대 그림을 보면 수염이 없고 얼굴이 보름달 같으며 부드러운 표정을 보여주는 미남자이며, 그의 두 딸이 모두 후주 유선의 황후가 된 것도 그가 추남이 아니었음을 알려주는 증거라고 소개한다. 더구나 무식의 대명사였던 장비는 서예에 뛰어나 지금도 그의 글씨가 전해 내려오며 그림에도 재질이 있었다고 한다니 그동안의 상식을 한꺼번에 깨버리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이 외에도 주유가 평가 절하된 까닭 - 홍콩 영화배우 주윤발이 주유의 직계자손이란다 - 이나 조조가 황제가 되지 않은 이유, 읍참마속(泣斬馬謖)이라는 고사성어로 유명한 제갈량이 마속을 죽인 이유 등등 흥미로운 사건에 대한 재밌는 해설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은 아직 삼국지를 접해보지 못한 청소년이나 여성들이 삼국지의 재미를 사전에 맛볼 수 있는 책으로는 제격이며, 나처럼 삼국지 매니아들도 오랜만에 삼국지의 재미와 감동을 되새겨볼 만한 그런 책이다. 다만 이 책만을 읽고 삼국지의 진정한 재미를 다 알았다고 이야기하기에는 아무래도 부족하니 본편이라고 할 수 있는 국내외 유명 작가들이 펴낸 책들을 꼭 읽어보길 권한다.
이제 다시 한번 삼국지를 읽었다. 이렇게 한 권으로 요약된 삼국지를 읽어도 그 재미가 쏠쏠한 것을 보면 아직 나의 삼국지에 대한 사랑은 식질 않았나 보다. 최근 국내 유명작가가 삼국지를 새로 써서 펴낸다는 소식에 벌써부터 반갑고 설레이는 것을 보면 삼국지는 지금보다 더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내 인생의 최고의 책으로 꼽을 것이며, 내 아이들과 그 손자들에게도 꼭 읽히고 싶은 그런 책으로 남아있을 것임에 분명할 것 같다. 비록 실제 역사와는 다른 허구가 더 많은 그런 이야기지만 그 어느 역사서나 소설보다도 삼국지는 우리들에게 더 오래 기억되고 앞으로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 이야기에 열광할 것이다. 삼국지의 분량이나 수많은 등장인물에 지레 겁먹고 포기해서 아직도 삼국지를 읽어보지 않았다면 당신은 인생에 있어 가장 즐거운 경험일지도 모를 하나를 아직도 누려보지 못한 사람일 것이다. 겁먹지 말고 책을 펼쳐보라. 삼국지의 수많은 영웅들이 자신들의 모험에 당신이 동참해주길 손짓하고 있다. 그들과 같이 웃고 울고 같이 뒹구는 사이 당신도 어느새 삼국지의 매니아가 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