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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동양신화 중국편 - 신화학자 정재서 교수가 들려주는
정재서 지음 / 김영사 / 201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21세기 들어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이야기(Story)를 함께 나누다(telling)”라고 풀이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은 구전(口傳)이라는 전통적 의미를 떠나서 다양한 미디어 플랫폼, 즉 만화, 소설, 게임, 영화, 광고, 가상현실 등이 발전하면서 새롭게 변형되고 창조되면서 신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새로운 산업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미디어 플랫폼이 하드웨어라면 소프트웨어 격인 이야기들의 원형을 보면 현대에 이르러 새롭게 만들어낸 것들보다는 인류 역사의 시원에서부터 오랜 세월 동안 우리에게 전해 내려 오고 있는 신화(神話)와 전설(傳說)을 기반으로 한 것들이 대부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앵글로 색슨의 언어와 고유 신화를 바탕으로 20세기 최고의 스토리텔링을 구현해낸 J.R.R.톨킨의 “반지의 제왕”이나 다양한 신화, 전설, 만담에 등장하는 흡혈귀를 모티브로 위대한 문학작품을 이끌어낸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와 이를 재해석하여 세계적 흥행을 거둔 헐리우드 뱀파이어 영화 시리즈들, 유럽의 영웅 신화들의 전형(典刑)을 “우주”라는 새로운 시간과 공간으로 투영하여 멋진 영웅 스토리를 보여준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 “성배”라는 신화적 아이템과 “퀘스트"의 해결이라는 영웅의 모험담을 결합시켜 흥미진진한 이야기꺼리를 보여주는 ”인디아나 존스“나 ”라라 크로프트“ 시리즈, 그리스 신화의 요괴 ”세이렌”의 이미지를 타 브랜드와 차별화되는 고급스러운 이미지로 재창조하여 전 세계를 석권한 커피 체인점 회사 사례에 이르기까지 신화와 전설은 이제는 더 이상 고리타분한 옛 이야기가 아니라 새로운 천년을 이끌어나갈 중요한 "이야기(Story)"로 그 위상을 갈수록 더해가고 있다. 그런데 앞에서 소개한 신화와 전설은 그리스, 로마 신화나 기독교를 기반을 둔 서양 신화들이 대부분으로 우리 동양 문화와 정서를 대변하는 스토리는 상당히 미흡하거나 서양식으로 재해석된 정체불명의 이벤트성 이야기로 한정되고 마는 수준이다. 중국, 일본 등지에서 동양 신화를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 영화가 제작되고 있지만 그저 동아시아권에서나 다소 인기를 끌 뿐 세계적인 흥행으로 이어지는 작품은 가뭄에 콩 나듯이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심지어 같은 문화권인 우리들도 낯설어서 외면하고 있는 그런 실정이다. 과연 아시아권의 신화와 전설은 유럽의 그리스, 로마 신화보다 양적, 질적으로 빈약한 열등적 위치에 있는 것일까? 그것이 아니라면 우리가 즐길 만한 신화는 과연 어떠한 것이 있을까? 우리나라의 대표적 신화학자로 알려진 정재서 교수는 동양신화도 결코 양적인 면이나 절적인 면에서 서구 신화에 못지 않은 풍성하고 놀라운 이야기와 상상력을 가지고 있고 동양의 신들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여전히 우리 곁에 있는데도 우리의 눈이 그들을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그에 대한 증거로 중국신화를 풀이하여 쓴 “이야기 동양신화(김영사, 2010년 6월)”을 우리에게 선보이고 있다. 지난 2004년에 두 권으로 출간되었던 작품을 새롭게 한 권으로 통합하고 수정, 보충하여 더욱 완벽을 기하여 제작했다는 이 책은 중국 고대 문헌의 원전 자료를 바탕으로 하여 동아시아 문화권의 원류라 할 수 있는 중국 신화를 새롭게 해석하고 분류하여 동양 신화로서의 위상을 격상시킨 “동양신화 백과사전”이라 부를 만 하다.

범람하는 외래 상상력의 홍수 속에서 동양인, 아니 한국인으로서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에 대해 이 책이 무언가를 말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 될 것이라고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는 작가는 좀 더 쉽고 흥미로운 대중적인 신화 책에 대한 필요성을 오래전부터 느껴왔었으며, 그리스 로마 신화 등 서양 신화의 범람에 대한 우리 상상력의 위기의식과 신화학자로서의 학문적 소신에 비추어 볼 때 우리 입장에서 쓰여진 읽은 만한 동양 신화 책이 없다는 현실 때문이었다고 집필동기를 밝히고 있다. 집필은 그동안 중국 신화를 연구했던 내용들을 중심으로 중국, 일본의 저명한 여러 책들에 대한 참고의 토대로 이뤄졌는데 무엇보다도 중요한 관점에 있어서 그리스 로마 신화와의 공통점과 차이점, 주변 문화 및 다원주의적 입장에서의 중국신호, 한국 문화와의 상관성이라는 관점을 시종일관 지켰다고 이야기한다. 즉 중화주의적 신화관을 무비판적으로 소개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입장에서 중국 신화를 다시 쓰고 한국 문화와의 연관성과 뿌리를 새롭게 인식하는 그런 작업이었다고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책에서는 제일 먼저 창조신화라 할 수 있는 혼돈(混沌)과 거인신 반고(般古), 전 세계 신화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홍수설화와 인류 창조 및 인류 시조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이어서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서왕모, 무산신녀 등과 같은 여신들, 천상과 지상을 지배한 큰 신들과 자연계의 각종 신들, 전쟁과 모험의 영웅들, 각종 기이한 종족과 동식물들, 동양의 낙원인 무릉도원과 사후 세계 등 그동안 각종 소설이나 영화, 관련 책들을 통해서 단편적으로 들어왔던 중국 신화의 거의 모든 것을 망라하여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다. 작가가 “이야기를 마치며”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책에서는 중국 신화에 곁들어 그와 유사하거나 대비되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소개하여 서로 다른 문화권의 신화의 유사성과 차이점을 비교 설명하고, 중국의 또 다른 구성원이자 독자적인 문화권이었던 “동이(東夷)”의 신화들을 소개하면서 한국 신화와의 연관성을 모색하고 있으며, 기존의 남신 위주의 기술에서 벗어나 여신들을 전면부에 배치하여 중요성을 강조하는 등 몇 가지 중요한 특징들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작가가 중국, 일본, 대만 등지의 박물관, 도서관, 서점 등을 몇 차례나 왕래하며 관련된 중요 자료들을 거의 망라하였다는, 매 페이지마다 등장하는 다양한 이미지 자료들은 생생한 활기를 불어넣는 장치로써 뿐만 아니라 독자들로 하여금 신화의 이미지를 구체화하고 시각적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게 하는 더욱 가치 있는 소중한 자료들이라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을 꼽는다면 만신전(萬神展)의 제신(諸神)들과 각종 요괴, 괴물 등을 소개하는 수준에 그칠 뿐 그리스 로마신화처럼 풍부한 이야기꺼리가 다소 부족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물론 그동안 동양 신화가 입으로만 전해 내려오던 복잡한 그리스 신들의 계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헤시오도스의 “신통기”처럼 일목요연하고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못하고 단편적으로 흩어져 전해왔다는 점, 유교가 지배 이념으로 대두되고 불교와 도교가 편입되면서 전통적인 모습이 각 종교나 이데올로기의 입맛에 따라 왜곡 또는 변형되어 그 원형을 찾아보기가 어렵다는 점들을 감안하면 이만큼의 이야기꺼리를 체계적으로 정리해내기도 여간 어렵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아쉬운 생각이 든다. 그리고 구미호나 삼족오처럼 한, 중, 일 삼국에 공통적으로 등장하지만 각 나라의 문화적 전통에 의해 달리 해석되는 사례들과 전승 이야기를 좀 더 풍부하게 다루었으면 하는 생각과 동양신화의 또 다른 축인 불교, 도교의 신화들과의 연관성도 좀 더 깊이있게 다루어졌으면 좀더 풍성하고 재밌는 이야기꺼리를 제공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마지막으로 “염제”,"복희”,“치우” 등을 동이계 신들로 해석하여 우리나라와의 연관성을 찾고자 하는 시도는 자칫 민족주의적 해석이라는 논란 꺼리를 제공할 수 있어 좀 더 객관적이고 신중한 접근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여진다.
딱딱한 학술서가 아니라 체계적이고 쉬운 설명과 시각적 이해를 돕는 각종 사진이나 이미지로 구성된 이 책은 신화에 관심 있는 어린이서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읽어도 좋을만한 재밌는 신화해설서로, 이제는 필독서로 자리잡은 그리스 신화와 더불어 반드시 읽어야 할 신화입문서로서 그 가치가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에 나오는 각종 신들과 이야기들이 책에서만 머물지 않고 밖으로 뛰쳐 나와 각종 만화나 소설, 드라마, 영화, 게임 등 다양한 미디어로 제작되어 우리에게 선보이길, 앞으로 천년을 이끌어나갈 스토리텔링의 무한한 원천으로서 다양하고 변화하고 새롭게 창조되기를, 그래서 서구 신화를 뛰어넘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