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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마, 죽지 마, 사랑할 거야 - 지상에서 보낸 딸과의 마지막 시간
김효선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은 과연 어떠할까. 예전 이제 결혼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애지중지 하던 막내아들을 불의의 사고로 잃고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심정을 이제야 아셨다던 외할머니의 말씀에서 깊은 슬픔을 느껴 본 적이 있었다. 결국 외할머니도 시름시름 앓으시다가 몇 년 후 돌아가시고 말았는데 모두들 외삼촌을 먼저 앞세우신 죄인된 마음이 결국 할머니를 돌아가시게 했다고들 하셨다.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던 어른들의 말씀, 김효선의 “울지마, 죽지마. 사랑할거야(21세기북스, 2010년 2월)”는 이제 막 젊음의 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던 세상 누구보다도 소중하고 아름다웠던 딸을 백혈병으로 잃은 어머니의 가슴 속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온 슬픈 독백이다.
방송작가로 주목받던 작가는 2004년 12월, 온 세상이 멈춰버린 것 같은 충격적이고 절망적인 상황에 맞닥뜨린다. 강골은 아니어도 여태껏 입원 한번 한적 없을 정도로 건강했던 고등학교 2학년인 큰 딸 서연이 백혈병에 걸려 버린 것이다. 서연의 길고도 힘든 암 투병은 시작되고 어머니의 삶 또한 딸의 투병과 치료에 모든 촛점이 맞춰진다. 자가 골수 이식에 실패하고 힘겹게 투병하던 중 다행히 미국에서 골수 기증자가 나타나서 골수 이식을 성공리에 마치고 못다한 공부를 다시 계획하는 등 잠시나마 희망을 갖게 되었지만 암은 다시 재발하고 서연은 골수 이식후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된 지 겨우 11개월 만에, 처음 발병한지 2년 6개월 여 만인 스무 살의 나이에 고통에서 벗어나 평안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듯 한없이 편안한 미소를 짓고 하늘로 올라가버린다.
이처럼 이 책은 딸의 투병 과정 동안 곁에서 그 모습을 지켜봐야했던 어머니의 슬픔과 눈물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책 맨 뒷장 동료 작가가 한 말처럼 “예쁜 딸을 가장 예쁜 나이에 하늘나라로 보내면서 그 형벌의 선형을 먹물 삼아” 쓴 글로 읽는 내내 무거운 가슴에 몇 번을 책 읽기를 중단하고 심호흡을 가다듬어야 했다. 결국 서연의 유골을 들고 인천공항으로 중국에 연수 갔던 둘째 딸을 맞이하러 가는 장면에서 그만 눈시울을 적시고 말았다. 작가는 서연과 함께 병동에 입원했던 같은 병을 앓고 있는 많은 환자들,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아버지로, 어머니로, 딸이었던 그들의 고통과 죽음을 목격하면서 내가 가진 언어로 차마 표현할 수 없는 그들의 모습이 단순한 환자가 아니라 내 대신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는, 작은 예수의 모습 바로 그것이었고 그래서 저들이 지금 당하는 고통을 나와 상관없는 자의 불행으로 치부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이야기한다. 서연을 보내고 근 한 달을 누워만 있었던, 철저하게 고독하고 철저하게 외로웠다는 작가를 보면서 외삼촌을 잃고 시름시름 앓으셨던 외할머니를 계속 떠올렸다. 살아계실 때까지 삼촌의 제사상을 손수 마련하셨던 할머니의 마음이 나에게도 전해지는 것 같아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괜시리 눈물이 났다.
슬픔은 나누면 덜어진다고 했던가. 서연의 아름다웠던 삶과 죽음은 ‘그대도 죽는다는 것을 잊지 마라’는 라틴어 경구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처럼 서연을 기억하는 주변 사람들 뿐만 아니라 이제 이 책을 읽은 모든 독자들도 기억하게 되었다. 슬픈 일이 있을 때 가슴 속으로 묻어 놓는 것보다 남에게 속 시원히 털어놓으면 슬픔이 가시던 것처럼 이 책이 그런 작가의 가슴 속에 꼭꼭 묻어두었던 슬픔이 밖으로 터져 나와 이 책을 읽으며 같이 아파하고 슬퍼했던 독자들에게 조금씩 나뉘어져 이제는 작가의 가슴 속에 슬픔보다는 사랑과 그리움만 남아있기를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