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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풍선이 남작 뮌히하우젠
고트프리드 뷔르거 지음, 염정용 옮김 / 인디북(인디아이) / 2010년 2월
평점 :
어렸을 적 “허풍쟁이 남작”- 그때는 뮌히하우젠이라는 이름이 어려웠는지 그냥 허풍쟁이 남작이라고들 불렀었다 - 에 푹 빠져서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실제로 가능하다고 믿어서 종종 말썽을 일으켰던 적이 있었다. 밥풀을 뭉쳐서 실 끝에 붙여 놓고 실에는 참기름을 발라서 참새가 자주 앉는 나무 아래 드리워놓고 그걸 참새가 먹기만 기다렸지만 웬걸 참새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귀한 참기름 써버렸다고 어머니께 된통 혼난 적이 있었고, 친구와 새총을 겨누고 공중에서 서로 맞춰 보겠다고 서로에게 쐈지만 맞추기는 커녕 서로의 눈에 맞아 커다란 멍만 만들지 않았나, 강아지를 달나라로 보내보겠다고 연에 묶어서 날리다가 하마터면 강아지를 죽일 뻔해서 역시 어머니께 엄청 맞은 기억 등등 이 책은 어린 시절 숱한 말썽의 원흉(?)이 되었었다. 이 책의 내용이 순 거짓말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흐르고 난 뒤였지만 어린 시절 “톰소여의 모험”과 함께 모험을 꿈꾸는 우리들에게는 소중하고 즐거운 교과서인 셈이었다. 이제 그 책을 즐겨 읽었던 내 나이만큼의 아이를 둘 정도로 어른이 되어 다시 읽게 된 고트프리트 A. 뷔르거의 “허풍선이 남작 뮌히하우젠(인디북, 2010.02.)”은 여전히 즐겁고 유쾌한 책이다.
어른이 되서 다시 읽으니 남작의 모험은 어린 시절 이걸 진짜로 믿은 내가 이상했던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정말 말도 안되는 허무맹랑한 이야기 투성이다-아직도 진실로 믿고 있다면 지금쯤 정신병원에 들어가 있어야 할 것이다.^^ - 대포를 타고 적진을 정찰 갔다가 하늘에서 적진이 쏘아 올린 날아오는 대포를 타고 다시 귀환하질 않나, 폭풍우의 거센 바람에 휩싸여 달나라까지 날아올라 가질 않나, 거대한 물고기 뱃 속에서 한달 여를 살다가 살아나지 않나, 지구를 관통해서 지구 반대편을 여행하질 않나 하나 하나가 만화 속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괴상하고 유치한 허풍들 뿐이다. 그런데 묘한 것은 원래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나쁘거나 불쾌한 게 당연한데 이 책은 읽을수록 유쾌하고 재미가 있다. 꿈에서조차도 한번도 생각 못했을 이런 상상을 할 수 있다니 하고 남작의 기기묘묘한 허풍에 감탄하게 되고,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이런 거짓말을 정색을 하고 들려주는 남작의 뻔뻔함과 꽤나 인기 있어서 어느 모임에서나 환영받았다니 그걸 진지하게 듣고 있었을 - 속으로야 욕했을 런지 모르지만 -관중들의 모습과 이 책이 출간되었을 당시인 18세기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작품이라니 계속 감탄하게 만든다. 실존 인물이었다는 뮌히하우젠 남작이 실제로 이런 허풍을 떨고 다녔을 지도 궁금하고, 여러 국가에서 수많은 판본으로 출간되었다는 이 책이 어렸을 때 내가 읽은 책은 어떤 판본이었을까 하는 것도 궁금하고 이래저래 유쾌하고 감탄하고 궁금함이 더 많아지는 그런 책이었다.
초대 기독교의 철학자인 “아우구스티누스”가 “거짓말”에 대해 7가지로 나누어 정의하였다고 하는데 허풍선이 남작 뮌히하우젠의 거짓말은 그중 다섯 번 째 “매끄러운 화술로 남을 즐겁게 하는 거짓말”, 여섯 번째 “아무에게도 해가 되지 않고 누군가에게 이익이 되는 거짓말”에 해당된다고 생각된다. 온갖 거짓과 불의가 만연한 지금,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에게 상처주고 해를 끼치는, 그러면서도 자신은 전혀 그런 적이 없다고 오히려 더 당당해하는 뻔뻔함이 가득한 현대사회에 있어 남을 즐겁게 하고 웃음 짓게 만드는 뮌히하우젠의 농담이 차라리 더 진실로 들리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지치고 힘든 일상 속에서 잠시나마 웃음을 짓게 만드는 이런 이야기들이 좀 더 풍성해지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