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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수업
아니샤 라카니 지음, 이원경 옮김 / 김영사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2009년 기준 시장 규모가 21조원에 이르고, 통계에 잡히지 않는 음성적인 거래까지 포함하면 무려 50조에 육박한다는, 불과 5년 내에 두 배 가까이 성장했다는 이 엄청난 시장은 과연 무엇일까? 정답은 바로 “사교육 시장”이다. OECD 국가 중 교육비 부담률 1위에 올라섰고, 5공화국 때처럼 사교육 금지조치를 내린다면 내수 시장이 회복되어 경제성장률을 몇 %는 더 끌어올릴 수 있을 거라는 자조 섞인 농담이 설득력 있게 들릴 정도인 우리나라 사교육 열풍, 우리나라의 교육열을 보고 배우라던 오바마 대통령의 미국은 과연 어떨까? 맨해튼 어퍼이스트 사이드에 있는 명문 사립학교 돌턴 스쿨에서 문학을 가르친 아니샤 라카니는 그의 첫 작품인 “화려한 수업(김영사, 2010년 6월)”에서 낮에는 학교 선생님으로, 밤에는 럭셔리 과외선생님으로 아이들을 가르친 자신의 실제 경험담을 바탕으로 미국 상류 사회의 삐뚤어진 사교육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면서도 재치있고 유머스럽게 묘사하고 있다.
미국 명문 컬럼비아 대학을 졸업한 애나 태커트는 로스쿨에서 진학해서 변호사가 되거나 증권, 금융회사의 멋진 애널리스트로 안정된 직장을 갖기 원하는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참된 교사가 되겠다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설레는 마음으로 뉴욕 명문 사립학교 “랭던홀”에 1년짜리 계약교사로 부임하게 되고, 1,800 달러 밖에 되지 않는 월급에 월세가 1,200 달러나 되는, 엘리베이터도 없는 5층 허름한 원룸 아파트에 첫 둥지를 틀게 된다. 설레이는 마음에 첫 수업을 시작하지만 그녀가 꿈꿔왔던 상상과는 전혀 다른 현실에 막막해 한다. 힘을 내서 첫 교재인 “로미오와 줄리엣”을 각색해서 아이들의 적극적인 수업 참여를 이끌어내지만, “숙제”를 너무 많이 내는 나쁜 선생님이라는 학부모들의 거센 항의에 부딪히고 계약이 이대로 종료될 수 있다는 교장의 엄중한 경고를 받게 된다. 그러던 중 동료 교사에게서 시간당 200달러라는 엄청난 보수의 과외 제의를 받게 되고, 빠듯한 살림에 보태겠다는 생각에 애나는 낮에는 학교 선생님, 밤에는 가정교사라는 이중생활을 시작한다. 애나는 가정교사가 부족한 수업을 보충해주는 그런 개념이 아니라, 아이들의 숙제나 리포트를 돈 받고 대신 써주는 그런 교사라는 사실과 이미 랭던홀에 다니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이런 가정교사를 두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되지만, 서서히 자신의 월급을 훨씬 뛰어넘는 수입의 마력에 빠져들어 가정교사 자리를 계속 늘리게 된다. 학생의 과제물을 대신 작성해주는 것을 자신에게 들켜 불편한 사이였던 동료 선생님이자 이미 과외의 제왕으로 명성을 날리는 “랜디 에이브람스” 선생과 친해지면서 낡은 아파트에서 벗어나 랜디가 머무르고 있는 고급 빌라로 이사하고, 명품가방과 옷을 사들이는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하게 된다. 점점 이런 이중생활에 염증을 나게 된 애나는 자신의 대학시절 친구가 소개시켜준다는 하버드 출신 변호사를 빡빡한 과외 일정 때문에 소개받지 못하게 되자 드디어 폭발하게 되어 모든 가정교사 자리를 과감히 포기하게 되고, 점점 속물이 되어가던 애나를 빈정거리던 동료교사 “데이먼 오런”에게 새로운 수업방법을 조언을 받게 된다.
신입 교사가 달콤하고 치명적인 유혹에 넘어가지만 교사 본연의 길로 되돌아온다는 교훈적인 결말이 조금은 식상하기도 하지만, 자신이 교사이면서 동시에 과외선생이었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 학부모, 교사, 과외선생, 학생 모두에게 그 세계를 생생히 보여줄 수 있었다는 작가의 인터뷰대로 실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하고 의심스러울 정도로 추악한 미국 사교육 현장을 낱낱이 보여주고, 그렇다고 신랄한 비판 일색이 아니라 과외에 맛을 들여 서서히 속물이 되어가는 애나의 모습을 재치있고 유머스럽게 그려내어 식상한 결말을 충분히 보상할 정도로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과연 미국 상류층의 학생들 대부분이 실제로 애나의 독백처럼 숙제를 대신 해주는 가정교사들 덕분에 좋은 학점을 받아 명문 사립학교를 졸업하고, 유수의 명문 대학에 들어가서도 리포트를 대신 써주는 교사의 도움을 받고, 졸업해서는 자신의 부모님이 운영하는 유명 금융회사에 다니면서 역시나 밑의 부하직원에 일을 맡기고 유유자적하는 일종의 상류층 성공 “코스”를 밟고 있는지는 확인할 수 는 없겠지만, 어떻게든 명문학교에 보내기 위해 강남으로 이사하고, 유명 학원에 보내기 위해 서브 학원이나 과외를 시키기도 하고, 자신의 수입 그 이상 빚까지 내면서 사교육을 시키는 우리네 부모들도 그 정도와 방법에서는 물론 차이가 나겠지만 아이들을 자신들이 생각하는 성공 기준대로 사육하려고 하는 점에서는 별로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씁쓸한 마음까지 들기도 했다.
애나는 과연 고액 과외라는 치명적인 유혹을 물리치고 앞으로도 참된 교사의 길을 갈 수 있을까? 책에서는 애나가 앞으로 가르치게 될 교습방법에 대해 몇가지 힌트를 주는데, 학생들에게 적당한 분량을 읽어오는 숙제를 내줘 가정교사들이 숙제에 개입할 수 없게 만드는 “진짜 숙제”를 하게 했던 , 애나의 과외 학생 “제니퍼 파커”의 학교 영어선생님인 “리처즈”의 교습방법에 감명받은 애나가 아이들에게 똑같은 방법으로 한 쳅터를 읽어오게 하고, 수업시간에 작문을 하게 하여 아이들의 작문실력을 가늠해보는 장면과 역시 방과 후 과외도 하지 않는 괴짜 선생인 데이먼 오런 선생이 조언했던, 숙제를 내지 않아 학부모들과의 마찰을 없애고 대신 학교 수업을 충실히 하고 그 수업으로 평가하는 교습 방법들이 앞으로 애나가 지향하게 될 롤 모델(Role Model)이 될 것 같다. 비록 소설 속의 주인공이지만 교사 본연의 모습을 되찾은 애나가 다시는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딩 선생님처럼 누구나 존경하는 훌륭한 교사로 거듭나주기를, 그리고 위축될 데로 위축된 공교육의 현실 속에서도 선생님의 자리를 굳건히, 그리고 훌륭히 지켜내고 있는 대한민국 모든 선생님들의 “참된 교육”에 대한 믿음이 반드시 실현되기를 간절히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