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히어로 미국을 말하다 - 슈퍼 히어로를 읽는 미국의 시선
마크 웨이드 외 지음, 하윤숙 옮김 / 잠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불과 200여년 밖에 안되는 짧은 역사를 가진, 신화와 전설이라고는 미개한 비문명화의 상징- 물론 개척시대 미국인들만의 생각이다 - 이자 정복의 대상이었던 “인디언”들의 고대설화 뿐인 신생국가 미국은 스스로 신화를 직접 창조해내기에 이른다. “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 맨”등 종종 "~맨"시리즈로 대변되는, 우리가 애니메이션과 영화로 너무 친숙한 현대판 신화의 주인공들인 "슈퍼히어로"들의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고대 신화 속 영웅들을 현대에 모사한 이들은 멋들어진 복면과 유니폼을 입고 - 바지 위에 덧입는 슈퍼맨의 팬티는 솔직히 패션 센스 빵점인 촌스러움의 극치이다 -, 기상천외한 초능력으로 악인들을 통쾌하게 혼내주고 힘없는 일반 시민들을 범죄와 위험에서 구해준다는 도덕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을 듯한 이런 영웅들의 획일적이고 전형적인 스토리가 아이들에서부터 어른까지 전 세대가 열광하고, 그 어떤 나라나 종교의 신화나 영웅보다도 더 큰 유명세를 가진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아이콘이 되었다. 수천년 후 그리스 로마 신화와 같은 위상을 가지게 될지도 모를 현대판 신화 “슈퍼히어로”들에 대하여 벌써부터 신화화 작업에 돌입하기라도 했는지 미국의 유명 대학 철학, 문학 교수들과 방송, 영화 분야 유명 작가와 프로듀서들이 공동 집필한 “슈퍼 히어로 미국을 말하다”(도서출판 잠, 2010.3.)은 가상의 인물인 슈퍼 히어로들의 삶과 행동에 철학적 해석이라는 고상하고 현학적인 옷을 덧입힌다.  

수많은 슈퍼히어로가 소개되지만 그 흔한 애니메이션 삽화 한 장도 등장하지 않은 - 솔직히 이 책을 온라인서점에서 구매한 독자들 대부분은 스파이더맨이 빌딩 숲을 가로지르는 총천연색의 영화 장면쯤은 기대하고 골랐을 것이다- 이 책은 “정의는 승리하고 악은 패배한다”라는 공식 뿐이었던 슈퍼히어로의 이야기에 다양한 철학적 은혜를 입힌다. 즉 슈퍼맨이 남을 구하는 데 앞장서는 이유를 건전한 내적 욕구와 진정한 이타심을 놀랍게 잘 조화시키는 능력, 자기만족을 위한 이기적인 생각에 따른 행동이 타인의 행복을 가져온다고 설명하고, 배트맨과 그의 동료들인 로빈, 캣우먼, 집사 알프레드, 투 페이스와의 관계들을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정론에 대입하여 각각의 우정 지수를 평가하기도 하고, 단 한 사람도 절대로 다쳐서는 안된다는 히어로들의 신념을 “어떤 개인이든 결코 다른 것으로 환원 될 수 없는 근본적으로 가치를 지닌다”는 칸트의 “인격주의”에 기본을 둔 행동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또한 슈퍼히어로들은 왜 선해야 하는가 라는 물음에는 키르케고르의 “이중위험”, 즉 내적 존재(이기심)과의 투쟁과 외부의 위험을 극복함으로써 궁극적인 삶을 완성해야 한다는 철학이론으로 답하고, 헐크와 브루스베너는 과연 동일인물인가 라는 물음에는 개인의 정체성을 신체영역과 정신영역으로 구분하여 고찰하고, 나아가 인간관계에서 정체성을 파악해야 한다는 “상관적 정체성”의 설명에까지 이른다. 이상을 중시하는 플라톤과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아리스토텔레스를 슈퍼맨과 배트맨으로 비유하기도 하고, 국가와 사회의 법 질서에 위배되는 사적인 폭력을 할 수 밖에 없는“자경단원”들의 한계와 그 속에서 고뇌하는 히어로들의 모습을 소개하기도 하고, 슈퍼히어로들이 처음 만들어지고 거듭 책이 출간되면서 수십년이 지난 후 초창기의 모습과 달라지는 이유를 사물과 상황을 끊임없이 변한다는 “역경”과 유명한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그의 저서 “이기적인 유전자”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인 “밈(meme)"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위에서 잠깐 소개한 처럼 이 책은 그저 재밌게 즐기기만 했던 슈퍼 히어로들을 철학이라는 근사한 옷을 입혀 좀 더 품격 있고 고급스러운 상품으로 재포장하여 거의 신화 수준으로 격상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사실 이 책은 우리에게 친숙한 슈퍼히어로들의 이름만 빌려온 일종의 철학 교재로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책이다. 몇몇 슈퍼히어로 팬 카페에서 소개된 이런 류의 글들을 읽을 때는 참 별난 글들이구나 하는 정도로 생각 했었는데 이렇게 본격적으로 소개된 글들을 읽으니 일종의 지식 낭비까지 느껴질 정도로 과분한 해석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이런 해석이 새로운 신화와 종교를 낳기 위한 고도의 사전 작업이었을지, 아니면 정말 순수하게 슈퍼히어로들을 사랑하는, 그것도 일반 대중이 아닌 철학을 전공한 지식인들이 자신들의 프로 근성을 발휘하여 그들에게 바치는 일종의 “오마주(hommage)"이었을지 모르겠지만 슈퍼히어로들의 이면을 색다르게 다시 한번 살펴보는 것은 흥미로운 것 만은 사실이다. 최근 스파이더맨2 영화에서처럼 놀라운 능력을 가진, 온 몸이 도덕으로만 꽉 차여 있어야 만 할 것 같은 우리의 영웅이 자신의 정체성에 진지한 고민을 하는 장면을 볼 때 과연 피터파커의 ”존재의 물음“에 대해서 한번 정도는 같이 고민해보는 것도 영화를 더욱 즐겁게 볼 수 있는 방법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해석이 영 불편하거나 쓸데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 아마 이런 사람들이 훨씬 더 많겠지만 - 그냥 슈퍼히어로가 등장하는 만화나 영화의 볼거리와 재미만 즐겨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골치 아픈 해석을 하지 않아도 슈퍼히어로는 그자체가 재미있고 흥미로운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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