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의 결혼에 관한 예언 ㅣ 살림 펀픽션 3
요시카와 에리 지음, 이수미 옮김 / 살림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신입사원 시절 직장 선배와 회식 후 재미로 찾아간 길거리 점집에서 "자네는 30대 후반에 결혼할꺼야"라는 점쟁이 말에 이런 이런 앞으로 결혼하려면 10년이 더 남았잖아 지금 사귀는 여자친구는 어떡하라구 하고 그 점쟁이를 비웃었었다. 그런데 그 당시 결혼을 약속한 친구랑은 여러가지 일로 결혼이 무산되었고, 몇 번 선도 보고 소개팅도 해봤지만 이상하게 계속 안되다가 점쟁이 말대로 결국 30대 후반에 지금 아내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다. 점쟁이가 저주를 내린 건지, 아님 정말 내 운명이 그런 건지 지금 생각해보면 참 신기하기도 하고 웃음도 나온다. 요시카와 에리의 “나의 결혼에 관한 예언”은 나처럼 믿거나 말거나한 결혼에 관한 예언을 받은 주인공이 운명의 남자를 찾아나서는 좌충우돌의 황당한 연애담을 그린 책이다.
주인공인 “히라시아 리카”는 예일대에서 간호사 자격증을 따고 일본에 돌아와서 유명 대학병원에서도 능력을 인정받는 간호사다. 그러나 한 사건으로 인해 그녀의 건강한 삶이 멈추어 버렸고,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인도로 떠나게 되고, 그 곳에서부터 쿵쾅거리는 엉뚱한 일이 시작된다. 울창한 열대 우림 속에서 리카가 타고 있던 버스는 사고로 멈춰 서게 되고, 그녀가 타고 가던 버스는 뒤에 온 민영버스에 의해 견인되어 버린다. 그리고 붕 달렸지만 앞에 앉았던 운전사 아저씨가 안 보인다. 쿵! 버스는 반으로 두동강이 나고 앞부분만 달리고 뒷부분은 남아버린다. 그런 황당한 상황 속에 갇혀버린 리카를 짜짠하고 등장한 멋진 남자 류 - 대기업 회장이자 잘 생긴 얼굴에 큰 키, 냉철하고 명석하지만 리카에겐 항상 다정 다감한 따뜻한 남자다. 다만 유부남이라는 사실 - 가 구해주고 둘은 보는 순간 사랑에 빠져 버린다. 그 곳에서 우연히 만난 인도의 점쟁이는 그녀에게 “스물아홉에 결혼, 기묘한 동물 그림, 기호 같은 문자, 그리고 ‘38’이라는 숫자”가 적힌 결혼에 관한 예언이 담긴 쪽지를 건네준다. 이때부터 그녀의 운명의 남자를 찾아 나서는 3년간의 파란 만장한 모험(?)이 시작된다.
리카의 남자에 대한 로망의 첫 대상은 언제나 따뜻하게 손잡아 주시던, 세 살 때 안타깝게 갱단에 의해 돌아가시고 만 아빠였다. 그녀 앞에는 참 많은 남자들이 결혼에 대한 예언처럼 등장한다. 인도 여행 중 만났던, 예언의 38이라는 숫자와 나이가 일치하는 대기업 회장 “류”, 돌아가신 아빠 대신 어린 리카와 놀아주었던 동료 경찰관의 아들이자 아버지처럼 따뜻하게 손잡아 주던 히로 오빠 - 나이는 틀리지만 차번호와 기호 표시가 일치한다 -, 그녀가 대학 병원 간호사로 있었을 때 아빠를 죽게 만들었던 갱단의 일원을 구해주고 나서 그 사실을 뒤늦게 알고 혼자 울고 있을 때 만났던, 나중에 큰 고통을 안겨 주었던 전 애인 시마다 아쓰시 - 예언에 맞추려는 듯이 38송이 장미꽃으로 억지를 부린다 -, 엄마의 한국어 수업 선생님인 승제 - 군복무를 38선 DMZ에 근무 했었단다 - 등등 리카가 만나는 모든 남자들은 운명의 숫자인 38의 숫자를 가지고 리카 앞에 나타나서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
리카는 어떻게 보면 남성편력이 가히 심한, 생각이 없는 여성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 순간 순간을 진실로 그 남자들을 사랑한다. 리카는 만나는 남자들에 대하여 계산하거나 이익을 먼저 따져보지 않고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여 그 남자들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순수한 사람이었다 할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엔 그녀가 남성들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방문 간호소 일에 열정적으로 일하는 리카의 모습을 통해 안정적인 자신의 회사를 몇 백년이 지나도 튼튼히 할 수 있는 회사로 만들기 위해 도전적으로 일하게 되는 “류” 처럼 그녀의 남자들이 오히려 그녀에 의해 삶의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그녀의 예언의 남자는 과연 누구일까? 끝(계속?)이라는 끝 맺음말은 그녀의 예언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며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생각하는 바로 그 남자, 또는 아직도 등장하지 않았을 새로운 어떤 남자가 바로 그 남자일 수 있다는 열린 결말(멀티엔딩)으로 마무리한다.
그녀의 좌충우돌의 연애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책은 중간 중간 읽으면서 과연 끝이 어떻게 될지 궁금해서 마지막 페이지를 몇 번을 펼쳐보게 만드는 재미를 준다. 연이어 계속되는 반전에 또 반전, 중후반부로 넘어가면서 도대체 이 책의 주인공인 히라시아 리카, 이 친구는 누구랑 결혼하는 거야, 예언은 결말이 어떻게 되는 거야 하는 궁금함과 주인공의 엉뚱하면서도 따뜻한 마음에 매료되어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까지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특히 작가의 위트가 넘치는 마지막의 “끝[계속?]”은 읽고 나서도 과연 주인공 리카가 어떤 남자와 결혼하게 될 런지 상상하게 만드는 여운의 즐거움을 준다. 자신이 힘들고 어려울 때 자신의 손을 잡아줄 따뜻한 손을 가진 남자를 기다리고 있을 그녀들에게, 결혼이란 현실에 절망하기 보다는 결혼에 대한 아름다운 환상과 연애의 설레임을 아직은 간직하고 싶을 그녀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