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 TV 채널 여기저기에서 미드를 경쟁적으로 방송하는 것을 보면 요새 미드가 대세이긴 대세인가 보다. 가끔은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같은 드라마, 같은 에피소드를 여러 채널에서 동시 방영하거나 어느 채널은 아예 특집 편성으로 하루 종일 드라마 시리즈 첫 편부터 마지막 편까지 전편을 방영하기도 한다. 내 취향은 "X-FILE", “슈퍼내츄럴”,“히어로즈”같은 판타지 장르라 기타 장르 드라마는 그저 시간날 때 한 두 편씩 보곤 하는데, 그래도 주로 보게 되는 드라마가 과학 수사물인 “CSI"다. 다른 드라마와 달리 한편 한편이 독립적이어서 전체 스토리를 챙겨볼 필요가 없고, 치밀한 플롯과 트릭, 반전이 묘미인 정통 추리 소설과는 달리 과학적 수사를 통해 범인을 검거하는 장면이 제법 흥미롭기까지 하다. 나야 과학전공자가 아니어서 과학적 근거가 과연 타당한지를 판단할 만한 소양이 없고 각종 전문용어는 그저 친절한 자막 한번 읽어주고는 금새 잊어버리게 되고, 그저 스토리 위주로 편안히 시청해주면 되니 전혀 부담이 없다. 그런데 무엇을 보든 ”저것이 과학적으로 말이 될까?“를 반사적으로 생각하고 따져보는, 그래서 종종 주변 사람들에게 ”그냥 이야기에만 집중하면 안돼?“라고 종종 핀잔을 듣는 조금은 피곤한 시청자가 아예 미드에 나오는 각종 과학적 상식을 책으로 엮어냈다. 과학이라면 어렵다는 편견을 가진 일반 독자들을 위한 쉽고 재밌는 과학 에세이를 여러권 펴낸 이은희의 ”하리하라, 미드에서 과학을 보다“가 바로 그 책이다.
이 책에는 “CSI", "성범죄수사대 SYU","하우스”,“프리즌 브레이크”, “NCIS" 등 최근에 인기리에 방영되었거나 지금 한창 방영중인 드라마들 30편의 에피소드가 소개되어 있다. 책의 구성은 우선 한 페이지 정도로 드라마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그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과학적인 상식을 설명하는 형식인데, 예를 들어 주인공의 온 몸에 새긴 문신이 인상적이었던 탈옥 범죄 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편에서는 문신의 기원과 문신의 방법, 문신을 통해 C형 간염 등 각종 질병이 유발되는 점들, 새기는 것보다 지우기가 더 어려운 이유 등 문신 전반에 대하여 설명을 하고, 덜 익힌 돼지고기 햄을 먹고 촌충에 감염되어 발작 증세를 일으킨 환자를 치료하는 ”하우스“ 편에서는 작가의 해부학 실습 시절 경험과 함께 기생충과 숙주의 관계, 기생충의 종류 등에 대해 설명하며, 연쇄 살인범들만을 골라서 죽이는 살인마를 그린 ”덱스터“의 인상적인 오프닝 장면인 아침 식사하는 장면에 대해선 건강에 치명적인 주인공의 아침식단에 등장하는 포화지방, 불포화지방, 트랜스 지방의 차이에 대해 설명한다.
인상적인 에피소드는 불행한 어린 시절로 인해 흉악범이 된 사형수 이야기인 ”그레이 아나토미“편에서 소개된 할로 박사의 과학 실험이었다. 할로 박사팀은 ”붉은 털 새끼 원숭이 실험“을 통해 기본적인 회로만을 갖춘 채 태어나는 인간의 뇌는 자라면서 얻는 경험으로 채워나가야 하는데, 자신을 따뜻하게 안고 어르고 달래주는 부모의 존재가 뇌의 정상적인 발달을 유도하여 아이의 신경계를 자극하고 균형을 잡는 법을 배우게 한다는 것, 즉 아이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사랑이 필요하는 것을 입증한다. 작가는 이와 같은 할로박사의 실험을 예로 들면서 사랑이란 주로 포유동물 이상의 고등 동물의 뇌에서 발견되는 번연계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며, 뇌가 가장 발달한 인간이 지구상 어떤 생명체보다도 더 많은 사랑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행운의 종으로 사랑을 배우는 것은 바로 삶을 배우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이처럼 한편 한편 드라마의 줄거리를 읽고 관련한 과학상식을 확인하는 재미가 제법 쏠쏠해서 과학에 흥미를 느끼는 어린 학생들이나 미드에 푹 빠져 지내는 어른들까지 누구나 다 부담 없이 재밌게 읽을 만한 책이다. 다만 여기에 소개되고 있는 드라마는 과학적 상식을 설명하기 위한 일종의 도구로서만 소개되는데 드라마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소개가 곁들여졌다면 하는 점과 드라마 에피소드가 실제로 과학적으로는 허구인지 아니면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지와 같은 드라마 자체에 대한 자세한 분석이 좀 더 있었다면 더 흥미롭고 재밌었을 점이 다소 아쉽게 느껴진다. 좀 더 다양하고 흥미로운 주제의 드라마와 과학 상식을 소개하는 후속 권이 나오기를 기대해본다.