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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수첩 - 진실의 목격자들
PD수첩 제작진.지승호 지음 / 북폴리오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새 정권 들어 신문이나 방송 뉴스가 별로 볼 것이 없어졌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보수 신문사들이야 10년 만에 정권을 잡은 보수 정권 감싸기에 열중이어서 그렇겠지만, TV 방송들은 아직도 큰 홍역을 치르고 있는 방송사 경영진 교체와 인사 이동, 각종 방송법 개정 등의 여파로 정권에 대한 비판이나 사회 부조리에 대한 고발이 많이 약해지는, 뉴스의 연성화(軟性化)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그래서 요새는 차라리 TV뉴스를 시청하는 것보다 블로그나 포럼, 트위터 등 “소셜 미디어(Social Media)"를 선별 구독하는 것이 현 시국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데 더 낫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언론인 10명 중 8명이 “언론 자유가 침해됐다”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위클리 경향 862호, 2010.2.9.기사), 언론 현장에서 느끼는 위기감은 일련의 상황에 대하여 우리같은 소시민들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지난 20년간 한결같은 목소리로 우리 사회의 부조리와 권력의 부패를 고발해온 대한민국 대표 시사 프로그램인 “PD수첩”의 가치가 이러한 언론 위기 국면에서 더욱 빛을 발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와 PD수첩 전현직 PD 9명이 나눈 이야기인 “PD수첩:진실의 목격자들”(북폴리오, 2010년 6월)“은 지난 20년간 PD 수첩이 걸어온 발자취를 일목 요연하고 생생하게 전달하고, 현 “언론위기” 시국에 대한 PD들의 진솔한 의견들을 가감없이 담아내고 있다.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PD수첩 방영 역사상 굵직굵직한 사건들은 실제로 직접 시청한 방송들이 많아서 읽으면서 그 방송을 시청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한국 방송 사상 초유의 사건이었던 방송 주조정실 점거 사건(1999.5.11.방송)도 당시 프로그램을 시청하다가 갑자기 방송이 중단되던 황당한 장면과 마감뉴스에 담당 PD - 윤길용 PD라는 건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 가 나와 상황을 설명하던 장면을 직접 시청했었고, 2002년 월드컵 열기에 가려졌던 미선이 효순이 사건도 “미군 전차와 두 여중생, 그 죽음의 진실” 편(2002.7.16. 방송)을 시청하고 나서야 그 진상을 알게 되고는 치를 떨었었고, 대한민국 국익을 심대하게 해치는 매국노로 몰려 사상 초유 광고 거부운동까지 벌이게 만들었던 “황우석 신화의 난자 의혹”편(2005.11.22.방송)도 본방송을 보면서 사실 믿고 싶지 않은 보도 내용에 나 또한 PD수첩의 진실성을 심각히 의심했었던 부끄러운 기억이 떠오른다. 또한 2008년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촛불 시위의 배후 조종자로 지목되고 있는 문제의 방송 “국내 최초 긴급 취재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2008.4.29.방송)” 편도 본방 시청 당시 별로 새로울 것 도 없는, 오히려 너무 약한 내용 아닌가 싶었는데, 추후 논란이 되면서 내가 잘 못 생각했었나 싶어 IPTV 재방송을 수차례 시청하고 나서도 도대체 뭐가 선동이고 뭐가 왜곡이라는 거야 하고 전혀 문제점을 못느꼈었었고, 최근 화제가 되었던 “검사와 스폰서” 방송(2010.6.10.방송)은 본방송은 아쉽게도 직접 시청하진 못했지만 다음날 재방송을 시청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노골적인 정치 편향성으로 말이 많았던 검사들에게 제대로 한 방 먹인 작품이라 통쾌해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책에서는 이 외에도 직접 시청하지 못했지만 그 화제성으로 보도 내용은 익히 알고 있는 각종 종교, 사회, 정치 문제를 다룬 방송들에 대하여 그 당시 프로그램을 연출했던 PD들이 직접 이야기하는 취재후기들을 소개하여 더욱 생동감 있게 전하고 있다.
사실 광우병 사건으로 고소, 고발을 당하고 책임 CP와 PD가 전격 교체되고, 심지어 집권여당이나 보수단체에서 프로그램 폐지까지 공공연히 주장하는 등 심각한 외홍에 시달리는 것을 보면서 또한 예전처럼 한 가지 주제를 다루던 방식을 탈피해 아나운서가 등장하고, 한 방송에서 두세 가지 이슈를 다루는 것을 보면서 PD수첩도 외압에 어쩔 수 없어 연성화되는 것이 아니냐 하는 우려에 본방을 제대로 시청하지 않은 적이 많았다 - 아마도 이렇게 느낀 시청자가 나만은 아닌 듯 지승호씨도 PD들에게 물어본다. 탐사 보도는 취재하고 제작하는 데 시일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탐사보도에만 매달리다 보면 시의성(時宜性)을 놓치는 경우가 있어 포맷을 일부 변경했다고 답변한다 -. 그러나 최근 “검사와 스폰서” 편에서 알 수 있듯이 PD수첩의 진실성과 고발정신은 결코 녹슬치 않았음을, PD수첩이 처음 방송을 시작했던 시기, 지금보다 더 서슬 시퍼렇던 군사정권 시절에도 꺾이지 않았던 “시대의 가장 정직한 목소리”라는 PD수첩의 자부심을 절대 망각한 적이 없다는 인터뷰를 읽고는 오히려 PD수첩의 진실성을 의심했던 것이 부끄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PD수첩이 더 이상 고발할 사건들이 없어지는 날이 프로그램 종영일이라는, 부정부패와 온갖 성역과 금기가 사라지는 그 날을 기대한다는 것이 하늘의 천국이 지상강림한다는 것처럼, 어느날 갑자기 온 셍상이 유토피아로 변하는 것처럼 허황된 꿈같이 들리는 작금의 현실에서 오히려 김보슬 PD가 “「PD수첩」은 어느 시대, 어느 정권에든 살아 있어야 한다”는 말이 그 어느 때보다 가슴에 절절히 와 닿는 것은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언론자유와 정의를 실현하는 마지막 보루로서, 온갖 외압과 탄압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사회 소금이라는 언론 본연의 모습과 공공성을 끝까지 버리지 않는 언론으로서 “마봉춘(MBC)"이 되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 변한 게 별로 없는, 오히려 좀 더 심해지고 더 노골적으로 변하는 이 상황에서 그들에게만 무거운 십자가를 지우는 것이 아닌가 하는 미안함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공영 방송의 주인이 결코 정권이 아니라 바로 국민이라는 진실이 아직도 통한다면 이제는 주인인 "국민"들이 PD수첩을 지키기 위해 나서야 할 시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온갖 금기와 성역, 권력에 도전하는 그들의 싸움을 절대 멈추지 말도록, 앞으로 20 년 후에도 그들의 당당한 진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하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