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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리지 않는 진실 : 빈곤과 인권
아이린 칸 지음, 우진하 옮김 / 바오밥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못한다”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빈곤문제는 절대 권력자인 임금도 어찌할 수 없는 해결하기 힘든 문제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빈곤문제에 소홀히 하는 권력자들에 대한 면죄부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 쪽에서는 다이어트와 음식물 쓰레기로 천문학적인 돈을 쓰고 한 쪽에서는 단 몇 센트의 돈이 없어서 굶어죽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더 이상 빈곤은 체념과 외면으로 미뤄두기에는 너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과연 빈곤은 인류가 영원히 해결하지 못하는 숙제로 치부해야만 하는 해결 불가능한 문제일까? 지난 2008년 광우병 소고기 반대 촛불 시위에 대한 공권력 남용 문제를 제기해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세게 최대의 인권단체 국제 엠네스티(Amnesty Inter -national)의 사무총장인 아이린 칸은 그녀의 저서 “들리지 않는 진실 - 빈곤과 인권(바오밥, 2009년 11월)”에서 더 이상 빈곤을 이대로 방치할 것이 아니라 빈곤의 종식을 인권존중의 으뜸가는 과제로 설정하여 본격적인 퇴치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녀는 빈곤이란 인권에 대한 부정이며 인간 존엄성에 대한 모욕이라고 말하며 빈곤을 인권이란 관점으로 바로 보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힘을 부여하고 그들에게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에게 책임성을 부여하는 인식의 틀을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자기 권리를 주장함으로써 논의의 중심에 진입하게 되고 자신을 가난하게 만드는 조건들에 맞서 싸울 존엄을 갖게 된다는 뜻이며 인권은 힘을 가진 자들이 선입관과 편견 없이 행동할 의미를 나타낸 것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차별과 불평등을 해결한다고 이야기한다. 책에서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발언할 기회를 주고, 빈곤의 원인이자 결과인 차별을 철폐해야 하며, 빈곤 문제를 왜곡하는 여러 논쟁들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통해 왜곡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빈곤과 차별로 수없이 죽어가는 산모들의 의미없는 희생을 하루속히 줄여야 하고, 10 억명이 넘는 도시 슬럼 거주민들에 대한 안전한 주거권과 생활개선, 직접 참여가 보장되어야 하며. 천연자원 개발로 오히려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더욱 빈곤해지는 주민들에 대한 법적, 경제적 권리 보장이 시급하고. 빈곤퇴치를 위한 합법적 권한 부여, 국제적인 협조와 함께 그들이 서로 뭉쳐서 행동할 수 있도록 법적 보장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녀는 마지막 장에서 이 책을 집필한 목적이 인권문제야 말로 빈곤을 극복하려는 노력의 중심에 서야 하며, 진정으로 빈곤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인권 문제에 대해 참여에 대한 권리, 폭력으로부터의 보호, 차별 철폐와 같은 포괄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서였다고 밝히고 있다. 책에서 예로 든 수 많은 사례 중 남아공에서 다섯 명의 자녀가 있는 로지라는 여인이 남편에게 상습적으로 구타를 당하다가 결국 심하게 맞아 죽고말았는 데 세계 최고 수준의 가정 폭력 보호 법률과 가정폭력 상담소가 있음에도 경찰에 보호를 요청하지 못한 이유가 도움을 요청하러 갈 차비조차 없었기 때문이라는 사례는 빈곤이 인간으로써 보호받아야 할 권리까지 누리지 못하게 하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책에서는 방글라데시, 중국, 인도, 아프리카 등 인권 후진국가들에 대한 많은 사례가 등장하지만 빈부격차가 더욱 커지고 있는 우리나라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아직도 경제 성장만이 궁극적으로는 소득 불평등과 빈곤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그녀는 “실제로 전반적인 경제성장을 경험한 국가에서 오히려 정상적인 삶의 필요조건들이 평등하게 채워지지 않는 경우를 더 자주 볼 수 있다”고 말하며 “성장에만 기댄 정책은 너무 위태롭다. 성장이 멈추고 나면 생활의 안정을 이루었던 수 백만명의 생활이 빠르게 붕괴될 것이며, 가장 취약한 계층이 겪게 될 고통은 이루 말 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따끔하게 일침을 가한다. 실제로 IMF와 최근 세계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중산층의 붕괴와 빈곤층의 확산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겪었던 우리 상황 그대로이지 않은가. 또한 그렇다면 부자들을 증오하라는 말이냐 하고 묻는 사람들에게 “부자가 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최고의 수준의 학교에 들어가고 최상의 환경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소득 때문에 그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권리가 결정되는 현실이 무서운 것이다”라고 답변한다. 그리고 그동안 경제성장을 위해 인권을 제한할 수 밖에 없었다고 변명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존중하는 것과 가난한 사람들이 발언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그들을 억압하는 것보다 더 나은 발전 전략”이라며 구체적 사례를 들어 그들의 변명을 무색하게 만든다. 한편 용산 참사와 같은 대형 참사를 일으켰던 철거문제에 대해서도 권력자들이 “바로 그들을 범죄자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원래는 그들의 유권자들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범죄자가 되어버리면 아무 상관없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물론 그녀의 이야기가 우리나라의 특정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이야기한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에 바로 해당되는, 어쩌면 그들이 읽으면 영 불편한 그런 이야기를 이 책에는 잔뜩 담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는 이래저래 국제인권단체의 주목을 받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촛불시위 당시 과도한 공권력 행사, 용산참사, 대규모 토목 사업, 인터넷 통제 , 방송 권력 장악 저지를 위한 방송사 장기파업에 이르기까지 인권위원회를 독립 기관으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인권 실천국가 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많은 일들로 주목을 받고 있다. 어렵게 쌓아 올린 인권의 탑이 이대로 무너져 수십년 전으로 후퇴할 것인지 아니면 새롭게 더 놓이 쌓아가게 될지 국제 단체 뿐만 아니라 국민들도 예의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절대로 잊지 말길 바란다. 그 어느 나라의 국민보다 민주와 인권의 소중함을 직접 몸으로 느껴온 국민들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