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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용을 쏴라 - 1925년 경성 그들의 슬픈 저격 사건 ㅣ 꿈꾸는 역사 팩션클럽 1
김상현 지음 / 우원북스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역사적 사실(Fact)”에 “소설적 허구(Fiction)”를 가미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해내는 팩션(Faction) 소설의 성패는 “사실”과 “허구”를 얼마나 잘 조화롭게 풀어내느냐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실을 너무 강조하다 보면 그저 역사적 사건의 시간대별 나열에 불과한 “역사책”이 되기가 쉽고, 허구를 부각시키다 보면 실제 사건과 인물은 배경으로만 등장할 뿐 너무 작위적인 스토리텔링은 실제 사실과 겉돌아서 독자들을 설득하는 데는 실패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역사적 사건을 근간으로 하되 그 간극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치밀하게 메운 잘 씌여진 팩션 소설을 읽고 나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작가가 지어낸 이야기일까 하고 그 사실과 허구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심지어 실제 작가 말대로 이런 일이 일어났을 수도 있겠구나 하고 깜빡 속아 넘어가게 되는, 마치 추리소설에서 작가와의 두뇌게임에 진 독자들이 무릎을 치며 경탄하는 그런 느낌까지 받게 된다. 매국노의 대명사인 “이완용”의 암살사건을 다룬 김상현의 “이완용을 쏴라; 1925년 경성, 그들의 슬픈 저격사건(우원북스, 2010년 4월)”은 “경기도 장단 거주의 이영구가 이완용을 암살하려다가 실패하다, 1925년 12월 16일”라는 한 구절의 신문기사, 즉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마치 이책에서럼 이완용을 암살하려는 시도가 실제로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팩션소설의 맛과 흥을 제대로 살린 수작(秀作)이라 할 수 있다.
3.1.운동이라는 거센 저항에 놀란 일제가 문화정치라는 온건 통치로 노선을 변경한지 5년이 지난 1925년, 병에 걸려 죽음을 앞둔 거부 최판선은 매국노 “이완용”의 목에 거금 “10만원”을 현상금으로 걸고, 사회주의 독립운동노선을 걷고 있던 김근옥은 동지인 조수윤, 딸인 김달래와 함께 이완용 암살 계획에 참여한다. 그의 계획은 이완용이 문중행사를 참석하기 위해 기차를 타려고 경성역에 나타나는 순간 원거리에서 일명 가위다리 총이라 불리우는 “윈체스터 95”의 명사수인 딸 김 달래가 저격하는 것이었다. 그는 강원도 산골처녀인 딸 김달래를 신세대 여성으로 변장시키기 위해 “명월관”에 위탁하고, 자신은 암살 계획을 점검한다. 한편 역관의 아들로 태어나 병든 노모와 아내를 부양하기 위해 순사로 재직하면서 “특고(특별고등경찰)”이 되기를 꿈꾸고 있던 박을문은 상사의 눈에 들어 조선총독부 중추원 부의장이자 후작인 “이완용”의 경호원으로 발탁이 된다. 드디어 거사날, 박을문은 이상한 느낌에 이완용이 탈 기차를 한 시간 늦추고, 이를 모르는 암살팀 중 다른 한 조가 암살을 시도하다가 실패하고, 김근옥과 달래도 현장에서 철수한다. 또다른 암살팀인 조수윤은 이완용의 조카인 이영구를 꼬드겨 이완용의 집으로 쳐들어가 그를 암살하려 하지만 역시나 실패하고 총에 맞아 죽게 되고, 그를 지원하고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달래는 일본 경찰을 저격하고 철수한다. 이 사건으로 크게 질책을 받은 박을문은 최근 사건 진술 기록에서 공통으로 등장하는 미지의 인물 “왕서방”을 잡기 위해 이완용과 박영효가 한명회의 정자로 유명한 “압구정”에서 만난다는 거짓소문을 흘리고, 암살 의뢰자 최판선의 죽은 후에는 현상금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여긴 김근옥은 도시락 폭탄으로 무장하고, 딸 달래와 함께 압구정에서 매복한다. 마침내 압구정에서 암살자와 암살을 막으려는 자 사이에 혈투가 벌어지고, 사건은 의외의 결말을 맺게 된다. 결국 암살기도는 모두 무위로 끝나고, 이완용은 그로부터 몇 개월 후 폐렴으로 죽게 된다. 그 후 김근옥, 김다래, 박을문은 다른 장소에서 다른 모습으로 서로 만나게 된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극적 재미만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이완용의 죽음이 기존에 알려진 대로 노환으로 자연사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독립투사들에게 암살당했으며, 일제가 사회적 파장을 염려하여 감추었다는 작위적인 결말로 끝나는 것은 아닌가 하고 걱정했었는데, 이 책의 집필 목적이 이완용의 죽음이 어떠했냐가 아니라 이완용을 암살하고자 시도했던 사람들과 그들을 둘러싼 그 당시의 시대적 배경의 묘사에 둔 작가의 의도대로 마지막까지 충실히 이야기를 이끌어나가서 오히려 더 설득력 있는 결말로 느껴졌다. 책에 등장하는 그 당시의 시대상들, 즉 백화점, 일본 상점, 명월관 등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와 술을 좋아하는 혈기왕성한 청년으로 나오는 소파 방정환, 박영효의 친필 글씨를 팔기 위해 박을문을 만나는 춘원 이광수, 이 책의 모티브가 된 한 줄의 기사를 작성했지만 결국 검열당하는 기자, 서로 노선을 달리하는 김근옥과 토론을 벌이는 독립운동가 김창숙, 마지막에 잠시 등장하는 동양척식회사 폭탄 투척 사건의 나석주 등의 실존 인물들이 허구의 등장인물들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생동감 있는 묘사들은 이 책의 사건들이 실제로도 있었을 법한 사건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설득력을 더욱 높이는 장치가 되어준다. 탄탄한 스토리, 스피디한 전개, 그리고 생동감 있는 인물과 시대 묘사, 과장되지 않은 사실적 묘사 등 장점을 두루 갖춘 이 책은 팩션 소설을 아직 접해보지 못했거나 누구나 다 아는 결말의 역사소설에 질려하는 독자들, 역사의 이면의 사실들에 관심이 있고 때로는 자신만의 상상으로 역사를 재구성하는 것을 즐겨하는 독자들이 읽으면 흥미로워할 재밌는 팩션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